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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평점 :
최근 10년 정도 '내향성'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책을 읽어왔는데 이 책은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알려주어서 정말 감사하다.
조금 여유있는 설날연휴가 될 것 같아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권 빌려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무거운 내용의 책을 놓고 살았는데 이 책 덕분에 머리가 정리되고 차분해 진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때 나는 이 책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내용일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뒷표지에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3년 우수출판기획안 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어서 뭔가 남는것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들었다.
설 연휴에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시댁식구들과 친정식구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간중간에 혼자사는 것에 대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전부 일곱 chapter와 에필로그로 이루어져있다.
앞부분은 주로 결혼과 독신에 대한 비교적 쉬운 내용이고 그 이후부터는 역할밀도와 자기밀도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집단속에서의 자아라는 어려운 주제를 묵직하게 끌고 간다. 5장부터는 본격적으로 고독을 다루며 자신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회계약론과 에밀의 저자 루소의 글이 자주 인용되며, 수상록의 몽테뉴가 기거했던 치타델레는 '오로지 나를 배려하며 나와 대면하며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장소의 대명사로 사용된다.
이렇게 치열한 자기본위의 시간을 거쳐 '단독인'이라는 성숙한 인간형에 도달하게 되면 더이상 혼자있는것이 두렵거나 타인지향의 삶 속에서 과잉된 역할밀도로 질식하는 일은 없게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는 경제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속의 주장을 인용하며 단독인이 되는 문제를 인간 구원의 개인적 차원에서 연대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어느 순간 나는 강요된 이타주의의 속에서 집단주의의 희생양이라는 최악의 역할을 맡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었다. 희생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속에서 보들레르가 시집 '파리의 우울'에서 말했다는 ' 어마어마한 키메라를 지고'비틀비틀 죽어가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친밀감과 소속감을 얻기 위해 이타주의라는 방법을 택했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그것을 얻을 수 없었고 그들의 쾌락을 위해 희생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에는 타인지향적이었던 나의 잘못도 크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으면서 타인에 대한 원망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모두가 빠져있는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믿지 말아야 한다. 물론 둘다 서로를 믿으면 둘다 살 수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현실을 경험한 나 역시 '경제적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결론에 다다를수 밖에 없었다.
점점 더 외로운 염세주의자로 변해가는 나 자신이 걱정스럽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속에서 힘들기는 더 싫은 나에게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사슴사냥의 딜레마는 환기구처럼 다가왔다.
요즘 왠지 내 안에 갇힌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한사람이 혼자서 각각 토끼를 잡을 수도 있고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고 한사람이 사슴을 몰아 둘이서 사슴을 잡아 둘이 나누면 더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혼자서 좁은 원룸에 사는 것과 몇명이서 자원을 모아 공동주택을 사용하는 것을 비교했다.
공동주택에는 자기만의 방이 있고 같이 쓸수 있는 거실과 주방, 각종 가전제품 및 작은 정원도 있을 수 있다. 구성원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강제추방까지 당할 수 있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지 않은 시스템인 것이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인 정리정돈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런 생활에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성숙한 단독인들의 주거지라면 다르지 않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하지 않고 산지가 정말 오래된것 같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셨는데 왜 내가 아직도 인간의 죄로 인해 괴로워해야하는가?
이제는 죄가 아닌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고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이름으로든 세상에 적용이 되어야한다. 그런 방법으로 사회학이라는 것은 정말 적합해보인다.
진정 사회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혼자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숙한 단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자본주의의 '판타스마고리아'에 충실한 소비자의 삶, 역할밀도가 가득한 상태로 '키메라'에 압사 되어가는 삶,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탐욕스런 '경제적 개인주의자'의 삶,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염세주의자의 삶은 단독인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단독인의 삶인란 사슴사냥을 계획하고 팀을 꾸리고 역할을 나누고 그 결과를 함께 나눌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의 삶인 것이다. '어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그동안 혼자 토끼를 잡으며 살아왔지만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없어 늘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사슴 사냥의 딜레마'라는 말을 통해 내가 40대에 달성해야할 큰 과제를 얻은 것 같다.
30대가 단독인이 되기위한 치열한 고독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연대를 생각해볼 수 있는 40대를 맞이하게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에게 정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