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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에 그리스 신화를 담아 - 그리스 신화와 함께 읽는 토종 야생 들꽃 생태 기행
진종구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아이를 키우며 지내다 보니 베란다에다가 이것저것 키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꽃집을 기웃거리는 건 나의 일상이다. 평범한 것들은 싫다. 그저 좀 더 독특한 것이 없나 하다가 결국 결정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에 따 다시 가서 둘러보다가 돌아오곤 하는데......어느날, 시골에 놀러갔다가 산을 한바퀴 돌던 중 이름모를 꽃이 보였다. 어찌보면 볼품없지만, 큰 나무 아래 해도 잘 받지 못한 그곳에서 활짝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넋을 놓고 보다가 갑자기 ' 갖고 싶다, 키우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꼬챙이를 들고 둘러 판 뒤 흙까지 소복히 손에 들고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데려온 하얀 꽃을 심었느냐? 아니다. 심지 못했다. 들고 내려왔는데 저녁무렵이 되니 시들더라. 물을 좀 줘 봤는데 결국 힘없이 죽고 말았다. 꽃잎이 추룩 하고 처지면서 나를 원망하는 듯 보였다. 그냥 놔두지. 왜 날 데려왔어? 하는 것 같았다. 그 꽃은 해도 잘 들지 않고 나무뿌리 사이에 억지로 머리를 내밀고 있으며 나를 유혹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 세계를 침범한 건 아닌가 싶었다.
작가 진종구님은 2002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면서 6·25 동란 전적지를 답사하던 도중 비무장지대(DMZ)의 생태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경기북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부근과 우리나라 끝단에 있는 섬의 야생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책 안의 대부분의 꽃을 그곳에서 담았다고 한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그곳엔 이름모를 녀석들이 무성하다. 인간이란 침입자를 피해 그곳에서만 나고 지는 건 아닌지...... 꽃들을 보는 순간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한편으론 얼마전 산에서 캐어 갖고 내려와 내가 죽게 만들었던 그 꽃이 생각나 마음을 접었다. 덕분에 이 책을 보면서 그 충동의 일부를 메워 넣었다.......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있지만, 이번 기회에 그리스 신화에 대해 큰 가닥을 알게 되었다. 신화는 정말 아이들이 열광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신화속 인물들의 사연과 들꽃의 연결이 환상적이란 생각은, 이 책을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버리게 된다. 작가는 수많은 들꽃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들꽃을 모르는 이들에게 우리의 꽃이 이렇듯 아름답게 펴 있다' 이름모를 꽃이란 말을 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어떤 사연으로, 어떤 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말해준다.
참 고맙다. 나처럼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을 위한 신화의 첫 시작을 말해주는 페이지란..... 태초 세상이 혼돈(카오스)상태였을 때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늦은 밤, 책을 한번 훑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었던 내 손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어찌나 흥미롭던지...... 헷갈리는 이름 때문에 열심히 노란 태그지를 붙여가면서 읽는 열정을 불태웠다. 제우스가 전쟁으로 올림포스 산 정상에 앉아 신들의 왕이 되고 인간들의 지배자가 된 이야기를 보면서 당장 그리스 신화 전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들꽃들을 보면서 신화이야기와 어우러져 머릿속에 박히는 꽃 이름들이 반갑기 그지 없다. 왜 그 꽃이름이 ' 미치광이풀'인지...... 누구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스 신화와 연결해서 꽃말을 듣고 보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이른 봄 푸르른 대지 위를 산들산들 지나 다니며 꽃들을 부르고 여린 처녀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산들거리는 바람결에 꽃이 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인지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풍요와 봄의 여신이자 꽃의 여신인 플로라( Flora )의 연인이기도 했다. 꽃의 여신 플로라 ( Flora ) 의 이름에서 오늘날 꽃이라는 일반명사 플라워 ( flower)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P. 6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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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신들이나 인간들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로 파생되어지는 과정은 재미있다. 몰랐던 사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네모네라는 말은 자주 들었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리스 신화 속 사람이다.( 혹시 이 서평 읽는 누군가는 과자 이름이 아닌가..... 하는 분도 있을 듯 하다. 내가 그러했다.)
봄의 여신 플로라는 자신의 시녀 아네모네(Anemone)와 함께 아담한 성에 살고 있었는데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그 성에 닿았을 때 플로라는 자신 말고 아네모네에게 관심 가지는 제피로스때문에 화가 났다. 그리하여 아네모네를 멀리 포모누의 성으로 쫓아냈는데 제피로스는 아네모네를 찾아가게 되고 두사람의 밀회장면을 새로 변신한 플로라가 목격하게 되면서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시녀였던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 버린다. 제피로스는 아네모네를 잊지 못해 봄만 되면 따스한 산들바람을 일으켜 그 주위를 맴도는데 그것이 바로 아네모네, 즉
바람꽃(Anemone)라고 한다. 꽃말과 그 꽃의 영어는 신화속 주인공 이름과 똑 같다.
바람꽃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 금지된 사랑이라고 한다. 바람꽃에는 독성이 있어 마법의 약초라고 불리우는데 그것은 아마도 아네모네의 한 맺힌 눈물이 스며들어 독성이 남아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작가의 해석이 덧붙는다. 이렇듯 꽃의 아름다운 사진과 신화속 이야기, 꽃말과 개화기 그리고 특징은 물론,신화를 그린 그림까지 담아놓은
< 들꽃에 그리스 신화를 담아>다. 들에 핀 보라색 빨간색 흰색 꽃들에게 각자 이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독특한 엮음으로 만나니 신기하다. 우리가 즐겨 먹던 곰취의 꽃대를 처음 봤는데 잊을 수 없다. 노란 사루비아를 본 느낌이다.
이런 들꽃을 발 들여놓기 힘든 곳에서만 볼 수 있다니......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 진정한 저탄소 녹색성장의 미래를 꿈꾸며 ' 라는 소제목으로 환경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도 이런 아름다운 들꽃을 민통선부근 혹은 우리나라 끝단에 있는 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길가다 자주 마주치던 민들레꽃과 제비꽃도 찾아보기 힘든 요즘인데 책 속의 꽃들을 자주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