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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움과 해학 - 학고재신서 16
정양모 지음 / 학고재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이책의 저자는 정말 세상의 소금과 같은 사람이다.
" 사금파리와 인연을 맺고 살아온 것이 올해로 서른일곱 해째이다. 1962년 겨울, 서울 북한산 줄기의 오봉 밑에서 조선 초기의 뛰어난 백자와 흑유자기를 굽던 가마터를 발견, 조사한 것이 사기 수렁에 빠져든 첫 사건이었다. 그 이후 배낭을 메고 서울과 경기도 광주 일대의 백자, 분청사기 가마터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저 땅만 내려다보면서 등에 꽈꽉 배기는 무거운 사기짐을 땀 철철 흘리며 지고 걷는 것이 풋풋한 즐거움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은 도자기를 연구 한다고 한다. 그런데 도자기를 연구한다기보다는 한번 우연히 발을 딛게 되다보니 그 길을 그대로 갈 뿐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악착스럽게는 천성적으로 못한다. 다만 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을 때도 있고 티끌만큼이나 사명감 같은 것도 있고 적은 보람을 느낄 때도 있으며, 또 도자기로 인하여 제법 골똘히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재미나는 보람도 아니고 우주의 신비와 인생이다 하는 벅차고 깊은 생각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한 단순한 일들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하고 이게 이렇게 된 것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고 자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고 실수도 없어야 한다. 약속도 잘 지켜야 하고 원리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주말에도 일이 있으면 가족과 같이 보낼수 없고 평소에도 꼭 필요한 일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심각해 보일수도 있다. 일로 둘러쌓여 인간관계가 점점 협소해질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너그럽거나 유머스런 생활과는 반대되는 삶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저자는 해학적인 문양의 분청사기나 둥그런 달덩이 같은 백자 항아리에서 휴식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이책의 마지막부분에서 서술한 박물관의 학예연구직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정확하고 채계적인 일처리에 놀라움이 절로 느껴진다. 저자는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집중력과 현실감각이 있다. 또한 미공개 회화 특별전에 대한 글을 읽어봐도 저자의 조직적이며 침착한 성품을 알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4300여 점 가량의 그림이 있다. 이때까지 일반 상설전시와 특별전시 때에는 이 중 몇 분의 일에 해당하는 작품만 선정하여 전시한적이 많았으며, 한국회화 근5백년전' 때에 처음으로 그 대부분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 선정, 전시 하였다. 그러나 그때의 선정 기준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글씨로 회화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진 작품들이 주로 선정되어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교양인이 언제 보아도 눈에 설지 아니하여 마음이 즐겁고 눈맛이 좋은 작품들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우선 4300여 점 중 무속화, 농채의 불화를 제외한 전부를 대상으로 삼아 작년 9월부터 매주 몇 번씩 시간을 마련하여 회화 창고에서 몇 점 혹은 몇 십 점씩 내다가 하나하나 검토하여 금년 2월 하순까지 전체를 다 보아 500여 점을 1차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중에서 다시 232점을 2차로 선정하여 확정지었다."
저자의 엄청난 일의 양에 기가 눌려옴을 느낀다.
저자는 보수적이기도 하다.
" 간장, 고추장, 된장, 김치는 뛰어난 발효 식품으로 우리의 양식이며 식생활의 바탕이다. 지방마다 집집마다 맛있고 특색 있는 음식맛은 장독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 할머니는 장독대를 소중히 생각하고 정갈하면서 아름답게 간직했다. 소중함이란 집안 식구들의 건강을 위함이고, 겅갈한 가운데에 아름답게 간직했다는 것은 자연과 일치하는 우리네의 심성과 같은 것이다."
" 개발업자와 땅 주인과 갖은 사기꾼 들이 한데 어울려 산골짜기를 개발하여 당장 막대한 이익이 눈앞에 생기는데 문화유적에 가로막혀 개발에 지장을 준다면 어떠한 일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못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부추기고 그들에게 바람을 넣어 사치하고 방탕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배금주의를 불어넣은 우리의 현실에 있다"
저자가 현실과 타협하기가 얼마나 힘이 들지 생각해본다.
도자기 감정이라는 큰돈이 오고가는 결정을 앞에 두고 저자는 얼마나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배제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인가? 저자는 언제나 엄정해야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의 최근 근황이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다 좋지 않은 기사를 접하고 놀랐다.
강진군의 청자기와 가마터 발굴에 대한 생생한 당시 기록을 이 책에서 읽은 뒤라 더 착찹했던것 같다. 이제는 70줄에 들어선 저자의 한탄어린 인터뷰 한 대목이 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야 진품이 아닌 도자기가 판을 칠수 있으니.."
자신의 이익때문에 타인이 죽기를 바랄만큼 사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 나는 의문이지만 저자가 받은 그동안의 상처나 도자기에 대한 애착이 느껴져서 마음이 좋진 않았다.
저자는 우리 문화재를 너그러움과 해학이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예술품에 대한 평가는 감상자의 감정이 투사되어 나타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나 회화나 공예품이나 그 자체가 어떠한 정서를 담고 있겠지만 그러한 정서에 주파수를 맞추면서 감상자가 자신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같은 작품에 대한 평가나 느낌이 다양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작가는 너그러움이나 해학이 자리잡기 어려운 조직적이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이고 원칙적인 생활을 해왔기에 더더욱 부드러운 달 항아리나 선이 활달한 분청사기에게 마음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소금과 같이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오신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평생을 경영하야 한칸 초옥 지어내니,
반칸은 청풍이요, 반칸은 명월이아.
나머지 산천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춰 먹은 후에 바위끝 말가에 실컷 노니노라.
그 밖의 여남은 일이야 부러워할 일이 있으랴.
선비의 사랑방 분위기는 아취가 있어 간결하고 주인의 안목과 교양이 베어 단아하게 정돈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안에 있어서 편안하고 때론 정신과 눈맛이 신선하고 시원하며, 깊고 높은 학문도 고담준론도 지조와 호연지기도 거기서 키울 수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방안에 매화 한 분, 한 그루 대나무와 난초의 암향이 미닫이 너머 자연과 더욱 친숙하게 하였을 것이다. "
저자는 도자기를 자신의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욕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것은 자식이나 도자기에 대한 사랑조차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바래왔던 너그러움과 해학이 넘치며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생활이 주어지시기를 바라며 그런 사랑방에 앉아 둥그런 백자항아리의 눈맛에 취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