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미생 김파전의 파전행전 - 파트타임 전도사의 리얼 행복 일기
김정주.정새나 지음, 이현숙 그림 / 선율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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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낙관성은 어디서 오는걸까?

" 그 분" 과의 동행을 무의식적으로도 늘상 느끼는 거라서 힘든 생활 속에서도 기운과 명랑성을 잃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원동력에서부터 일까?

 

일은 힘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 시대 청년에게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너 나 할 것도 없이 힘든 것이다.

파트 타임 전도사의 리얼 행복 일기, 라는 글자 안에 그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파트 타임 전도사다. 하고 싶은 일에 전적으로 풀 타임으로 할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바로 일, 생존이 걸린 일 때문이다. 그저 종교 전파자로서 종횡무진, 일파만파 하는 행동을 독자에게 소개 하고 싶은 책이 아니다. 처음에 내게도 종교 서적 쯤으로, 청년 실업에 힘들어 하는 이야기, 그 정도 만큼으로만 다가 왔었고, 크게 내 눈길을 끌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저자의 분투하는 생활상에서 보여지던,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힘든 과정을 고스란히 몸으로 때워 내 가는, 그리고 결국은 한 가정을 이끌어 내는 그 노력에 나도 모르게 끌리면서 무척이나 읽고 싶어졌었다.

 

그는 이 나라 청년, 열심히 일 해야 하고 가정을 일구어서 사회를 이루어 가는 소중한 구성원 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 버린 구조상의 잘못 때문인지 저자와 같은 청년들이 우후죽순으로 양산되고 이 나라의 미래는 이들의 힘듬 만큼이나 벼랑 끝으로 다가가고 있는 느낌으로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저자는 두려워 하고 있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려 들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의 생동감, 인생을 꾸려가는 의지, 어떻게 해서든지 은혜 속에서 견디고 버텨 내 가는 그것들이, 나약해 지려 하고 부서져 무너 내리려 하는, 간신히 받쳐 들고 있는 이 시간들에 기운을 불어 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위로 받고 격려 받아야 할 쪽은 그들인데 오히려, 그들이 있음으로써 격려와 위로가 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었다.

 

열심히 살았고, 죄를 진 것도 아닌데 학자금 대출 빚쟁이로 출발한 인생이 끝까지 발목을 부여잡고 있다. 결혼 할 수나 있을지 의문 스럽다가 교회 자매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오늘도 알바를 할 수 밖에 없다.

 

일의 설움, 고됨, 돈의 노예처럼 오늘도 허덕이다시피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글에서는, 그럼에도 기운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보인다.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에도, 주변의 가족 조차도 외면할 때에도 마음껏 울면서 탓 할 수 있는 사람, 따뜻하게 손 내밀어 격려 해 주는 사람이 있는 곳을 하나님 곁이라 믿고 오늘도 견뎌 나가고 있다. 견뎌 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며 기도해 주려 애쓴다. 각 장 마다 시 구절 처럼 쓰여 있던 것이 아마도, 저자가 했던 기도가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 장도, " 외로워도 슬퍼도", 이것은 일본 만화 캔디의 주제가 로써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 그러면서 활짝 웃을 수 있는,  해피 엔딩을 기대할 만한 노래 가사가 아닌가 싶다. 저자 만의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저자도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 외로워도 슬퍼도" 이겨 내자고.

 

종교인들에게는 공감하는 면이 훨씬 많을 책이 될 것이다. 종교를 떠나서 젊은 청춘의 분투기 쪽으로 본다면 삶의 어려움을, 힘듬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웃픈(?) 느낌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20대 청춘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목적으로 읽어 본다면 좋을 듯 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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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하면 보인다
신기율 지음, 전동화 그림 / 쌤앤파커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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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제목으로 풍기는 "직관" 이 눈길을 매우 끌었었다. 통찰의 의미 보다는 시점상 현재에 가깝다는 생각에, 직관력을 길들인다는 의미에서 읽고 싶었다. 내용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펼쳐져 있어서 다소 의아함 부터 들었다.

가족 이야기, 주변 사람, 주위에 펼쳐져 있는 사물 등으로 저자의 이야기, 느낌이 시작되고 있었고, "직관" 에 어울리는 어떤 내용은 어디에 있는거지, 라는 생각도 찔끔 들기 시작했다.

