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만든 사람들 -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을 그리다
발 로스 지음, 홍영분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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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운전자용 지도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지도를 이용하면 처음 가는 길일 경우 어느 정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목적지에 찾아갈 수 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을 설치한 차도 있어서 운전자가 모르는 길이라도 쉽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이런 실용적인 목적의 지도는 20세기나 돼서야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필리스 페어셜이라는 여성이 1936년 런던 도로 지도를 만든 것이 최초의 상업용 지도의 제작이었다.

그러나 지도가 처음부터 이렇게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즉 지도에는 단순히 지리적인 것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신앙 또한 들어있었다. 16세기 초 유럽에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지도제작자 메르카토르는 자신이 만든 지도에 자신의 신앙을 넣어 그렸다. 메르카토르는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교의 사상을 자신이 제작한 지도에 넣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출했다. 이 결과 그는 형무소에서 죽을 위기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하니, 지도에는 커다란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리라. 메르카토르는 둥근 지구를 평면에 펼쳐 지도를 그린 최초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지도는 메르카토르식의 지도인 것이다. 이것의 단점은 북극지역이나 남극지역과 같은 고위도 지방의 상대적으로 커보인다는 것이다. <지도를 만든 사람들>(아침이슬.2007년)에는 이렇듯 지도와 관련한 많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한일 간에는 동해의 이름과 또 독도의 소유에 대해 다툼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 중의 하나는 고지도를 찾아보는 것이리라. 그럼으로써 해당 지역에 대한 이름과 소유의 변천을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지도는 해당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왜 이런 지도를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처음에야 인간의 호기심이 먼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바다는 어디에 까지 펼쳐져 있을까‘, ’저 평원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으며, 어떤 동식물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지도를 제작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한다.

그러다가 인간은 전쟁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지도를 제작했을 것이다. 즉 지도 제작은 국가의 기밀에 해당하는 그러한 일이었다.

대항해 시대의 지도는 식민지 확장을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그 안에 숨겨져 있다.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장소에 자신의 나라의 국기를 꽂아서 자신의 영토로 만들려는 국가의 탐욕이 지도를 그리게 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처럼 지도 제작에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콜럼부스 이전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서 지도를 제작했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지도를 위조한 ‘빈랜드 지도’에서 시작해 명나라의 ‘정화의 남해 원정’, 태평양의 지도를 그린 ‘제임스 쿡’, 마지막에는 우주 시대에 인공위성을 통해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까지 우리가 지도에 대해서 알아야 할 지식을 폭넓게 수용한 책이다.

지은이 발 로스(Val Ross)는 지도에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송 자유기고가라고 하니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지만, 성인들이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은 정보가 가득 들어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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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07-07-0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하겠습니다. 저는 아이 책으로 지도와 관련있는 두권의 책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이들 책과 성인용 책을 연관해서 읽으니 저에게는 더 이해가 쉬운 것 같습니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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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은 이미 결론이 난 역사적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 소설가는 어떤 면에서는 사관(史官)의 입장에서 책을 쓰는 것이리라. <남한산성>(학고재.2007년)은 병자호란이란 소재를 차용하고 있다. 그러니만큼 저자는 당연히 병자호란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사관으로서의 김훈의 입장은 이 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fact)은 이미 결론이 났다. 그해 겨울 정통성이 없는 임금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에 마련된 수항단(受降檀)에 올라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의 예를 올렸다. 이런 슬픈 역사적 사건을 이 소설은 차용해 온 것이다. 차용해 온 만큼 소설가에게는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1592년부터 일본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1636년에 병자호란까지 44년 동안에 조선은 큰 전쟁을 4번이나 겪는다. 이 처참한 시기에 민중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는가.

1636년에 일어난 전쟁, 우리는 흔히 병자년에 일어난 오랑캐의 난(병자호란)이라는 표현으로 청을 깎아 내린다. 소중화주의에 빠져 상대방을 오랑캐라고 부르고 있는 그 상대는 이미 거인이 되어있었으며, 명이 다시 일어서리라고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시기에 조선에게는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다.

 

청의 기병은 예상보다 빨리 한양에 도착한다. 강화로 도망하려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갈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약 1만5천 여 명의 병사와 함께 남한산성에서 방어에 나서는 조선의 조정.

