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구판절판


감자 쪄 먹을까?
반쯤 번져나간 흰 불꽃의 형상을 내려다보며 멀찌감치 서있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위에 가서 네가 가져올래?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그냥 안 먹을래요.
두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언제 우산쓰고, 언제 감자 가져다가...
내 말에 당신이 운을 맞췄습니다.
언제 씻어서, 언제 물 붓고...
나는 붓을 걸어놓고 선선히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감자 가져오는 것까지만 할게요.
당신은 싱크대로 걸어와서 양은냄비를 꺼내주었습니다.
몇 개나?
글쎄, 넌 출출하지 않니?
나는 냄비를 받아 들며 다시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가신 것은,
갑자기 당신의 손이 내 이마에 얹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머릿속에서 불이 꺼진 것 같았습니다.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당신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 이마가, 영특하게 생겨서.
당신이 말을 더듬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파란 돌 中>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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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오늘 하루 휴가다          lol

휴가 전날인데도 과감히 일찍 퇴근해서(7시 반이었는데도 엄청 이른 시간으로 느껴진다)

집에 도착한 것이 8시 무렵이다. 

엄마가 해준 돼지주물럭(생각해보니 꽤 귀여운 작명이지 않나? 만드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돼지고기에 양념과 마늘 등을 넣고 주물럭주물럭)을 먹고 곁들여 캔맥주 한잔을 마시고 

그 후엔 침대에서 책을 좀 읽다가 9시반쯤 잠드,,ㄹ었어야 했는데 아직 깨어있다. -_-

누울때만해도 분명 눈이 안 떠질 정도로 잠이 왔었는데 

막상 베개를 베니 눈이 말똥말똥하길래 DMB보고 인터넷하고 이 시간까지 못 자고 있다. 


1시 전까지는 좋아하는 해피투게더도 보고, 인터넷으로 옷구경도 했는데

할일이 없어지고 볼거리가 끝나니 문득 뭘해야하지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켜면 정말 할 것이 없다. 뭔가를 받아들이기도 뭔가를 적기도 힘들어서다. 


회사에 있으면 하루종일 꽤 많은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업무를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하는데 그게 빠듯하다 보니, 적당히 이해하고 어물쩡 넘어가는것이 

여러번이다. 그런 자신이 싫으면서도 힘드니까, 마냥 그러고 있다. 


그리고 업무를 벗어나면 나는 말이 없어진다. 

뜻없는 농담이나 타부서에 대한 힐난은 좀 하지만, 

그외의 말다운 말은 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텅 빈 느낌을 많이 받는다. 회사일로 실제 스케쥴 및 머릿속 생각들이 꽉차있으면서도 

막상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진 않고, 그럼에도 다른 관심사나 취미 등을 품고 있지도 못하다. 


그리고 사실 오늘은 좀 외로웠다. (;ㅁ; 맥주 한잔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았다. 이리 질질 대다니)

맥주가 퇴근할때부터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함께 할 사람을 찾아보니 없더라. 

난 이때까지 뭐한걸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까 인터넷을 하다가 그냥 '무얼해야 재밌을까'라고 검색을 해버렸다. 

그랬더니 의외로 여러 글들이 검색되었는데, 한 블로그의 내용이 내 처지나 생각과 똑같아서 놀랐다. 

묘하게 안정이 되었다. 다들 같은 마음을 품고 있겠지 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 오늘 해피투게더 야식레시피는 대박이었다. 

    황정면(굴소스볶음우동)과 꿀떡은 꼭 만들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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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한달째 ! 나 뿐만 아니라 부서원들 모두 한계를 느끼는거 같다
예스맨이었던 과장님도 이젠 “될대로 되라지”라고 말했다.

슬픈것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않는다는 점.
해내면 본전 못하면 낭패인 일이다.
도와줘도 모자랄판에 옆부서는 일떠넘기기에 바쁘고 더욱 화나는점은
그 주범이 빤히 우리 부서 사정을 알고있는 ,우리 부서 출신과장님이란 거다.

사람을 알려면 역시 일로 겪어봐야한다. 점심 사줄께 하던 다정한 얼굴 뒤에
그런 이기주의가 숨어있을 줄이야.
이미 다른 사람에게도 겪긴 했지만 이렇게 뒷통수 치는 사람을 만나면
한참 멍해진다.

회사라는게 겉보기엔 굉장히 유기적이고 단단한 조직같지만
쓸데없는일, 쓸데없는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허술한 조직이다.
이는 어느곳이나 ㅡ마찬가지인 거 같다.

진심으로 쉬고싶다 .
좋은 책 읽고 음악들으면서 .
힐링이 필요하다.

한참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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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야근을 하고 겨우 회사를 나와 지하철을 탔다. 집이 역에서 멀어서 한번 더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노선이 1개 뿐인데다 운행시간도 기사님 마음대로다. 지하철에서 내려 정류장으로 가면서 과연 막차가 아직 있을까. 택시를 탈까 고민했다.
정류장에는 어느 커플과 서로 모르는 사이인 여자2명이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만 해도 ‘시간이 늦어 막차는 놓쳤을거야’생각했는데 나를 포함해 5명이나 같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직 있는게 아닐까’라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 생각으로 기다리길 1분 2분 5분 10분... 난 이때 정신차리고(버스는 끊겼어!) 택시를 탔어야 했다. 20분이 지났지만 5명 중 어느 누구도 버스 기다리길 포기하지 않았다. 나 또한 기다렸다. 그러길 10분 더하고 나서야 겨우 버스가 안 올거라는걸 인정하고 택시를 탔다.

한 사람의 의심이 여럿이 모이니 확신이 되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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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내에서도 부서별로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우리 부서는 분위기 하나는 좋은 편이다. 

(이 말은 다른 건 다 나쁘다는 것이다. 일의 량, 질, 환경 등등)

부장님이 계실때에도 옆사람들끼리 농담따먹기를 하고, 깔깔거리고 웃는 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는데, 

몇몇 부서를 둘러보고 '아 우리 부서는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야근에 쩔어있을 때 한번 웃고나면 그게 그렇게 힘이 된다. 


오늘도 두런두런 가벼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부장님이 갑작스레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돌아오실 때 병아리 만주나 도쿄 바나나를 사오라고 하자는 둥
이런 얘기였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맛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나씩 얘기가 나왔다. 
대리님 한 분이 '난 일본에서 먹은 복숭아가 정말 맛있었어'라고 말했다. 
여행지에서 계속 걷다가 갈증이 나서 과일가게에 들러 복숭아를 사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흘러넘치는 과즙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면서 아직도 생각이 난다며
너무나 그리운 얼굴로 말했다. 
듣던 내가 '나중에 대리님 아프실 때 일본에서 그 복숭아를 사다드릴께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 배운 시가 생각났다. 

제목과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픈 아이를 위해 빠알간 열매를 따온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날은 크리스마스 였던 것 같다. 흰눈의 하얀색과 빨간 열매의 색이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둥
열심히 밑줄치면서 문제를 풀었었는데 이렇게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찾아보니 김종길 님의 성탄제였다.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안에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제 뭐 잘 알겠냐마는, 다시 읽으니 새롭다. 
물 위에 두면 둥둥 떠다닐 것 같은 가벼운 말들만 하다가 
오랜만에 시를 읽어서 그런가. 

특히 서느런 옷자락이 좋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다가 안으로 들어와 외투를 벗었을때 느끼는 그 겨울 바람의 냄새와 
추위에 살짝 굳은 외투 겉면의 바삭거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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