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구판절판


감자 쪄 먹을까?
반쯤 번져나간 흰 불꽃의 형상을 내려다보며 멀찌감치 서있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위에 가서 네가 가져올래?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그냥 안 먹을래요.
두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언제 우산쓰고, 언제 감자 가져다가...
내 말에 당신이 운을 맞췄습니다.
언제 씻어서, 언제 물 붓고...
나는 붓을 걸어놓고 선선히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감자 가져오는 것까지만 할게요.
당신은 싱크대로 걸어와서 양은냄비를 꺼내주었습니다.
몇 개나?
글쎄, 넌 출출하지 않니?
나는 냄비를 받아 들며 다시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가신 것은,
갑자기 당신의 손이 내 이마에 얹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머릿속에서 불이 꺼진 것 같았습니다.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당신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 이마가, 영특하게 생겨서.
당신이 말을 더듬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파란 돌 中>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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