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내에서도 부서별로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우리 부서는 분위기 하나는 좋은 편이다.
(이 말은 다른 건 다 나쁘다는 것이다. 일의 량, 질, 환경 등등)
부장님이 계실때에도 옆사람들끼리 농담따먹기를 하고, 깔깔거리고 웃는 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는데,
몇몇 부서를 둘러보고 '아 우리 부서는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야근에 쩔어있을 때 한번 웃고나면 그게 그렇게 힘이 된다.
오늘도 두런두런 가벼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부장님이 갑작스레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돌아오실 때 병아리 만주나 도쿄 바나나를 사오라고 하자는 둥
이런 얘기였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맛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나씩 얘기가 나왔다.
대리님 한 분이 '난 일본에서 먹은 복숭아가 정말 맛있었어'라고 말했다.
여행지에서 계속 걷다가 갈증이 나서 과일가게에 들러 복숭아를 사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흘러넘치는 과즙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면서 아직도 생각이 난다며
너무나 그리운 얼굴로 말했다.
듣던 내가 '나중에 대리님 아프실 때 일본에서 그 복숭아를 사다드릴께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 배운 시가 생각났다.
제목과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픈 아이를 위해 빠알간 열매를 따온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날은 크리스마스 였던 것 같다. 흰눈의 하얀색과 빨간 열매의 색이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둥
열심히 밑줄치면서 문제를 풀었었는데 이렇게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찾아보니 김종길 님의 성탄제였다.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안에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제 뭐 잘 알겠냐마는, 다시 읽으니 새롭다.
물 위에 두면 둥둥 떠다닐 것 같은 가벼운 말들만 하다가
오랜만에 시를 읽어서 그런가.
특히 서느런 옷자락이 좋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다가 안으로 들어와 외투를 벗었을때 느끼는 그 겨울 바람의 냄새와
추위에 살짝 굳은 외투 겉면의 바삭거림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