 

에세이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하지 않고, 시작은 느긋하고 여유롭되 분명히 뭔가를 남겨주며 글을 맺는 형식이다.

복잡하고 난해하다 여겼을지도 모르는 직관의 문제를, 글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흐트러지듯이 글을 써 나가다가 그것이 어느 한 부분을 뚫어지게 꿰뚫어 보듯이 느끼게 하도록 하고 있으니, 힘들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 주제를 다소 편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만만한 주제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요리까지 하고 있으니 독자에게 부담이 적도록 배려 하고 있다고나 할까. 시작은 쉽고 여유있게, 끝에서 꼬리 물고 나오는 직관 부분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직관하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존재와 공명이 그랬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 물건이, 징조, 영감, 유령 DNA 같은 것이 그랬다. 거기에 보태어 내 몸이 나타내는 언어와 울림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로써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느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직관", 녹록치 않은 주제임에 틀림없다.

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은 믿기도 쉽지 않지만 항상 염두에 둔다는 것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나로 부터 시작해 오는 울림, 신호, 주변의 모든 것 까지도 나 이전에 뭔가가 남겼던 그런 느낌을 잡아 보려는 노력 또한 쉽지 않을 것이지만 쉽지 않기에 가치도 있을 것이다.

 

에세이 형식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저마다의 남김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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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선택 - 니체의 행복철학 강의
펑마이펑 지음, 권수철 옮김 / 타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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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이렇게 가까울 수 있을까?

니체가 이렇게도 현실 생활에 적용할 부분이 많았나?

 

마치 옆집 아저씨 마냥 편한 차림의 꾸미지 않은 민낯으로 슬리퍼 질질 끌며 내 옆을 지나가는 느낌으로, 편하게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을 때에만 해도 너무나 진지하고 근엄해서 조금의 틈도 보여지지 않던 그 였었건만 이렇게 일상 속으로 쏙 들어올 만큼 편안하고 자상한, 인간적인 모습의 니체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작가, 펑 마이펑의 덕분이고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니체 연구와 그의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한다. 그래서일까?  니체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같은 제목처럼 너무나 인간다운 모습의 니체를 발견해서 이렇게 소개해 주고 있다.   물론 니체의 이 책은 니체의 인간적인 면모를 말하는 책 이라기 보다는 음악가 바그너에게 실망했던 니체가 써서 선사했다가 바그너와 결별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는 책 이란다.

 

그렇게 근엄하게 느껴지던 철학자 니체가 조급하다 못해 우정까지 잃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는 책까지 쓰다니, 생각지도 못했지 않나?  살아가다 보면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실책, 후회, 돌이킬 수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근면하고 시간을 아껴서 노력해서 자신을 극복하라는 그의 사상이 바로 초인으로 표현된 것도 바로 이런 인간적인 사고의 결과물 이라니, 더욱 니체가 내 옆으로 바싹 다가 앉는 기분이랄까.

 

저자의 글 흐름이 니체의 철학과 어우러 들고 녹아서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데 한 편의 글이 끝나면 행복한 삶을 위한 제안이라는 제목 아래에 또 한 번 명심해야 할 부분을 정리까지 해 주고 있다.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자마다 도움되고 유익한 부분이 다를 수도 있겠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부터 골라 읽어도 맛깔스럽게 읽어갈 수 있겠지만 니체가 만만하고 쉬운 철학자는 아니었던 만큼 1장부터 그의 삶까지도 읽어 보는 기회도 가지면 좋을 듯 하다.

 

학문에 열을 올려 노력했던 소년 니체, 시골 태생으로 자연 속에서 지내던 것이 익숙해 있다가 도시로 이사해 오면서 밝지 못했던 성격을 할머니와 고모들의 노력으로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 니체의 변화, 평생 독신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철학이 있었기에 견뎌 낼 수 있었다는 그의 삶도 새롭게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삶과 연결 지은 그의 사상, 저서, 철학을 새로운 시선으로 말하고 있는 ' 더 나은 선택', 행복을 어떻게 성취해 갈 수 있는지 니체의 속삭임을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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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역사 시간 - 우리 역사를 외면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실체를 밝힌다
이주한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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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국가일까 아닐까? 

