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런 장면 너무 좋아 T.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초보인지라 잘 모르는 작가들이 많다. 성석제 작가님도 이름만 많이 들었고(아, 그분?) 

실제 글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가 추천해줘서(추천해준 사람이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계속 모르고 살았을 건데, 하필 호감가는 누군가였다)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꽤 많은 책을 쓰신 것 같은데, 내가 회사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은 오직 이 책 한 권이었으므로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 

근데 이 책, 재밌네 >_<  너무 재밌어!


내가 훔치고 싶은 말하기 였다. 

난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그 어떤 큰일도 내가 말하면 담담해져 버리고(좋은 말로는 침착하다고, 점잖다고들 한다) 

작은 일상의 에피소드가 되어버리는데. 

이 분의 글은 소소한 일도 이야기가 되고, 다소 과장된 말도 밉지 않게 하고, 

그 천역덕 스러운 말들 덕분에,  읽는 동안 육성으로 하하하 웃어버리게 된다. 


재작년인가 내 친구의 부인, 친구들이 제수씨라고 부르는 양반이 김밥집을 시작했다. 내 친구는 그 당시 어떤 회사의 전무이사였다.부인의 김밥집이 김밥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한 식단의 음식을 주변에 배달해주고 있었으므로 바쁠 때는 내 친구가 그릇을 찾아와야 했다. 그는 퇴근을 할 때면 배기량이 큰 검정색 고급승용차를 몰고 인근의 가게들을 한바퀴 돌곤 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철가방을 든 그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릇 가지로 왔습니다"하고 그가 우렁차게 외치면 가게 주인들은 헷갈리는 표정을 짓다가 그릇을 들어서 철가방에 넣어주며 "사장님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아닙니다. 아직 전뭅니다. 앞으로도 많이 이용해주십시오"하고는 김밥그룹의 실세인 것처럼 씩씩하게 걸어나왔다고 한다. (p21)

그로부터 대략 이년 뒤, 서울 도심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그 학교는 내가 들어가던 해가 개교 90주년이라고 했다. 학교가 오래되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들의 전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중요하다.(p182)

우리는 모험을 하려고 했으므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모험을 떠난 기사가 돈 내고 밥 사먹고 돈 내고 성에 묵고 돈 내고 청룡백호를 타면 그게 어디 모험인다. 우리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고 흔들려봤자 별수없었다. 돈은 원래 없었기 때문에. (p201)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난 이 책을 저녁에 읽으면서 다음 날의 점심메뉴를 결정했고, 심지어 생전 시도한 적 없는 '추운 날 냉면먹기'에도 도전했다.

 

(이 날씨에 냉면이 왠말이냐며 함께 식사한 차장님은 냉면집에서 육개장을 시켰다. 난 원래 추울 때 먹는게 냉면인데

촌스럽게 뭘 모르신다며 호기롭게 함흥냉면을 주문했다. 다 먹고 후식으로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차장님은 아이스라떼를 먹었다?)


다음날 우리 세 사람은 우쭐대며 노인의 논으로 향했다. 그런데 노인은 커피는 몰라서 주지 못했고 담배는 제일 싼 백원짜리 '환희'를 사주었다. 우리의 입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래도 어떻든 우리는 모를 심었다. 노인의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공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전 새참이 오지 않았다. 알고보니 할머니가 허리가 아파서 남처럼 새참을 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동네의 두렛일에서도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점심시간이 되고 배가 고파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 되어서야 할머니가 함지가 든 지게를 진 할아버지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함지의 반은 밥, 반은 겉절이였다. 그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할머니는 고추장을 한사발 함지에 퍼넣었다. 그러고는 물어보지도 않고 세상에 나온 지 80년 된 주름진 손으로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우리는 위생, 맛, 재료,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그 모든 행동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그 논은 인가에서 십리는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먹을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입속에 가득 차는 환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p120)

한입 그득할 만큼 밥이 담긴 놋숟가락이 덤벼온다. 온몸이 입이된다. 혀가 삶이다. 한순간이 눈 내린 들판의 달빛처럼 환해진다.(p108)


글을 읽으면서 성석제 작가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곁에 두고 싶은 사람. 그래서 책을 몇 권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구판절판


감자 쪄 먹을까?
반쯤 번져나간 흰 불꽃의 형상을 내려다보며 멀찌감치 서있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위에 가서 네가 가져올래?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그냥 안 먹을래요.
두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언제 우산쓰고, 언제 감자 가져다가...
내 말에 당신이 운을 맞췄습니다.
언제 씻어서, 언제 물 붓고...
나는 붓을 걸어놓고 선선히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감자 가져오는 것까지만 할게요.
당신은 싱크대로 걸어와서 양은냄비를 꺼내주었습니다.
몇 개나?
글쎄, 넌 출출하지 않니?
나는 냄비를 받아 들며 다시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가신 것은,
갑자기 당신의 손이 내 이마에 얹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머릿속에서 불이 꺼진 것 같았습니다.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당신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 이마가, 영특하게 생겨서.
당신이 말을 더듬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파란 돌 中>
-2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가 파리에 너무 가보고 싶어져서 구글 스트리트뷰라도 켰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에 가보고 싶고 센강 주변을 걷고 싶고 릴라 카페에 앉아 뭐라도 써보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