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여자로 사는 법 - 착한딸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만프레드 셰르만 외 지음, 김태영 옮김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변형된 착한딸이다.
나 역시 가정일에 무관심한 아빠와 가정의 모든것을 -심지어는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책임지며 살아온 엄마가 있다.
난 오히려 착한 아내보다는 나쁜 아내가 맞다.
아빠에 대한 미움을 남편에게 투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때가 많다.
아니 오히려 아빠에 대한 미움이 남자들 전체에 대한 미움으로 확대된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안의 착한딸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기전까지는 나는 그저 야심만만하고 지기싫어하는 성취지향적이고도 똑부러지는 여학생중 하나였다. 성취를 통해서 인정받으려고 하고 내색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계속되는 경쟁심으로 외로워하는...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속으로는 온통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찬 여기서 말하는 착한딸의 모습이었지만 전혀 착한 여자는 아니었다. 어쩌면 어린시절의 상처를 반항심으로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아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완전 모유수유를 하기위해 노력했고 힘들었지만 모유를 짜다 날랐다.
시댁이라면 그렇게 멀리하던 내가 몇달을 고민한끝에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위해 시어른들과 함께 살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한 일에 동참하지 않는 남편을 끊임없이 원망했다. 그렇게 내 모든것을 바치면서 아이에게 몰두했지만 마음은 늘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차있었다.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밖에 못해주다니...
그렇게 키운 아이가 자라 6살이 되었다.
며칠전 아이에게 단풍구경을 시켜주고 싶은 내 마음과는 별개로 하루종일 잠만 자는 남편과 말다툼이 있었고 언성이 높아지자 아이는 아빠의 편을 들었다. '엄마는 성질이 고약해' 라면서...
이 책에 나오는 착한딸들이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고 후회하는 일상을 되풀이 해온것처럼 나역시 아이의 눈에 그렇게 비춰지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모든것이 다 사라져버린것처럼 허무했다. 슬펐다. 그리고 분노를 느꼈다. 내가 아이를 위해서 얼마나 나 자신을 희생했는데...라는 생각...
며칠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거 같다.
아이를 볼 수가 없었다. 나를 비난한 아이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었구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나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린아이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구나. 나의 노동을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대신 아이만 바라보고 살았었구나....
이 이야기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갖고 있는 착한여자 컴플렉스와도 연결된다.
이책의 저자는 그 컴플렉스의 기원을 어린시절 엄마, 혹은 아빠를 기쁘게 해주기위해 착한딸이 되어야만했던 경험으로 돌리고 있다.
어찌되었건 중요한건 착한딸의 역할은 나와 내 가족을 모두 망친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나에게 종종 그렇게 말은 한다. ' 하고 나서 생색을 내거나 화를 내려면 아예 해주지를 마.' 라고...
모두를 힘들게하는 착한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누군가 해야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을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