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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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우포늪. 늪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면 좋겠지만...


#1. 

원래 계획은 우포늪 따라 한바퀴를 쭉 걷기로 했는데, 몇일전 내린 비로 길이 막혀 중도포기했다. 그 길목에서 만난 관리아저씨 덕에 우포늪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늪이라 해서 고인 물이 아니라는것과, 늪이 댐을 대신할 정도로 많은 물을 가둔다는 것, 한해살이 수중식물들이 침잠하여 바닥을 이룬다는 것, 원래는 더 넓은 늪인데 사람이 쌓은 제방에 갇혀 일부는 개간되고 일부는 갈라져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것(우포, 목포 같은) 등등. 하지만 가장 기억남는건 그 아저씨가 은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비록 국민학교때까지만 머문 동네고 청중년시절 삶의 터전은 가까운 대도시 대구였지만, 은퇴 후에는 어릴적 추억이 있고 부모님을 모신 고향 우포늪으로 돌아오게 되더라는 그 말에 순간 부러움이 앞섰다. 나의 고향이란 것은 굳이 말하자면, 네모반듯한 아파트 단지와 아이들 소리 시끄러운 놀이터 정도다. 소를 먹이고 친구들과 멱감은 고향이 있다는 점이 부러웠고, 자랑할 수 있는 고향이랄게 없는 우리 세대가 안쓰러웠다.


#2.

그렇게 막혀버린 길목이다보니, 원래 계획한대로 출발점에서 버스를 타는건 불가능해졌다. 우포가 고향인 그 아저씨는 막힌 길목 근방에 있는 다른 버스정류장을 추천해줬고, 한시간에 한대꼴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시골에서의 시간관념은 대도시와는 확실히 다르다. "금방와, 한 2-30분 있으면 올거야" 라고 태연히 말씀하시길래, 나도 태연히 정류장에서 30분 가량 버스를 기다렸다(셀카봉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근데 희안한 게 멍때리며 보낸 그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주위는 고요했고 손에든 봉지과자는 맛있었고, 잉여로왔다.


#3.

내 여행이란 건 참 별거 없다. 생각을 정리하러 간다든가 특별한 경험을 쌓으러 가는 것도 아니다. 운이 좋으면 예상못한 좋은 인연을 만나 얘기를 듣고, 평범히 소비되는 시간을 되려 행복하게 느끼는 경험을 하러 종종 나다닌다. 어쨌든 일상에서 살짝 비켜나 즐거히 지내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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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함께 입사했다가 올해 1월에 그만둔 동기가 있다. 

그 친구가 이번에 우리 집 근처에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를 냈다. 

정년 퇴임한 아버지를 두고 전업주부 엄마를 둔 나는 장사를 한다든가 사업을 한다든가 하는 것에 

막연히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몇개월 전 만났을 때에도 샌드위치 가게를 낸다는 소리에 

과연 잘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리고 그건 역시나 기우였다. 무척 즐거워보였다.

비록 회사생활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가게에서 보내고 있지만, 어떻게 해나가야겠다든가 

어떤 근무환경을 만들어야겠다든가 하는 것들을 고민하는 모양이 좋아보였고, 본인도 만족한다고 했다. 


올리브를 유독 좋아하는 손님을 위해 올리브를 따로 한통 더 담아주고,

추운 아침시간에는 커피도 하나 뽑아 건내주고 한다고 했다. 

장사가 끝나는 밤 시간에 오는 손님한테는 판매하는 쿠키도 공짜로 다 나눠준다고 한다. 

그 몇푼 아껴서 뭐 하겠냐며 웃는 모습에 얼마 전에 읽었던 <장사의 신>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장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다 제목에 끌려서, 어디 얼마나 잘났나 보자며 읽었던 책이었는데, 꽤 재밌게 읽었다. 

아 이런 가게라면 나도 당연히 끌리겠는걸, 이라는 생각도 했고 나도 이런 가게 한번 해보고 싶은데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이 아저씨가 매번 맥주병 딸 줄 알고, 양배추 좀 썰줄 알면 누구나 이자카야를 열수 있다고 

꼬시는 통에 더욱 혹했다. 

책을 빌려봐서 그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한번 장사해봐 라고 하는 말 중에 이런게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맥주 한잔 주문한 손님이 맥주를 받자마자 한입에 숨도안쉬고 다 마셔버린 경우,

아이고 시원하게 잘도 마시네 이거 한잔 공짜로 더 드릴께라며 맥주 한잔을 더 건내는 거다. 

맥주 한잔 까짓거 얼마나 한다고 아껴봤자 소용없다고 말하는데, 맥주러버인 나도 끄덕끄덕 했다.