어쩌자는 것인가. 왕궁을 비우고 도망한 임금은 목숨은 구했지만, 한양이나 청나라 군대가 지나간 곳에 살던 백성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했다. 역사 소설에서는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했다고 본다. 민초들은 어찌되었을까. 독자들은 이미 정치사적인 의미는 잘 알고 있으며 자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해 겨울 그 초라한 남한산성에서의 모습과 삼전도의 굴욕을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훈의 <남한산성>이라는 역사소설이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가 명확해 진다. 그런데도 김훈은 인조와 김상헌, 최명길만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이 김훈이라는 이름의 사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아닌가. 역사 소설은 모름지기 강자의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는 약자들의 삶을 살펴봐야 할 것이고, 그들의 슬픔이 임금의 삶 보다 중요한 데, 김훈은 철저하게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또 주전론, 척화론에 대한 김훈의 입장도 모호하다. 그는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에서 중요한 펙트인 두 진영에 대해서 그냥 사실 전달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관 임무는 가치판단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독자들은 아마도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끝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관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채 서날쇠의 미소로 책을 마감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그는 약간은 사관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 부분도 있다. 청태종 혹은 홍타이지를 그는 칸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중국의 황제가 아니라 여진족의 족장 칸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쓴 것인가? 그렇다면 김훈은 주전파인 김상헌의 편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명이 살아나리라고 믿고 있는 낙관론적이고 비현실적인 사람들 속으로 숨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문을 주로 사용해서 상황을 절박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비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그리고 그 결과가 굴욕적인 상황은 저자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부담감은 시종일관 김상헌을 통해서 표출된다. 한강 뱃사공의 죽음은 계백의 칼날을 생각나게 한다. 패한 전쟁에 자신의 식솔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계백의 그 칼 말이다. 뱃사공은 바로 조선인 백성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편안한 시절이면 자신의 일을 통해서 풍요롭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그에게, 아니 조선 백성에게 대륙의 변화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백성들에게 대륙의 정권 교체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그들은 국내의 정황조차도 상관이 없다, 누가 왕이 되든지 하루하루 밥 잘 먹고 아이들 잘 자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정세의 변화는 그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잡초와 같다. 뱃사공의 삶은 그의 딸로 연결이 되고, 서날쇠의 아들과 함께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종일관 나루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김상헌의 모습은 뱃사공에 대한 미안함과 아울러 불쌍한 조선 민중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황과 아울러 김훈의 단문은 인조가 처한 어려움을 극적으로 표출해주고 있다.

그러나 소설 도입부에서 보이는 말들의 유희는 짙은 화장을 한 작부의 모습처럼 지나친 수사로 가득 차 있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1/3이 지나는 시점부터 김훈의 글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 시점부터 소설의 상황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역사소설로는 완전히 함량미달로 보인다. 김훈은 역사에 대한 그의 시각을 더 벼려야 한다.

사람들은 소설은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역사 소설가는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사건을 해석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소설에 투영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남한산성>은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치 있는 역사소설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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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23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하양물감 2007-07-0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소설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갑니다. 이건, 역사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겠지요?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프랑수아 데르모 그림,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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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걷는다> 1,2,3편을 읽었었다. 프랑스의 전직 언론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실크로드 오아시스로의 서단인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천킬로미터를 3년에 걸쳐 혼자서 도보 여행을 한 여행기였는데, 다른 여행기와 달리 사진 한 장 없는 딱딱한 책이었고, 상당한 굵기에 3권이나 되는 분량책임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를 혼자서 걷는 여행’에 푹 빠져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정말 쉽지 않은 여행을 성공한 영웅(?)의 이야기에 존경이 절로 생겼고, 또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효형출판.2006년)이 <나는 걷는다>와 비슷한 점은 같은 장소를 방문한 것이고, 다른 점은 승용차, 기차와 비행기로 여행했다는 것과 수채화가 프랑수와 데르모와 동행했다는 것이었다. 화가와 함께하다 보니 이 책에는 정말 실크로드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많은 그림이 들어있다. 아마도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들은 사진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번 여행에서는 화가와 동행한 이유를 저자 올리비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수백 명의 독자가 편지를 보내 이미지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일정은 2004년5월1일부터 2004년7월6일까지 9주간으로 홀로 걸었던 지난번의 여행에 비하면 기간도 짧고, 또 편한 운송수단을 이용하고 숙소도 호화판이다. 첫 여행 때에는 정말 목숨마저도 위험했던 적이 많았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여행은 정말 저자에게는 누워서 헤엄치는 정도이기에 저자도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을 방문한다. <나는 걷는다>에서 보듯이 여행 중에 짧게 만난 친구들이었지만 그들과 저자는 정말 오랫동안 사귄 친구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아마 여행을 하면 사람의 마음 문이 넓게 열리는 것도 있겠고, 중앙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종교적 믿음에서 나온 넓은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올리비에의 책에 감동을 받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방문에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지진으로 인해 사는 곳이 파괴된 경우도 있었고, 이사를 가서 친구의 자취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장면에서 저자는 크게 아쉬워하는데,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들은 저자의 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올리비에는 친구를 새로 사귀지 못한다. 일정이 짧은 면도 있었지만 현대식 편안한 여행은 한 도시의 겉만 들여다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걷는 고생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고, 편안한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덜 아쉽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은 후 감동도 <나는 걷는다>에 못미친다. 다만 이 책이 가진 장점은 <나는 걷는다>에서 아쉬웠던 이미지가 있다는 부분하고, 또 인간의 정을 더욱 깊숙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걷는다>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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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 나는 원한다! 권력과 부 그리고 영원한 젊음을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5
필리스 A.티클 지음, 남경태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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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시리즈의 5번째 책, 100쪽도 안 되는 분량,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주제.

