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네메시스 는 우리에게 좀 색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일 수 밖에 없다.
첫 번째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말이 있다.
네메시스를 접하면서 작품마다 보여주었던 작가만의 색깔을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작가 필립 로스와의 만남은 울분, 전락에 이어 이번 작품이 세 번째 인데, 그 때마다 작가에게서 느꼈던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들 이었다.
평범하고 행복한 삶의 과정은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 언제 어느 때든 어떤 이유로든 삶의 불청객은 불쑥 나타나고 결국 불행의 원인으로 드러나는데서 오는 강렬한 느낌 같은 것을 독자에게 던져 준다.
소설의 배경은 2차 대전이 한참인 시절,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미군이 참전을 한 상태에서 외부에서는 전쟁이, 국내 내부에서는 폴리오 전염병이 창궐하는 위협 속에 놓여있다.
이 소설을 읽을 때 쯤 우리 나라 전 국토에 퍼졌던 중동 호흡기 질환의 파동을 겪었던 우리로서는 이 소설이 전혀 남의 모습으로만 다가오진 않았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요인인 전쟁과 전염병에 휩싸인 이야기가 이 소설의 배경인 것이다.
뉴어크의 유대인 동네의 놀이터 감독관인 캔터 선생은 소년 소녀들이 모여서 스포츠를 하는 체육관과 놀이터에서 안전 지도를 해 오고 있다. 폴리오는 주로 아이들에게 전염이 되고 있다. 어디에서 발생해서 어떤 경로로 옮기는지, 무엇이 매개가 되는지 알지 못한 채로 계속 번져만 가고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놀이터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 아이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든다.
보건 당국은 여전히 원인도 모르면서 도시의 더러운 곳을 소독하고 파리를 잡으라고 파리채를 나눠 주지만 역부족, 폐쇄를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그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온 몸이 마비되고 급기야 호흡기에 마비가 와서 죽음에 이르는데 아무런 대처도, 손 쓸 틈도 없다.
메르스가 한참 확산되던 때 치료약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사람이 죽어갈 때의 그 공포, 불안, 대처 방법도 없이 번지기만 하던 상황을 생각나게 하던 대목이었다.
이럴 땐 어쩌겠는가. 위생에 신경 쓰는 것, 소독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할 뿐이다.
폴리오는 급기야 켄터 선생의 놀이터까지 점령하게 되고 그의 아이들도 몇몇 죽는다. 괴로움이 커져 가던 차에 그의 약혼녀 마샤가 일하고 있는 캠프장인 인디언 힐에서 수영 담당 선생으로 그를 불러 들이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켄터는 그 곳으로 떠난다.
전염병이 감싸고 열기와 더위, 공기 중에 타고 오던 악취 이런 것들을 뒤로 하고 인디언 힐로 떠난 그는 건강하고 활기찬 아이들과 숲의 깨끗한 공기로 덮인 캠프장에서 약혼녀와 행복감을 느낀다.
이쯤에서, 어느 부분에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불행을 숨겨 두었을까 의아해 하며, 차라리 한시 바삐 불행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다는 것, 이렇게 짝을 이루어 견뎌 내야 하는 일이 인생인 것일까?
온전히 행복 만으로 지속할 수 없었던 걸까?
인디언 힐에서 다이빙을 가르쳐 주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병에 걸려 버린다. 캠프장에 아무 일이 없다가 자신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병이 되었다는 것에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던 중 그도 결국 병에 걸려 버린다.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켄터, 이 상황에서 진정 그가 전염의 원인 이었을까?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자신이 원인이었다고 믿고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인생을 포기한 채로..
여기에서, 그가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가야 했을까? 약혼녀의 아버지가 의사 이고, 의사로써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도
그는 그렇게 불행하게 살 이유가 충분한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아니면, 그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할 숙명을 전염병이 돌던 그 상황을 이용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필립 로스의 소설은 이렇듯 활짝 핀 행복 만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인생에서 부딪힐 수 있는 느닷없는 불행도 인생의 한 방편으로써 받아들이고, 어떻게 처리하는지의 그 결과를 여러 갈래로 생각해 볼 기회를 던져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