그래 장사 이렇게 해야지. 장사는 모름지기 푼돈 아끼지 않는 배포있는 사람이 해야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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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을 먹느라 한동안 커피를 멀리 하다가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갔다. 그런데 커피 맛이 생각보다 별로다. 

내 기억 속의 그 맛이 아니다. 스타벅스가 변한건지, 내 입맛이 변한건지. 

아무튼 동네 스타벅스에 갔고,다행히 그 분위기는 예전과 똑같았다.

스타벅스 하면 노래를 듣든가, 컴퓨터로 작업을 하든가 각자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경향은 동네일수록 심한 것 같다. 갓 집에서 나온 듯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사람들이 바쁘지 않게 몰두해 있다.

아마 미래의 노인정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각자의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겠지. 


아무튼, 스타벅스에 앉아 <혼불>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유명한 서재 주인이 그 책을 읽는 걸 보고 따라 읽었다

(난 따라쟁이니깐!)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정말 재밌다. 1권을 한번에 훅 읽고 나서, 나도 드디어 대하소설을

읽을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창씨개명을 요구하고, 미곡과 온갖 것들을 차출해가는 1940년이 정말 생생히 그려졌다.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제 식민지배를 받았다'라는 교과서 문장 속에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그네들이 어떻게 살아간건지 도저히 상상이 안 갔었다. (그나저나 내 역사 지식이란 것은 지난 10년이 흘렀어도

겨우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에 좀 슬프다)

 

계급제 사회가 서서히 무너져 가는 시기였다. 그 생각은 낮은 계급에게도 높은 계급에게도 번져가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이 문장들이 현재의 사회에도 와닿는다. 희안하지. 

제엔장헐 놈의 시상. 다 똑같은 사람으로 났는디, 쎄 빠지게 일 허는 놈은 죽어라 일만 하고, 할랑할랑 부채 들고 대청마루에 책상다리 앉었는 양반은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눈만 멫번 깜잭이면 멫 천 석이니, 먼 놈의 시상이 이렁가아. 생각을 숫제 안해 부러야제, 생각만 조께 허먼 기양 속이 뒤집어징게...(p105)

그렇게 해서 자연히 인간 사회에 계급이 생길 수 밖에.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심을 품고서 말이야. 낡은 부르조아지 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이지. 있는 자는 없는 자를 경멸하고, 그러면서도 노동력을 착취한다. 반면에 없는 자는 있는 자를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바친다. 이게 얼마나 야비하고 비굴한 상태냐. 이런 체제는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 무너뜨려야 한다(p141)


가장 마음이 아픈 이는 역시나 주인공 효원이다. 꽃다운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강모한테 시집오는데, 강모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첫날밤 옷도 벗겨주지 않고 그냥 잠들어버렸다. 아래 문장을 보고는 책을 읽는 나까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아아아아ㅏ ㅠㅠ 정말 감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야. 

금방이라도 몸의 마디마디를 죄고 있는 띠들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그렇지만 효원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어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대로 앉아서 죽어 버리기라도 할 태세다. 그네는 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그만큼 분한 심정에 사무쳤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이 자리에서 칵 고꾸라져 죽으리라. 네가 나를 어찌 보고.. (p39)

혼례 후 1년이 흐른 후부터, 효원은 강모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것도 신기했다. 바로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시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강모는 그녀를 보지 않는다. 

다른 여자가 마음에 있어서다. 효원의 어머니 정씨부인은 혼례날 베개 아래 하얀 비단천을 하나 깔아주었다. 

첫날 밤 흘린 피를 받아두는(?) 천이었다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나. 

그렇게 장 속에 깊이 접혀져 자신과 함께 빛이 바라지고 말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남편만으로도 머리 아픈데 시어머니 율촌댁은 그간 자신의 시어머니 청암부인에게 피지못했던 기를 

대신 풀 냥인지 효원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저고리 지어오라더니 마당에 내팽겨치고, 밤늦게 등을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겉도는 강모를 다 그녀 탓으로 돌린다. 


할랑할랑 책 한 권 들고 집에서 나와 에어콘 바람쐬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미혼 여자를 

그 시대엔 상상이나 했을까. 기분 안좋다고 방에 쳐박히 있지도 못하고, 반대로 기분 좋다고 밖에 혼자 

싸돌아 다니지도 못했을 그 때를 생각하니, 아 지금 이 시간이 참 좋은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때마침 나온 노래가 daft punk의

something about us 여서, 그 썸타는 가사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ㅋㅋㅋ

아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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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참 띄엄띄엄 읽는데, 어쩌다 보니 최근 읽은 두 권의 책이 모두 재난과 관련되어 있다. 















