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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 청미 / 2019년 3월
평점 :
프랑스 편집자이자 작가인 베로니크 드 뷔르가 201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주인공 잔은 아흔 살, 외딴 시골 농가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다. 아흔 번째 봄을 맞던 날, 잔은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별일 없는 나날 속에서도 그날그날의 기분을 기록하고 문득 떠오르는 추억을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늙은이의 특권이라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것, 잔은 이 넘쳐나는 시간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채우며 살기를 원한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자기 집 정원에서 꽃이 피는 광경을 보고 싶고. 친구들과 백포도주 한잔을 즐기고 싶다.
유일한 이웃인 옆집 농가 부부의 좌충우돌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고, 벤치에 누운 채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내년에도 이 별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잔은 자식 손자 들을 위해 냉장고에 맛있는 음식을 채워두기 좋아하지만 혼자 살기를 좋아한다. 이 일 년 동안의 일기는 노년의 소소한 행복,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슬픔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지난 6월 전주 소소당에 다녀오면서 구입한 체리토마토파이...
아흔살의 잔 할머니가 어느 봄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비교적 후딱후딱 읽어내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이상하게 조금씩 아껴가며 읽게 된다.
크게 일어나는 사건사고없이 딸과 아들 손주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정원을 가꾸며 틈틈히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이웃들의 좌충우돌 일상을 지켜보는 잔할머니의 소소한 일상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기중
후반부 겨울로 가니 떠나가는 사람들과 떠날 준비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좀 무거워지기도 했었다.
삽화없이 텍스트로만 구성된 책이라 할머니 모습을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홍여사님이 모바일그림으로 그리신 귀여운 잔할머니의 모습이
정말 딱이다 싶어진다. ^^
비를 좋아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웠던 폭우로 빗소리에 잠 못 들던 날들이 계속되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내년 봄쯤 결혼하자고 한다는 큰딸의 얘기를 들어서인지
'우리모녀 사이는 늘 각별했다'는 한 구절엔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목요일인 오늘
잔할머니의 일기도 8월 6일이 목요일의 일기엔 혼자서도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시는 할머니의 일상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평범하고 소소한 삶과는 전혀다른
장편소설을 좋아하며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으면서 탐정놀이를 했다는 이야기와
독서 모임을 만들었지만 타인의 취향은 대체로 나의 취향이 아니어서 남이 골라준 따분한 책을 읽는 일은
2년만에 그만두었다는 구절부터는 잔할머니를 더 좋아하게 된것 같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이제 중반부를 조금 넘긴 나이...
생존의 시간은 늘어났지만 삶의 질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한채
건강문제나 경제적인 결핍에 의한 쓸쓸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곤 했는데
책을 덮으며 책의 마지막 표지의 있던 글처럼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슬픔들을 받아 들이고
그저 그런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잔 할머니처럼 살고 싶어졌다...

5월 14일 목요일
잠을 설쳤다. 어제 드니즈 집에서 너무 많이 먹고 마신것 같다. 나는 과식에 익숙지 않다.
게다가 어제 아주 늦게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모임이 파할 즈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닌은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밤새 바람이 소란스럼게 불었고 빗물이 빗물받이에 타닥타닥 떨어졌다. 빈집에서 문들이 덜컥거렸고 어디선가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나는 텔레비전을 켰고 새벽까지 비몽사몽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p79
6월 28일 일요일
우리 모녀 사이는 늘 각별했다. 그 애를 낳았을 때 아들은 이미 열다섯 살이었고 오래 가지 않아 집을 떠났다. 아들은 아버지와 자주 부딪쳤기 때문에 대학입학시험을 통과하자마자 릴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버렸다. 나는 집에 거의 붙어 있지 않은 남편과,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어머니 사이에서 자주 외로워했다. 그런 나에게 딸은 선물과도 같았다. 그 아이는 아주 순했다. 내가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동안 몇시간이고 혼자서도 차분하게 놀았다. 나는 딸과 손을 잡고 오솔길로 산책을 다니곤 했다. p132
8월 6일 목요일
혼자 살아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은 늘 있다. 요리도 하고, 독서도 하고, 십자말풀이도 하고, 카드점도 친다. 침대머리 서랍에 간직해놓은 몰스킨 수첩에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인상깊은 말, 책이나 신문에서 발췌한 문장을 적어두기도 한다. 삶, 죽음, 신, 교황에 대한 이야기. 상관관계도 없고 순서도 없는 사진들을 앨범에 모으듯 여기 어울리지 않을 별의별 말을 수첩에 모아둔다. 나는 뜨개질도 아직 그만두지 않았다. 반복적인 손놀림이 통증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뜨개질하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긴 한다. p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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