이 책을 처음 잡고서 나는 아주 만만하게 생각했다. ‘이 책 정도면 1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시작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심정은 바로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였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먼저 저자에 대한 소개를 봤다. 저자인 필리스 A. 티클은 종교 전문지의 편집자와 강연을 하는 사람이다. ‘뭔가 기대하고 다르게 전개된다’고 생각이 든다. 인간의 욕망이나 본성은 생물이나 심리학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뭔가 어려운 부분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인간다운 특성, 즉 인간의 본능이 무엇이냐에 대해 우리들은 오랜 동안 이야기해왔다.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이 그것이고, 이를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이라고 하기도 하고 종교에서는 인간의 죄라고도 한다.

‘시기, 탐식, 화, 게으름, 탐욕, 정욕, 자만’이 인간이 가진 7가지의 본능이고 욕망이며 죄이다. 특히 “탐욕은 다른 모든 죄의 모체이자 기반이며 뿌리이자 짝이다“라고 이 책 <탐욕 -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민음사.2007년)의 저자는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탐욕이 없다면 죄가 없어지고 정말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죄의 근본이 되는 탐욕조차도 뭔가 우리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기에 인간 사회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탐욕이란 것은 필요악이라는 것이고, 이런 탐욕을 사회적인 제도로서 어느 정도 통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저자는 탐욕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서구의 예술(문학과 미술)과 대중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심상(Imagination)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다.

먼저 ‘종교 시대’의 탐욕이다. 종교의 시대는 서기 1500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즉 유럽에서 종교가 모든 권위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를 말하는데, 히에로 나무스의 그림 『일곱가지 대죄』와 『건초수레』를 통해 탐욕을 설명하고 있다. 일곱가지 그림으로 인간의 죄를 설명하고 있는 『일곱가지 대죄』에서 탐욕을 나타내는 인물은 부패한 판사인데, 그는 한 손으로 판결을 내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뇌물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탐욕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는 ‘근대 이성의 시대’의 탐욕으로 흔히 이 시대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종교적 권위가 세상에서 약해지고 인간이라는 주제가 중심에 서는 이성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에 토마스 홉스는 죄의 규정이 사회적 계약, 즉 집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원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 과정에서 죄와 탐욕은 종교적인 쟁점 안에 머물지 않고 도덕적인 문제가 되어 서양 사상의 본류로 합류했다. 물론 보수적인 사상에서는 여전히 도덕의 연장선상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이다. 저자는 현대의 시작을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해인 1882년이라고 보고 있다. 벨기에 화가 제임스 엔소르의 그림을 통해 현대의 탐욕이 예전과 거의 유사하게 죄를 다룬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20세기에는 죄만이 아니라 종교 일반을 더 극적으로 다루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이 현대를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21세기 초를 판단하는 것은 후대가 할 일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탐욕의 현대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에 곤란을 느낀다고 하면서 본문을 끝낸다.

