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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위안
송호성 지음 / 화인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저자는 독서의 효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좋은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고전은 “사고의 보고”이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인류 역사의 장대한 파노라마와 삶에 관한 풍부한 에피소드와 의미 깊은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책을 읽는 목적은, 우선은 자신의 식견과 안목을 높이는 데 있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쿨cool해지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쿨해진다’는 것은 냉정해진다기보다는 냉철해진다는 의미로,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독서는 일종의 ‘구도 행위’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처럼 저자는 구도 행위와도 같은 독서를 통해, 깊은 감명과 인상을 받은 12명 철학자들의 언어를 함축적으로 요약해 <독서의 위안>을 펴냈다.
<출처 : 인터넷 알라딘 제공>
“악한 사람은 결과만을 탐낸다”고 세네카는 말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시한다. 동기動機의 명분도 따져 봐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심良心이라는 정서情緖가 대두된다. 독서와 사색이 누구에게나 양심을 심어 준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양심에 따라 자신을 설득하는’ 능력만큼은 얼마든지 키워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라는 인형人形의 줄을 잡아 당기는 누군가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것은 설득의 힘이고 생명이며, 말하자면 바로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그 무엇이다.” p157
개성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의 가능성’을 밝혀내는 일은 단순한 이해理解의 문제를 넘어서는 생존生存에 관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개성을 나타낸 이후에 인생은 운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수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삶은 확연히 달랐다. ‘차이의 구별’이 사라질 때, 아마도 우리는 최악의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느 한 순간부터 우리 모두에게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에어로빅 배음背音과 같은 음音으로 들려오게 된다면, 종말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거나 다름없다. 종말은 거창하고 요란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종말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우리를 잠식해온다. p165
세월은 인간에게 일종의 ‘고백’을 요구한다. 늙음이란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며, 보다 심각하게는 스스로를 폭로하는 것이다. 40대는 30대보다, 그리고 30대는 20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노출하게 되는데, 살아온 세월이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나라한 ‘자기 노출’은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자기 폭로’는 인간성을 부정否定하는 것이다. 예컨대 살인범이나 강간범 등은 여과 없이 자신을 폭로함으로써 주위를 긴장시키는 극단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탐욕도 함께 커가고, ‘때가 되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p189
제목에 이끌려 데려온 독서의 위안...
책을 읽는 일외엔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올한해는 틈날때마다 책을 읽었다.
내 블로그에 가끔 들린다는 친구가 한마디 한다.
'요즘은 거의 다 책얘기더라?!~' ^^;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하는 1인이니
영화 포스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여행도 못하고
심지어 이젠 카페에서 멍때리는 것도 못하고
바빠도 주기적으로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을
지난 연말이후 못 보고 있으니
한동안은 책얘기를 더 하게 될꺼야... ㅠ.ㅠ
읽은 책들이
다 재밌고 좋고 맘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 두 구절이라도 맘에 와닿는 내용을 메모하고
그것들이 쌓여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를 느낀다.
오랜만에 읽는 철학자들의 메세지가
쉽게 읽혀지진 않은 책이었으나
다 읽고 난 후 묵직하게 와 닿는 울림이 있는
책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독서의 위안
언어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