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먹느라 한동안 커피를 멀리 하다가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갔다. 그런데 커피 맛이 생각보다 별로다. 

내 기억 속의 그 맛이 아니다. 스타벅스가 변한건지, 내 입맛이 변한건지. 

아무튼 동네 스타벅스에 갔고,다행히 그 분위기는 예전과 똑같았다.

스타벅스 하면 노래를 듣든가, 컴퓨터로 작업을 하든가 각자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경향은 동네일수록 심한 것 같다. 갓 집에서 나온 듯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사람들이 바쁘지 않게 몰두해 있다.

아마 미래의 노인정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각자의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겠지. 


아무튼, 스타벅스에 앉아 <혼불>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유명한 서재 주인이 그 책을 읽는 걸 보고 따라 읽었다

(난 따라쟁이니깐!)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정말 재밌다. 1권을 한번에 훅 읽고 나서, 나도 드디어 대하소설을

읽을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창씨개명을 요구하고, 미곡과 온갖 것들을 차출해가는 1940년이 정말 생생히 그려졌다.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제 식민지배를 받았다'라는 교과서 문장 속에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그네들이 어떻게 살아간건지 도저히 상상이 안 갔었다. (그나저나 내 역사 지식이란 것은 지난 10년이 흘렀어도

겨우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에 좀 슬프다)

 

계급제 사회가 서서히 무너져 가는 시기였다. 그 생각은 낮은 계급에게도 높은 계급에게도 번져가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이 문장들이 현재의 사회에도 와닿는다. 희안하지. 

제엔장헐 놈의 시상. 다 똑같은 사람으로 났는디, 쎄 빠지게 일 허는 놈은 죽어라 일만 하고, 할랑할랑 부채 들고 대청마루에 책상다리 앉었는 양반은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눈만 멫번 깜잭이면 멫 천 석이니, 먼 놈의 시상이 이렁가아. 생각을 숫제 안해 부러야제, 생각만 조께 허먼 기양 속이 뒤집어징게...(p105)

그렇게 해서 자연히 인간 사회에 계급이 생길 수 밖에.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심을 품고서 말이야. 낡은 부르조아지 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이지. 있는 자는 없는 자를 경멸하고, 그러면서도 노동력을 착취한다. 반면에 없는 자는 있는 자를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바친다. 이게 얼마나 야비하고 비굴한 상태냐. 이런 체제는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 무너뜨려야 한다(p141)


가장 마음이 아픈 이는 역시나 주인공 효원이다. 꽃다운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강모한테 시집오는데, 강모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첫날밤 옷도 벗겨주지 않고 그냥 잠들어버렸다. 아래 문장을 보고는 책을 읽는 나까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아아아아ㅏ ㅠㅠ 정말 감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야. 

금방이라도 몸의 마디마디를 죄고 있는 띠들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그렇지만 효원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어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대로 앉아서 죽어 버리기라도 할 태세다. 그네는 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그만큼 분한 심정에 사무쳤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이 자리에서 칵 고꾸라져 죽으리라. 네가 나를 어찌 보고.. (p39)

혼례 후 1년이 흐른 후부터, 효원은 강모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것도 신기했다. 바로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시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강모는 그녀를 보지 않는다. 

다른 여자가 마음에 있어서다. 효원의 어머니 정씨부인은 혼례날 베개 아래 하얀 비단천을 하나 깔아주었다. 

첫날 밤 흘린 피를 받아두는(?) 천이었다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나. 

그렇게 장 속에 깊이 접혀져 자신과 함께 빛이 바라지고 말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남편만으로도 머리 아픈데 시어머니 율촌댁은 그간 자신의 시어머니 청암부인에게 피지못했던 기를 

대신 풀 냥인지 효원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저고리 지어오라더니 마당에 내팽겨치고, 밤늦게 등을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겉도는 강모를 다 그녀 탓으로 돌린다. 


할랑할랑 책 한 권 들고 집에서 나와 에어콘 바람쐬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미혼 여자를 

그 시대엔 상상이나 했을까. 기분 안좋다고 방에 쳐박히 있지도 못하고, 반대로 기분 좋다고 밖에 혼자 

싸돌아 다니지도 못했을 그 때를 생각하니, 아 지금 이 시간이 참 좋은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때마침 나온 노래가 daft punk의

something about us 여서, 그 썸타는 가사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ㅋㅋㅋ

아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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