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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그들은 사회와 마주보며 적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의 대표격으로 난장이와 곱추, 앉은뱅이로 묘사한 느낌이다. 그 단어 자체로도 슬픈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한 사람으로서의 몫을 대접 받지 못하는 부류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 선입견으로만 그치면 좋으련만. 이들이 아무리 바둥거려 보아도 장기판 위의 장기 알 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계획 속에서 앞 뒤로 조종 당하고 있는 것일 뿐, 스스로 움질일 수도 없고 움직일 만한 권한도 힘도 없는 것을. 오로지 장기알이 가질 수 있는 비애와 슬픔만 있을 뿐, 그것이 내 보이는 작은 꿈틀거림 조차도 희미한 표시 하나 남기지 못할 뿐인 것이다.
"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와도 비판과 저항 의식은 갖고 있어야 한다... "
아무런 불만도 없는 정말 완벽한 좋은 세상이 온다면 티끌 만큼의 비판과 저항 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살짝 해 보기는 했다.
줄여서, 난쏘공, 이라 불리우던 책을 이제서야 읽고 보니, 사람들의 입에 회자 되고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 번은 직접 접해 보고 나서 말을 해야 돼, 라는 생각이 앞섰다. 사회적인 문제, 계급에 관련된, 중요한 삶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가 왜 이리 칙칙한 색깔로 가슴에 와 닿아 오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 서민, 노예 계급 운운하는 요즘 시대의 청년들의 기사를 많이 들으면서부터 이미 그 느낌이 낯설지 않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것에 중요한 것은 많다. 그 많은 중요한 것 중 으뜸에 속한다는 것이 일 하는 것이고, 일과 연관지어진, 주거 문제도 삶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은 좁은 땅의 한정된 숫자의 아파트를 향해 돌격~~! 앞으로 ! 를 외쳤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돌진하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가, 를 놓고 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집과 삶은 이토록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삶의 고리인 것을, 이 책 난쏘공에서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재개발 구역, 곧 철거 예정인 지역에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짓고 벽돌 한 장씩 쌓아 올려 지은 그 집에 난장이인 아버지와 아들들, 딸, 그리고 어머니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느닷없이 다가온 철거 예정 날짜, 집 앞에 붙어 있던 표찰을 소중히 떼어 간직하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해도 입주할 만한 돈이 없는 이들로서는 입주권을 팔 수 밖에 없고...
요즘은 흔하지 않게 되어 버린, 연탄이 굴러 다니고 있을 듯한 좁은 동네 골목길에 입주권을 사기 위해 투기꾼들이 들락대고 집을 사고 파는 현장의 모습은 목숨을 사고 파는 느낌마저 들었다. 당장 이사 갈 곳도 없이 입주권을 내다 팔 수 밖에 없는 이 들, 옛날 일 처럼 희미해져 가는 일대 사건과도 같던 일들이 요즘에 와서는 다른 형태, 전월세 폭등과 여전히, 수 많은 집들 중 그 하나, 내 집은 언제, 라는 염원이 있는 한은 역시나 변하지 않은 시대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계층 간, 빈부, 진정한 민주주의는 신 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 뿐인 허울 좋은 단어들 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슬픈 듯이 베어 나올 뿐이다.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 말이 아닌 '비 언어' 로 우리를 괴롭히고 모독하는 철저한 제 삼세계형 파괴자들을 '언어' 로 상대 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써 절망에 빠졌던 것도 바로 나였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 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 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 이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풍조가 조금씩 눈에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옛날식 담장, 동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뭔가가 있는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 속의 애환이, 일상이 목숨과 관련된 생활이 있었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 올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렇게 만들어 오는 사회 구조,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동시에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내겐 답답하게 닿아오는 이 느낌을, 그 옛날식 동네나 담장에서 돌아 보며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각자 담고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