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생긴 벌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이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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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아무리 현란한 어휘와 화술로 말의 외피를 둘러봤자소용없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읽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를 읽는 것이다. 《말의 품격>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스로 자신의 말과 세계관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P10

옛말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귀를 기울이면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상대가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마음의 문을열고 나올 수 있도록,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 P25

그러므로 잘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만 한다.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 - P26

이는 의사소통 과정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광활한무대에서도 적잖이 도움이 되는 자세이기도 하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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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묘지·1

(조정권)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얻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 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에 뿌려진 생목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를 내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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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포와는 처음 만난 이후 수십 번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번은그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항상성과 균형을 추구합니다. 작가 선생은균형이 맞지 않았어요. 사진들을 좀 보세요. 자연은 선생의 얼굴에 엄청난 양의 뼈를 추가함으로써 그걸 교정했습니다. 만 번을 듣고 백 번을 봐도 한번 해 보는 것보다 못한 법이죠."
기도 폐쇄의 원인과 치료 과정을 거치며 이 길고 기묘한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내가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태어났을 때와 어린 시절, 심지어 성인 시절의 코와 입도 사전에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 바른 자세 취하기, 딱딱한 것 씹기, 그리고 아마 약간의 뮤잉 운동을 하는 의지력만으로 우리는 시간을 되돌려 지난 수백 년 동안 이루어진 숱한 피해를 복구할 수 있다.
이렇게 장애물을 치움으로써, 우리는 마침내 다시 호흡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 P198

호흡은 자율 기능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심장이나 소화 기능의 속도를 언제 올리고 언제 늦출지, 또는 한 기관에서 다른기관으로 혈류를 언제 바꿀지, 그 시점을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지만, 언제 어떻게 호흡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일부러 느리게 호흡하면 미주신경망을 따라 소통이 시작되고 부교감 상태로 이완이 될 것이다. 일부러 정말 빠르고 격하게 호흡을 하면, 미주신경 반응을 반대로 뒤집어 우리를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 이런 호흡으로 자율신경계에 의식적으로 접근해 자율신경을 조절하고, 특히 심한 스트레스를 고의로 유발할 수가 있다. 그럼으로써 나머지 낮과 밤 시간에는 스트레스를 잠재우고 편히 쉬면서 회복을 하고, 부양과 번식을 할 수 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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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직관에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자기 마음의 눈이 바라보는 것이 직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직관은 사물이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감지하는 인지 알고리즘이다.
- 엘리에서 유드카우스키, 「알고리즘이 내부에서 느끼는 방식How An Algorithm Feels From Inside - P77

무지함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먼저 자신이 아프다는 걸 깨달아야만진정한 건강을 얻을 수 있다.
- 노자, 『도덕경』 - P83

관점을 가장 크게 왜곡할 수 있는 욕망도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데, 진실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깊게 숨겨져 있어서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올바름에 대한 욕망desire to be right 도 있다. 일단믿음을 형성하면, 사람은 그 믿음에 대한 집착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만 채택하는 것이 우리 마음의 원초적 행동이다. 이런 편향이 있는 사람은 논쟁에서 무엇이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게 자신이 줄곧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기존 이론, 신념, 세계관과 충돌하는 정보를 무시하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찾는 경향을 의미한다. 심지어 상반된 증거가 제시될 때도 확증 편향이 종종 방어적으로 만들고 원래의 믿음을 강화한다(역화 효과backfireeffect). 이런 경향은 이슈의 양 측면에 있는 집단이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태도 양극화attitude polarization).
설상가상으로 현대 세계는 사람들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미끼를 구조화함으로써 편향을 강화한다. 검색 엔진, 뉴스 플랫폼, 소셜 미디어 웹사이트들은 클릭과 조회 수를 늘릴수록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 이용자의 욕구에 영합하려고 한다. 정보를 배포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은 우리를 반향실echo chamber로 끌어들여 인지 알고리즘을 더욱 왜곡시킨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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