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에 반응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선생이 이 시대에 태어나 대중 앞에 서서 쓰고 말한 모든 것도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P21
"모르겠어. 나는 평생 도전이 필요한 인간이었네. 계속 쓰고 또 쓰고 다시 썼네.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다시 하는 거라네. 니체도 다르지 않아. ‘운명이여오너라.‘ 위인들이 거창해 보여도 그렇지가 않아. 지면 또 한 번 부르짖을 뿐이지. 스스로 쓸 말이 없어서 남의 얘기나 옮겨봐. 그건 서생이지. 글자 쓰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이 아닌 거야. 사람들은 글씨 쓰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을 혼동하는데, 글씨 쓰는 사람은 서경이네. 베끼는 사람 보다시피 나는 지금 많이 아프네.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져.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남은 이들을 위해 각혈하듯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 P37
로스가 이렇게 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때 인간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가르쳤던 정신과 의사퀴블러 로스, 그토록 오래 죽음에 훈련된 사람도 보통의 - P41
인간들처럼 부정과 분노로 출발해서 똑같은 절차를 거•쳐갔다니. 철창 속의 호랑이와 철창 밖의 호랑이라는 말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죽음 앞에 인간은 얼마나 몸서리치게 작은가. - P42
상상해보게. 열 명이 있으면 열 명, 백 명이 있으면 백명, 1억 명이 있으면 1억 명의 각각 다른 생각이 있는 거야. 그게 정상이라네. 무엇이든 만장일치라면 그건 한명과 다름없네. 국회의원이 백 명이든 2백 명이든 만장일치로 결의하면 국회의원은 한 사람이야. 안 그런가? 투표 결과에 만장일치가 많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 - P52
야. 그러면 왜 민주주의를 하나? 왕이 다스리고 신이 통치하면 되는 거지. 민주주의의 평등은 생각하고 말하는 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거라네. 그 사람만의 생각, 그사람만의 말은 그 사람만의 얼굴이고 지문이야. 용기를 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하네.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 P53
인터뷰는 대담이 아니라 상담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지수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inter의 신비‘라는 말에 맥박이 빨라졌다. - P60
"어떤 태도로 들으면 선생님이 전하고자 하는 진리에가 닿을 수 있을까요?" "하하. 배신할 것을 전제로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거야. 라스트 인터뷰는 유언의 기법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운 인터뷰가 되겠지.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게나. 어쨌든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을 테니까. 내 나름대로 진실을 다 얘기할거라고. 하지만 때로는 내 이야기를 반대로 들어야 진실이 될 때도 있어. 마음을 활짝 열고 그때그때의 레토릭을 이해하게." - P72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 - P75
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 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 P76
진실은 묻히고 덮이기 쉬워. 하이데거가 그랬지. 일상적 존재는 묻혀 있는 존재라고. 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눈물은 아닐 테고요."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죽네. 나도 자네도." - P95
스승은 혼잣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외로움 속에서도 수십 년씩 변함없이 관계를 맺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도 다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일 거야." 평화롭기보다 지혜롭기를 선택해서 살았던 이어령의 치열한 나날들. 그가 그렇게 살았기에 우리는 여전히 스승의 옷자락을 붙들고 배울 수 있다. 여든여덟 살의 스승은 아낌없이 지혜를 나눠주는 동시에, 간간이 소년기의 고독과 지적 분투의 현장으로 빠져들었다. - P125
"질문 없는 사회에서 질문자로 사는 건 형벌이지요." "알아도 모른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사는 게습관이 된 사회는, 삐걱거리는 바퀴를 감당 못 해. 튕겨내고 말지. 나뿐이 아니네. 글을 쓰는 사람들, 한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돼 있어. 요즘엔 더하지 않나? 생각이 자랄 틈을 안 주잖아.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나와. 이름 몰라도 사진 찍어서 올리면 다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로 생각한다네." "시간이 걸려도요?" "그럼.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는 거야. (활짝 웃으며) 모 - P137
중앙분리대는 기호가 아니라 물질이거든. 반면 중앙분리선은 물질이 아니라 기호이고. 똑같은 분리의 역할을 해도 콘크리트로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못 가게 하는 것은 자연계로 규제하는 것이야. 반면 선이라는 기호를 긋는 건 법으로 금지하는 거지. 기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거든. 이 세상은 자연계, 기호계, 법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네. 이 세 가지는 전혀 다른 세계야. 이걸 이해해야 우리는 혼돈 없이 세계를 보고 분쟁 없이 대화할 수 있어." - P141
"선생님!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해야 합니까?"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thinking man 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 P144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 P145
"생명체 전체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는 거지. 그럴수록 경계를 알아야 해.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가 인간중심주의로 말하고 있는지, 탈인간중심주의로 말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가늠해야 한다네. 철학이 따로 있는 게아니야. 아까 말한 자연계(피지스), 법계(노모스), 기호계(세미오시스)처럼 범주를 구분해서 사고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기호 안에서도 정확한 개념을 토대로 사고해야 하고.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자연계, 법계에는 그나마 고개를 끄덕여도 기호까지는 못 넘어와. 기호계야말로 놀라운 세계라네. 기호계에서 문학이 나오고 예술이 나 - P146
오고 본격적인 철학이 나오거든." - P147
"자기만의 동력이요?"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아.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많으면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가벼워진다고요?"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그런 세계에서는 사실 ‘사회성‘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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