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도리스 되리 지음, 함미라 옮김 / 샘터사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독일 영화계의 거장으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며 문학계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도리스 되리. 그녀의 첫 에세이. 도리스 되리에게 요리와 음식은 그야말로 삶의 원형이자 절대적인 기쁨이다. 이 책에서 도리스 되리는 어린 시절 경험한 신기하고 다채로운 추억을 맛깔나게 꺼내놓는다.

도리스 되리는 단순히 식도락의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먹는 행위’가 단순히 쾌락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이며 날것의 생을 감각하는 일임을, 더불어 개인의 책임과 생존의 무게를 실감하는 일임을 환기한다.

도리스 되리의 글이 한없이 유쾌하면서도 가벼운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폐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놓인 그릇 위에 음식이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와 협력 그리고 동물, 식물의 희생이 있었는지 식사 때마다 들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도리스 되리의 맛있는 글이, 지금 우리의 식탁에 도착한 이유다.

 

<인터넷 알라딘제공>

 

 

 

모든 것은 변한다. 아름다운 변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어떤 변화는 하루 빨리 일어 나길 고대하지만, 변할까 봐 두렵기만 한 변화도 있다. 그러나 변화를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일상에서 변화를 실천하고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부엌이다.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 거듭되는가. 볼품없는 감자 한 알이 감자퓌레가 되고, 뇨키가 되고, 감자스프, 포테이토 수플레로 변신하는가 하면, 밀알은 빵과 파스타가 되고, 크로와상과 피자가 되며, 돼지고기는 베이컨과 돼지고기 구이, 테부어스트가 된다. p43-44


이 무질서와 엉망인 세계의 유일한 출구는 결국, 똘레랑스(관용)임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식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누군가 그 이야기들을 듣는다면 이 세계는 관대함을 잃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스페인이 유럽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낯선 사람에게 관대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건 파에야 때문일 거다. p66


문어는 지루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있느니 어렵사리 돌려 닫은 병뚜껑을 능숙한 솜씨로 열며 노는 걸 더 좋아한다. 그 솜씨가 얼마나 능숙한지 주방 보조원으로 두고 싶을 정도다. 수족관 벽에 빨판을 붙여 좁디좁은 수족관 뚜껑 틈새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가기도 한다.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 호불호도 아주 분명하다. 신이 나면 친구의 얼굴에 물을 분사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문어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그저 놀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오징어류는 더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놀이를 즐길 줄 아는 존재 앞에서 나는 무장해제되고 만다. p139



어릴적 나의 꿈은 혼자 오롯이 피자 한 판을 먹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네 자매에게 허락된 피자는 최대 두 판이었다. 피자를 두고 세상 사람들을 나눈다면 딱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피자의 둥근 가장자리를 좋아하는 사람, 다른 하나는 피자의 가장자리를 남기는 사람. 나는 전자다. 내가 좋아하는 피자는 마르게리타 피자이다. 마르게리타에 오르는 토핑 외에 다른 토핑은 전부 피자의 소박하고 깔끔한 아름다움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p149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청소년 시절, 카로커피에서 진짜 원두커피로 갈아타게 되었을때, 스스로 꽤 자랑스러웠다. 커피를 마신다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내 자신이 세련된 사람이 된 것처럼 여겼고, 터키식 커피를 마시면서 코스모폴리탄(범세계주의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름엔 휘핑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넣은 아이스커피가 있었다. 카푸치노에는 기본적으로 생크림이 같이 나왔다. 필터커피는 리터 단위로 마셨다. 영화제작사 사무실에서는 어떤 곳이든 커다란 커피머신에 커피를 내렸다. 그렇게 내린 커피는 몇시간이고 저 혼자 뭉근히 끊어, 나중엔 어떻게 해도 끝을 알 수 없는 쓴맛을 냈다. p157



"나는 음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감각을 배우고

 개인의 책임을 깨달았다"


제목만으로도 호감과 함께 읽을 의지가 수직 상승했던

미각의 번역


이 책은 영화 파니핑크의 감독이자 작가인 도리스 되리의 음식에세이로

도리스 되리의 음식이야기를 듣다보면 

음식이 얼마나 문화의 산물인지

세계의 모든 문화를 느껴보기위해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책속으로의 여행은 녹차와 오니기리로 시작되었다.


내 첫 해외여행은 일본 삿보로였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어 한마디를 못하면서

오사카에서 환승까지 하며 삿보로에 갈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도착한 날 저녁

친구가 모아놓은 100엔 동전들로 난생처음 회전초밥을 먹었던 기억과 함께

오타루에 가던날 호텔에서 준비해준 매실장아찌 든 오니기리와

캔커피가 아닌 캔에 든 녹차가 신기했던 오래전 그날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쌀, 매실장아찌, 김이 전분인 담백한 조합의 오니기리 

우메 우메 우메

다음에 일본여행을 한다면 편의점에서

계란 듬뿍 샌드위치와 함께 꼭 먹어보리라... ^^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에

뱃살을 늘리고 있지만

솔직히 음식을 직접 만들기보단

누가 해 준 음식이 가장 맛있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올여름 가장 많이 한 음식은

선물 받은 감자로 만든 감자 요리 아니었을까?

만만한 카레로 시작해서 감자전(그냥 썰어서 or 갈아서), 감자채전,

감자샐러드, 감자스프까지...

아주 잠깐 뇨끼를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레시피를 찾아보니 멀미날듯할 복잡한 과정에

뇨끼는 그냥 사먹는걸로 결론냈다.ㅋ



 

작가는 스페인이 유럽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낯선 사람에게 관대한 건 

파에야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때문에 고생했던 터키에 비하면

스페인의 음식들은 대체로 입에 맞았는데 특히 파에야를 맛 본 순간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파에야! ^^


 

완두콩 프로젝트 등 문어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었고

갈색을 띤 닭 브라우니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엔

문득 이웃들에게 달걀후라이에 대한 취향을 묻고 싶기도 했다.

할 얘기 진짜 많은 빵과 케이크 그리고 커피...

친구 연이가 브래드 쿠쿰에서 사준 엘리게이터와

꼬맹이가 마시랑 제빵소에서 사온 연탄식빵도 정말 맛있었는데...


이 책이 발간될 때쯤 상황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적절한 이유를 대지 않고도 문밖으로 다시 나설 수 있게 될까?

상점들은 다시 문을 열었을까? 식당은? 극장과 영화관, 오페라하우스는? 그리고 다시 효모를 살 수 있을까?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효모는 갑작스럽게 인기 상품이 되었다.

순식간에 효모가 동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빵 굽기에 열을 올렸다.
빵을 굽는 일이 우리 일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주문이 된 것 같았다.

마치 살아 있는 이 작은 균류가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p302


​코로나19는 내게도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오래 쉬었던 제빵을 다시 시작했고

식물집사가 되어 스므개 넘는 화분들을 돌보고 있기도 하고...

오늘은 우리집 마지막 주자 꼬맹이의 백신1차접종이 있는 날이다.

요즘 20~30대가 그렇듯 

여행 좋아하고 예쁜 카페와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집과 회사만 오가며 집콕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2차접종까지 마치면 양양에 가보기로 했다.

마음껏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그 여행의 추억을 눈치 보지않고

신나게 풀어 놓을 수 있는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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