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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 325쪽
내가 모으다 해방을 못 본다고 해도 너희들 대에서는 해방이 되겠지. 그래, 길게 보자. 나는 열심히 모아 지키고, 훗날 좋은 시절이 오면
너희들이 세상에 알려라.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조선 백자의 단아함을, 신라와 고려 석탑의 당당함을, 학문이 깊어 아름다운 활자로 책을 만들어
냈음을, 진경산수로 조국의 산천을 그려낸 겸재 정선이 있었음을, 꽃과 나비를 사랑한 현재 심사정이 있었음을, 시대의 풍속을 그려 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있었음을, 추사 김정희와 같은 명필이 있었음을,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결코 초라하지 않았음을...... 내가 알리지
못하면 너희들이 알려라. 앞으로도 계속 모으고 지킬테니, 내가 왜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미친듯이 모았는지 너희들의 세상에서라도
알려다오.
책이 아니고서는 이런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었을까?
전형필, 듣도 보도 못했던 한 사람의 이름이고 나에게는 자칫 필부로써 스러져 갔을 이름이었다.
수장가는 또 무엇인가? 그 의미도 알지 못했다.
책의 뚜껑을 열기 전에는 중절모를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근대식 남자가 서 있다.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아, 수집가를 의미하나보다...
그런데 그의 삶은 평범하지 않은 일생으로 또 한 번 관심을 집중 시킨다. 아흔 아홉칸 대갓집의 손이 귀한 전씨 가문의 종손으로 탄생하여
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는다. 물려받은 토지가 경기, 강원, 충청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있고,
조상 때 부터 가업으로 이어온 미곡상까지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한 가문의 전형필은 1906 년 그렇게 할아버지의 소원대로 삶을 시작한다. 한참
일제 강점기 시절, 이 막대한 재산을 어떻게 지킬 것이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를 놓고 많은 생각을 기울이던 그에게 미술의 세계로 진입할
기회의 문이 열린다. 역시 청소년 시절의 교양과 철학은 평생을 살아갈 근본이 된다는 생각을 여기에서도 해 보게 되는 부분이다. 부잣집에 태어나
제 고집만으로 살아간다 해도 그 누가 말릴 수가 있겠나마는 전형필 스스로가 책을 많이 읽고, 갈고 닦음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그가 평생 할
일을 <부여 받음>이 아니라 <찾아 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게다가 주변 인물들의 삶도 영향이 컸다고 본다. 외사촌
형인 월탄 박종화와의 교류, 식민지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고, 민족 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일제에 맞서 우리의
민족혼을 지키는 방법으로 전형필은 우리 문화를 지켜 나가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한 것이다.
선조 때 부터 전해 내려오는 서화, 글씨, 화병, 석탑 등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문화와 그것들을 우리 손으로 지키는 것이야말로
민족의 얼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의 독립 운동인 것이다.
집안에서는 그가 변호사가 되기를 바래서 일본 유학길에 있었던 전형필이었지만 일제 하의 변호사의 역할을 마땅치 않게 여겼던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의 평생 스승으로 위창 오세창을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191인의 작품을 담은 화첩 <근역화휘>를 건네받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도 나는, 그에게는 타고난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 해 봤다. 수장가로서의 조건들이 착착 진행되어 갈 수 있는 상황이 어디
쉬웠을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또 그 일을 잘 하기 위한 조건들이 때맞추어 형성이 되고, 주변에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고, 마치 하늘이
도운 수장가의 첫걸음이 아니었나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막대한 부를 우리 조상의 얼을 지키는데에 일조했던 전형필이라는 사람 덕분에 그 많은 문화재, 국보가 될 우리 조상들의 유산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동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많은 재산을 움켜 쥐고 신변잡기 놀음으로 한 세상 살다가도 누가 뭐라 할 수 있었을까.
그가 지켜 낼 수 있었던 보물들은 현재에 이르러 후손들이 감상 할 수 있게 보화각 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을 지어 보관해 두었다.
그의 안목, 그의 먼 곳 까지 내다볼 수 있었던 능력, 모두 무슨 말로 칭송을 해야 할 지 알맞은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던가, 소 600여 마리를 몰고 당당하게 북한 땅을 밟던 현대 정주영 회장이, 이미 그가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다시 떠오르게 하는
인물인 것 처럼 전형필이라는 이름도 단순한 수장가 라는 수식어 만이 아니라 민족얼을 지켜 낸 독립 운동가에 버금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