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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 소설가의 쓰는 일, 걷는 일, 사랑하는 일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상상력과 기품 있는 문체로 세계 문단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오가와 요코의 국내 첫 산문집.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를 이번 산문집에서는 한층 더 가깝고 너르게 만나볼 수 있다. 소소한 일상의 단편을 독자적인 시선으로 포착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따뜻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작가 고유의 스타일은 에세이에서도 여전하다.
《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는 크게 ‘소설가로서의 글쓰기, 일상의 회복으로서의 산책, 가족을 포함한 여타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나 작가의 반려견인 래브라도 ‘러브’와의 산책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곁을 지킨 애견 러브와 산책하며 일상의 잔잔한 리듬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우른다.
글쓰기나 삶의 무게가 버겁게 다가올 때 산책은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약이 되어준다. 타박타박, 가만가만, 산책의 담담한 리듬감을 닮은 책은 요즘처럼 마음이 답답한 시기에 우리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어준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하얀 늪에 끝없이 빠져들 때는
"힘 내, 너라면 쓸 수 있어.
자,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하고
큰 소리로 기운차게 응원해주는 사람보다,
이요르처럼 한숨을 쉬면서
저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p21
새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날아오르는 기적을 글로 쓰고,
거기에 제목을 붙여 보존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내게도 번듯한 역할이 있다, 하고 생각된다.
그리고 다시 쓰다 만 소설 앞에 앉는다. p91
잠 못 이루는 밤,
세상의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동전을 닦거나 주어진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 나는 내일 또 소설을 쓰자는 다짐을 할 수 있다.p171
소설가의 쓰는 일, 걷는 일, 사랑하는 일
'걷다보면 괜찮아질 거야'를 읽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무렵의 난,
'냉정과 열정사이'의 에쿠니 가오리,
'키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일본작가들의 책을 즐겨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의 저자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연배가 비슷한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꼰대 같지만 '그땐 말이야~' 싶은
우리만 아는 우리시대의 에피소드와 유머를 느낄 수 있는데
이번책도 그랬다.
'긴뜨기, 한길긴뜨기, 두길긴뜨기'를 읽으면서는
학창시절의 가정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필요해서 만든 교과과정이긴 했겠지만
내겐 그저 가장 재미없고 지루했던 시간이었던 탓에
교과서 밑에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꺼내 놓고
선생님 몰래 딴 짓을 하곤 했다.
이러하니 수놓기나 뜨개질 과제가 싫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다행으로 간호사 인니들중 고모부 먼 친척이기도 한
솜씨 좋은 윤언니가 내 모든 숙제를 대신 해결해준 덕분에
내 실기점수는 언제나 수! ^^;
'눈물과 안경'도 완전공감되는 꼭지중에 하나였는데
심지어 요즘은 안경을 쓰고서도 안경을 찾고 있으니.... ㅠ.ㅠ
'걷다 보면 괜찮아질거야'를 집콕했던 지난 겨울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공감이 되었을까?!...
풀리지 않은 걱정과 고민도
꼬맹이와 나란히 걸으며 얘길 나누다보면
이내 별거 아닌 일이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병원에 가면 "노화현상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작가와 독자인 탓에
신간 '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도
많이 공감하며 긴템포로 한 번에 끝까지 읽어냈다.
"걱정은 저리 밀쳐두고 일단 산책부터 할까요?"
걸으면서 늘 지금 쓰다가 막힌 소설의 상태를 정리하고,
다음 장면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정하곤 했어요.
또는 혼란스러운 현실의 문제를 풀었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결론을 이끌어내곤 했습니다.
소설을 쓰다가 피곤해질 때,
기분 나쁜 일이 있었을 때,
"아, 그래. 산책을 하면 되지"하고 중얼거리고는
선크림을 바르고 집을 나섭니다.
소설을 계속 쓰는 한
아니, 살아 있는 한 저는 산책을 하겠지요.
_ 작가 후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