 

고조선과 기자, 위만 조선. 청동기와 철기의 유물, 유적으로 미뤄 본 역사 시대와 같은, 고대사 부분에서 이런 것들이 중요했던가?, 라는 생각을 했던 자체가 국사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고대 문화에 대해서 교과서를 자세히 외웠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주입식 암기 위주 교육에서 나 만의 생각이 있었을 리도 없었고, 맞는지 틀렸는지의 비판 의식도 없었던 학창 시절에 오로지 점수 따기 위한 국사 교육에서 어떤 비평이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 때의 기억이 또렷하면 할수록 지금 현재에 와서는 혼란이 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에 와서야 일제 강점기,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고 이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날조, 왜곡한 국사의 잔재물을, 학교 국사 교육으로 부터 그대로 흡수 시킬 뻔 했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부분은 오히려 안도를 해야 하는가?

 

215쪽  역사 교과서에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 는 사실 한 줄이 들어가는데 광복 후 무려 60 여년이 걸렸다. 역사 학계가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을 역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뜻있는 역사학자들과 시민들, 소신있는 일부 공무원들이 줄기차게 노력한 결과였다.

 

각종 책을 읽어가며 비교, 분석을 통해 옳고 그름을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는 의욕도 생기는 것이, 국사를 편찬한다는, 역사학자와 고고학자의 판단과 비평이 아직도 완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 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옛부터 남아있는 자료, 삼국사기, 제왕운기, 세종 실록 지리지 와 같은 책의 내용을 무시해 버리고 일제 사고하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태도는 이미 신뢰를 잃어 버렸고, 믿을만한 자료를 찾아서 또 반대 해석과 비평을 한 각종 책들을 접하고자 하는 생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한 마디로 사고의 위험성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역사 부분의 생각이 막혀 있거나 더 알려고 하지 않는 자세 또한 죄가 됨을 말해 보고자 하는 책 이다. 그 중에서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에서부터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탓하고 싶은, 그러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음을 답답해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에 관한 우리의 자세는 안일했고, 답답하리만큼 그대로 받아 들였고, 의심없이 받아 들이는 자세를 가지고서 다음 세대에게 전달 하려 하고 있다니, 누구의 역사인데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인지도 작가는, 앞선 사학자들의 태도를 들어서 우리 역사의 현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일본 사학자가 정립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역사를 있던 그대로 해 놓았겠지, 라는 의심의 여지 없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실 앞에서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라는 생각도 해 보지 않는다는 그것은 오늘 날, 꼬마 아이들도 동화책을 읽으면서, 저 속의 판다는 정말 판다일까?, 라고 의심해 보기도 한다는데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들의 입장 고수는 어찌 이 보다도 꿈쩍 않는 불변의 태도를 보일 수가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외압에 의한 것 보다도 '틀' 이라는 자신 스스로의 내부 속에서 갇혀 있다는 것이 더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역사를 외면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부제 아래 비평을 하고 있는 저자는 역사 비평, 열린 역사,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는, 식민 사학 해체 국민 운동 본부 대변인을 맡고 있다 한다.

 

이 저자의 비평은 고조선에서 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성계의 조선과 구별해서 고조선이 된 것이 아니라 단군왕검이 건국한, 오래 전에 있었던 조선 이라는 의미의 교조선 이다, 라고 여러 자료에서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우리 자신의 고대사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 같이 보이고 있다고.

일제의 조선사 편찬도 고조선부터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작업 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고대사를 지워 버리는 것은 우리의 조선사 가 아니라 일제에 의한 역사, 중국에 의한 역사, 반도 내에서만 존재하는 역사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이 부분에서는 독자인 나도 상당히 놀란 부분이었는데, 고대 시대에 원래 일본 땅이었다, 라는 주장, 일본이 고대에 다스렸던 땅이었으므로 현재에 되찾겠다는 뜻의 임나일본부설 까지 주장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바로 이렇게, 우리의 고대사가 왜곡됨으로써 생겨나는 파장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태도, 중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 나온 잘못된 기술 등을 지적하며 비평하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만의 좁은 식견, 옛 사료를 연구하지 않고 부정하는 자세,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끔찍한 식민 사관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 해외의 어느 역사 교과서가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말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의 교과서, 국정, 국정보다 한 술 더 뜨는 검정 교과서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 중국, 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네들의 이익에만 어울리는 역사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두 눈 뜨고 우리의 고대사를, 우리의 고대 국가와 고대 영토를 당연히 우리 것이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일 아닌가?

