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개정 증보판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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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이 너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으니까.” 밋밋하고 사소해 보이는 평범한 삶에서, 죽을 것같이 외롭고 불안한 날들에서, 단단한 마음으로 건네는 다정한 위로의 장면들!

KBS <인간극장>, 다큐대상작 <우리가(歌)> 등 휴먼다큐 작가로, 에세이스트에서 글쓰기 안내자까지 다방면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고수리의 시작이 되었던 첫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가 개정증보판으로 출간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본문의 표현과 문장을 세심하게 매만졌고, 책의 디자인, 본문 구성도 새로이 했다. 또한 수년 전 시작된 이야기의 답장 같은 글이 되어줄 새로운 세 편의 글을 추가 수록해 더욱 풍성해진 이 책은 감히 고수리 에세이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다.

[알라딘 제공]



아버지와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동안은 그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들을 마주칠 때면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그맣게 바란다. 아플락 말락 마음이 아리지만, 아버지도 이 아저씨들처럼 어딘가에서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시간은 쉼도 없이 흐른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조용한 슬픔은 어쨌든 무뎌지긴 하는 것이다.
p45

 

사람이 한순간에 이토록 쓸쓸해질 수 있다니. 쓸쓸하고 외로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곤히 잠든 도연은 아이 같기도 노인 같기도 했다.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앞으로 살아갈 불투명한 미래가 만져지는 것 같아 손끝이 저릿했다.
그럼에도 우린 꿋꿋이 살아가겠지. 몇 번이고 텅 비어 낯설고 어둑해질 이 세상에서, 내가 외로울 땐 당신이 곁에. 당신이 외로울 땐 내가 곁에. 그렇게 우린 함께 살아가겠지. p57

 

살아도 살아도 세상은 모르는 것투성이, 툭 하면 상처받고 툭 하면 우는 우리가 어른이라니. 어쩌면 “너는 이제 어른”이라고 귀띔해주는 말들을 그냥 믿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니까 짊어져야 한다고. 어른이니까 희생해야 한다고. 어른이니까 살아가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거운 말들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나아갈 때,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p84


무표정으로 종종걸음을 걸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 스쳐 가는 타인들에게 나는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경이로움도 함께.
아마도 우린 이렇게 우주를 만드는 걸까. 혼자라도 좋았다. 무수한 사람들 속에 포함된 하찮은 존재라도 좋았다. 나는 작고 작은 우주 알갱이가 되어 두둥실, 무중력으로 걷는 기분이 들었다.
p252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말을 끌어안는다. 절망과 아픔과 미움에 관해서 나는 아주 짙고 깊은 어둠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틈새의 삶, 이를테면 어두운 틈으로 새어든 한 줄기 빛과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조금의 온기 같은 이야기를, 울더라도 씩씩하게 쓰고 싶다. p256



블루톤의 표지와

어두운 밤, 

외롭고 무섭지만

왠지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될 것 같은 

제목 한줄에 끌린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휴먼다큐 작가 가 쓴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구구절절 마음이 요동친다.

내 이야기가 아닌데 나와 닮은 인생 이야기가 아닌

분명 남의 이야기(?)인데도....



뭉클한 작은 기적.

결국은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

그리고 겨우 깨진 머그잔 하나를 고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한 회사의 마음.

저마다 다른 문양의 조각들이 이어져 아름다운 퀼트처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아름다운 머그잔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었다.

엄마의 두 손에 따뜻하게 안길 머그잔.

손잡이에 다른 문양이 붙어 있어도 예쁘기만 하다. p26



뭐라도 하나더 챙겨주고

예쁘고 좋은 거 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듬뿍 담은 혼수품을 장만하던날

엄마에게 선물한 폴란드 머그잔 딱 한개....

어느날

딸의 빈자리를 채우듯 애지중지 사용하던 머그잔이 깨지고

그릇을 만든 본사에 깨진 조각과 함께 

딸이 시집갈 때 준 특별한 선물이라 꼭 고쳐서 다시 쓰고 싶다는

손편지를 동봉해 보내게 된다.

몇주뒤 저자의 어머님은

깨진 손잡이가 고쳐진 머그잔과 함께

또한 회사의 마음이 담긴 손글씨 메모를 받았다고 한다.


요즘 내 아킬레스건은 딸이다.

여행이나 연수외엔 한 번도 떨어져 지내본 적 없는 큰 딸의 결혼은

분명 축하하고 축복할 일임에도

문득문득 허전함을 느끼고

아주은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작은기적'이라는 제목의

비교적 초반부 한 꼭지를 읽던 난

간절한 엄마의 마음이 통했다는 안도와 함께

나도 모르게 훌쩍 어깨가 들썩였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마음도 조금은 알 듯하고

밉기만 하던 남편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 남자도 많이 늙었구나...

날 만나지 않고 시어머님이 가끔 얘기하시던

방앗간집 조카딸과 결혼했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던

어느밤도 오버랩 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우리들의 삶...

내 치열했던 젊은 날과

여기저기 온몸에서 고장났다는 신호를 보내며

무기력해져 가는 현재의 일상도

다 괜찮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우린 미처 잊고 살았지만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 소박하게 살아가는 일상, 웃는 목소리에 느껴지는 진심, 따뜻한 말 한마디에 벅찬 행복, 먹먹한 눈물에 담긴 희망. 그런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알아볼 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진솔한 삶이 펼쳐졌다. 그랬다. 살아가는 우리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가장 평범한 주인공들이었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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