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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은희경...
한때 공지영, 신경숙과 함께 내 책장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작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책은 타인에게 말걸기...
이 책이후로 난 그녀의 팬이 되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은희경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던 소식에
나도 모르게 마우스가 빠르게 움직여
북카트에 골라 담고는 지난주 내 손안에 들어왔다.
비슷한 연배의 저자라 그런지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자꾸 과거의 나로 소환된다.
나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던 대학 낙방
방황하던 재수시절을 거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찌하다보니 다니게 된 대학교...
학교에 가고 싶어도 굳게 다친 교문
모처럼 큰 맘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운좋게 줄 안서고 도서관에 자리잡은 기쁨도 잠시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밀려드는
매캐한 체류탄 냄새로 눈물, 콧물 흘리며
공부 따위와는 점점 멀어지던
어둡고 비관적일 수 밖에 없던 나의 이십대...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2019년 가을 초입에 읽은
1977년 여자 기숙사에서 만난 여학생들의 이야기 빛의 과거...
심야라디오
레코드점
덕수궁
중앙극장
YMCA건물
학보사
명화극장
AID 아파트
명동 몽쉘통통
적어도 꼬맹이 세대에는 모를
우리만의 단어 혹은 명칭...
나는 나를 누구로 알고 살아왔던 걸까,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약점의 더듬이에 의지해서 살아온
수동적인 사람만은 아니었다.
망가진 결혼 또한 짖궂은 운명에 휘둘인 게 아니라
회피라는 선택의 한 기착점이었을 뿐어었다. P300
책을 읽는 내내
스사한 바람이 가슴팍으로 파고 들더니
이구절에선
마음 한구석이 베인듯 아프다. ㅠ.ㅠ
나역시 편집하거나 유기하고픈 시절의 이야기여서일게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적당히 타협한 후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재의 나를 발견하고 주눅들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행복하다고 얘기 하고 싶어진 책...
빛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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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 비관론자도 설득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p319~320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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