허탈한 웃음이 나오려 한다. 남의 나라 역사 교과서가 왜곡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자신의 역사 교과서 조차도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또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자체가 바로 그렇게 왜곡된 상태인 것을.

 

책을 읽어가면서, 역사 관련 서적들을 좀 더 많이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식민 사관 관련부분에서.

그리고  " 생각 " 이라는 것을 해 가면서 읽어 가도록 해야 한다는 그런 느낌도 갖게 한 책이다.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세로운 세대, 중 고등학생들이 있는 가정에서도 읽어 보면서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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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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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사회와 마주보며 적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의 대표격으로 난장이와 곱추, 앉은뱅이로 묘사한 느낌이다. 그 단어 자체로도 슬픈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한 사람으로서의 몫을 대접 받지 못하는 부류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 선입견으로만 그치면 좋으련만.  이들이 아무리 바둥거려 보아도 장기판 위의 장기 알 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계획 속에서 앞 뒤로 조종 당하고 있는 것일 뿐, 스스로 움질일 수도 없고 움직일 만한 권한도 힘도 없는 것을. 오로지 장기알이 가질 수 있는 비애와 슬픔만 있을 뿐, 그것이 내 보이는 작은 꿈틀거림 조차도 희미한 표시 하나 남기지 못할 뿐인 것이다.

 

"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와도 비판과 저항 의식은 갖고 있어야 한다... "

아무런 불만도 없는 정말 완벽한 좋은 세상이 온다면 티끌 만큼의 비판과 저항 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살짝 해 보기는 했다.

 

줄여서, 난쏘공, 이라 불리우던 책을 이제서야 읽고 보니, 사람들의 입에 회자 되고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 번은 직접 접해 보고 나서 말을 해야 돼, 라는 생각이 앞섰다. 사회적인 문제, 계급에 관련된, 중요한 삶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가 왜 이리 칙칙한 색깔로 가슴에 와 닿아 오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 서민, 노예 계급 운운하는 요즘 시대의 청년들의 기사를 많이 들으면서부터 이미 그 느낌이 낯설지 않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것에 중요한 것은 많다. 그 많은 중요한 것 중 으뜸에 속한다는 것이 일 하는 것이고, 일과 연관지어진, 주거 문제도 삶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은 좁은 땅의 한정된 숫자의 아파트를 향해 돌격~~! 앞으로 ! 를 외쳤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돌진하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가, 를 놓고 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집과 삶은 이토록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삶의 고리인 것을, 이 책 난쏘공에서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재개발 구역, 곧 철거 예정인 지역에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짓고 벽돌 한 장씩 쌓아 올려 지은 그 집에 난장이인 아버지와 아들들, 딸, 그리고 어머니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느닷없이 다가온 철거 예정 날짜, 집 앞에 붙어 있던 표찰을 소중히 떼어 간직하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해도 입주할 만한 돈이 없는 이들로서는 입주권을 팔 수 밖에 없고...

 

요즘은 흔하지 않게 되어 버린, 연탄이 굴러 다니고 있을 듯한 좁은 동네 골목길에 입주권을 사기 위해 투기꾼들이 들락대고 집을 사고 파는 현장의 모습은 목숨을 사고 파는 느낌마저 들었다. 당장 이사 갈 곳도 없이 입주권을 내다 팔 수 밖에 없는 이 들, 옛날 일 처럼 희미해져 가는 일대 사건과도 같던 일들이 요즘에 와서는 다른 형태, 전월세 폭등과 여전히, 수 많은 집들 중 그 하나, 내 집은 언제, 라는 염원이 있는 한은 역시나 변하지 않은 시대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계층 간, 빈부, 진정한 민주주의는 신 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 뿐인 허울 좋은 단어들 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슬픈 듯이 베어 나올 뿐이다.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 말이 아닌 '비 언어' 로 우리를 괴롭히고 모독하는 철저한 제 삼세계형 파괴자들을 '언어' 로 상대 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써 절망에 빠졌던 것도 바로 나였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 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 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 이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풍조가 조금씩 눈에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옛날식 담장, 동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뭔가가 있는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 속의 애환이, 일상이 목숨과 관련된 생활이 있었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 올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렇게 만들어 오는 사회 구조,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동시에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내겐 답답하게 닿아오는 이 느낌을, 그 옛날식 동네나 담장에서 돌아 보며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각자 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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