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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평점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의 유대 관계,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의 깊이는 어디까지 일지, 이런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너무 범위를 넓혀서 이 책을 소개하는 첫걸음을 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출발이 가정을 이루게 하고 그들 사이의 자녀는 부모의 역할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지어 지는, 그래서 나아가는 인생 살이 자체가 어떻게 되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이 책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과 삶을 연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들이 연속되고 무덤덤하게까지 느껴지게 할 만큼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진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날 지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도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독자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이야기가 나아가 진다는 점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려고 이럴까 싶기도 한다. 절반을 넘어가도 도대체가 감을 잡을 수가 없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죽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서 따로 발견되고 수십 년이 지난 사람과의 관계를 어찌 연결지어 생각할 수나 있을 것이며 왠만해선 쉽지도 않은 일이다.
집을 버리고 떠나온 여인이 있었다. 남편과 아들을 버린 여인, 그 사정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 준 식당 여주인이 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수십 년이 흐른 후 집 떠나온 그 여인은 외롭게 죽는다. 그 여인의 아들을 찾아내고 나니 바로 가가 형사였다. "가가 형사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의 도입부이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한 쪽에서는 남의 아파트에서 죽은 여자의 시신이 발견됐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남의 오두막에서 남자가 불에 탄 채 발견됐어." (117-118쪽)
형사들이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아무리 찾고 찾아도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곳에서의 시신,
"시가현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던 사람이 왜 오나가와 원전에서 노동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신코이와의 하천 둔치에서 살해되느냐 이 말이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네." (277쪽)
영문을 알 수도 없고 짐작도 가지 않는 내용이 전개되어 간다. 추리 소설을 꽤 읽어 왔고 나름 눈치도 빠른 독자로서 이번 책은 뭔가 지리멸렬하게 내용이 펼쳐져 가기만 하는 형국이었다. 물론 답이 금방 보이면 책 읽어가는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겠지. 그런데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들이 흘러가기만 하는, 그러면서 연결이 전혀 되지 않는 사건들을 밝혀가는 그 과정에서 고개만 갸웃거려 진다고나 할까.
가가형사, 그에게는 어머니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누가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을까, 를 해결하기 보다는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외롭게 죽어가야 했는지 그 사실을 알아야 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다리 이름이 적혀 있던 메모, 그 의문부터 풀어야 했다. 그런데 이 따로 떨어진 일들이 나중에 어떻게 만나고 이어지는지를 독자가 발견하게 된다면, 결코 뻔하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를 끝에 가서야 알게 하는 그 맛도 작지는 않을 것이다.
형사들의 노력 또한 잘 그려졌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여 해 내던 그 순간들, 그것들이 모여 일상이 되는 그들의 삶 또한 잘 그려지고 있다. 사람의 뒤를 캐 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죽은 사람들의 신원 부터 거기에서 죽게 된 이유,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고드는 그 집요함은 전혀 연결되지 않던 일에까지 파고 드는 집요함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형사들 중 하나가 했던 말, "진상에 이르는 길은 헛걸음을 무수히 하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구나." (294쪽) 에 공감을 하게 된다.
연극배우 히로미, 성공한 인생으로 비춰지는 그녀의 삶에는 어떤 희생과 역경이 있었는지를 그녀의 이야기에서 그 모든 것이 시작하기도 한다. 자, 가가 형사의 사촌, 마쓰미야 형사와 그들의 동료 형사들이 발에 불이 나도록 찾아 헤매는 사연, 따라가 보자. 책 소개를 하면서 서두에 왜 가족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나름대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