<밤의 여행자들>은 개인적으로 표지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 책이어서 애뜻한 사랑 이야기 같은 걸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경남 진해에 닥친 쓰나미로 시작해서 재난지역 전문 여행사 '정글' 과 

재난지역을 방문했다가 미궁에 빠져버린 주인공 고요나 까지.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가 계속 펼쳐져서

어딘가 멍해진 채로 책을 읽었다. <28>도 마찬가지. 이전에 <7년의 밤>을 읽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했지만, 

화양시 전체를 전염시킨 빨간눈의 괴질병과 봉쇄된 도시에서 파멸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둘 다 재난과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재난을 다루는 시점은 다르다. 


<28>은 영어로 치면 '재난ing' 다. 어느 순간 시작된 빨간 눈이 계속 전염되고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가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애꿎은 짐승(정확히 개)들에게 그 원인을 몰아세워 무참히 죽이고

나중가서는 사람도 막 죽이는, 여기저기서 죽음이 펑펑 터지는 이야기다. 한편의 재난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사실 책을 빠른 속도로 읽기는 했으나 이야기가 신선하다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러한 재난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매번 신기하다. 119 구급대원 한기준과 간호사 노수진이 그렇다. 당장 언제 나한테 병이 전염될지 모르고  

내가 죽으면 끝인걸 알면서도, 평소처럼 출근하여 사람을 구하러 다니고 병에 걸린 사람들을 간호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당장 내 앞날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다가 노수진의 독백에서 다음과 같은 단서를 찾았다. 그들이 좀 더 의로운 사람이라서라기 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무섭고, 일상을 벗어나는 순간 느껴야 하는 적막감이 두려워 그 자리를 지켰던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들이 떠난 후 더 충격적인 깨달음이 왔다. 자신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찾으려 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그녀는 아버지와 현진이 죽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유의 일이었다.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과 직면하는 게 겁이 났다. (p 355)


반면에 <밤의 여행자들>의 재난은 'had + 재난 pp'다. (맞나?'ㅅ';;)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무이'라는 동네. 그 재난을 상품으로 만들어 먹고 사는 마을 사람들, 그것이 부족해 

더 큰 재난을 거짓으로 만들어내려는 계획. 왠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생각났다.

매일매일 거위가 황금알을 낳자 욕심이 난 주인이 거위를 죽여 배를 가른 이야기. 물론 무이는 이미 한물 간 곳이라

황금알을 낳지도 못했고, 거위의 주인은 단지 더이상의 황금을 얻지 못한 반면 무이는 더 큰 불행을 얻었지만, 

그냥 그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비슷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생각치 못한 전개와 순간순간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장면들 덕분에, 흥미로웠다. 



재난 속에서든, 재난이 흘러간 자리에서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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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가 끝이 났다. 

분명 연휴가 시작된 수요일 밤에는 꽤 긴 연휴가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일요일이 되니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시간을 돌리고 싶다.


#.

평소에 만나뵙지 못한 웃어른이나 친척 동생들을 만나라고 시간을 내주는 설날 연휴이지만,

나는 내내 집에 앉아 그림만 그렸다..기보다 정확히 말해 색을 칠했다. 

말하자면 이건, 어린 아이들이 하는 크레파스/색연필 칠하기의 성인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밑그림이 되어있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칠하는 놀이다. 

총평은 나처럼 취미생활에 목마른데 게으른 어른들을 위한 꽤 괜찮은 놀이감이었다.

(말은 이렇게 썼지만 나는 거의 빠져들어 밤낮을 바꿔가며 몰두했다. 애증의 그림 같으니라고)




마지막엔 이렇게 날짜와 싸인까지 넣고, 히히 :D



#.

색칠만 하는 건 심심해서, 책상 한켠에 노트북으로 그동안 못본 '응답하라1994'와 '마녀사냥'을 켜놓고 보면서 했다.

마녀사냥은 입소문만큼이나 재미있었고, 응사도 기대만큼 훈훈했다. 


사실 응사를 보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귀에 익은 음악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나는 이 노래가 제일 좋았다. 




어쩌면 이 노래는, 마녀사냥의 연애 좀 해 본 그 '오빠'들이 해주는 조언들이랑 상통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오빠들이 살아보니까,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해. 괜히 자존심 세우거나 눈치 볼 것 없이, 

한번이라도 더 예뻐해주고 안아주고 입맞춰주도록 해~' 라고 하는. 사실 시크한 척 하는 그 오빠들보다도

어떤 시민인터뷰에서 했던 여자분이 제일 멋있어다. "얼른 고백해요. 다 아니까 ~"라고 말한 분. 

그래 맞지맞지.고개를 끄덕거렸다. 




#. 

생각해보니 설날인데, 고기를 넣고 끓인 불투명한 국물에 계란 흰자와 노른자가 살짝 풀려잇는 

설날 떡국을 못 먹었다. 아아. 내일점심은 떡국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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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2-0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지난 떡국 맛있게 드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