100쪽도 안 되는 책이었지만, 다 읽고는 쉽게 이 책을 정복하겠다는 애초의 내 생각자체가 탐욕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사색하면서 읽어봐야 탐욕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만큼 어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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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이야기 - 세상이 두려워한 위험한 생각의 역사
이인식 지음 / 갤리온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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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직자로 평생을 봉직한 그는 교회의 고위직에 오르고자 노력을 했건만 정치적인 이유로 실패했고 또 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불행한 현실에 분노했고, 이러한 불운한 현실 때문에 그는 책을 쓰게 되며, 이 책은 18세기 초 유럽전역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읽혀지고 있다.


위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너선 스위프트이고 책은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이다. 이 책에는 네 차례의 여행이 수록되어 있는데, 소인국인 릴리퍼트(Lilliput), 대인국 브롭딩나그(Blobdingnag), 하늘의 섬나라 라푸타(Laputa), 말의 나라인 휘늠(Houyhnhnm)까지이다. 소인국인 릴리퍼트는 18세기 영국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즉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끊임없이 하찮은 논쟁을 일삼는 영국의 추악한 정치현실을 담고 있다. 거인국 브롭딩나그는 인간에 대한 혐오 풍자가 주된 관점이고, 섬나라 라푸타에서는 공중에 떠다니며 지상의 영토를 지배하는 라푸타섬은 아일랜드를 식민통치하는 대영제국에 대한 풍자이다. 마지막 여행인 말의 나라 휘늠에서는 이성을 지닌 말들인 휘늠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야후(Yahoo)라 불리는 인간 형상의 동물을 통해 이상사회를 보여준다.

 

우리들이 흔히 어린이들이 읽는 여행기로만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는 결코 쉬운 여행기는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휘늠나라는 바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저자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시피 이상국가에 관한 책이다.

<걸리버 여행기>처럼 유토피아 문학의 저변에는 현실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이 내포되어 있다. 그 불만은 사유재산으로 인한 빈곤, 또 여러 불평등한 사회제도, 고단한 노동 등 수없이 많다. 저자들은 이러한 불만이 없는 사회를 그리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평등한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꿈 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적인 제도들은 인간의 본성과 어울릴 수 없는 점이 문제다. 즉 계급과 사유재산을 없앤다는 것은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문명을 송두리째 뽑아내려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이다. 그렇기에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Utopia), 즉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유토피아(Utopia)에서 'u'는 없다는 의미이고, ‘topia'는  장소를 의미하므로 이 세상에 없는 곳이란 의미이다. 토마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란 책을 저술하며 이 단어를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들은 ’유토피아‘하면 이상사회를 뜻하는 단어로 인식하고 있다.

이 책 <유토피아 이야기>에는 플라톤의 『국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며』,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 에프게니 자마틴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까지 총 9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책마다 저자의 생애에 대한 소개와, 작품의 간단한 줄거리 요약과 작품의 일부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소개된 작품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책도 있지만 두 권(뒤를 돌아보며, 우리들)은 아직 국내에 번역이 안 된 책이다.

소개된 책들을 보면 19세기 이전의 작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불완전하고 잘못된 점을 고치고, 극복하기 위한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작가들은 유토피아를 더 이상 꿈꾸지 않았다. 즉 그들(에프게니 자마틴, 올더스 헉슬리, 조지 오웰)에게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두운 미래를 그렸다. 그 어두운 사회는 바로 '디스토피아(Dystopia)'였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 유토피아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음산하고 등골이 오싹한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렸는데, 어쩌면 그 내용이 21세기 지금과 그렇게 닮아 있는지 정말 무섭다.

저자는 주로 과학기술과 미래에 관한 책을 많이 낸 이인식으로 “이 책은 아상사회를 묘사한 대표적인 저술을 문학작품 위주로 골라서 그 내용을 간추려 놓은 길라잡이이다.”라고 이 책의 의미를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21세기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이것이 제일 궁금하다.

이 책은 유토피아와 관련한 유명한 작품들의 다이제스트와 해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내 경우에는 <걸리버 여행기>에 담겨진 심오한 뜻을 알게된 것이 큰 수확이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모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사람으로부터 범죄를 제어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로부터 자유를 제거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에프게니 자마틴의 <우리들 We>에서 나오는데, 우리를 두렵게 하는 범죄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자유를 없애려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다. 나는 이런 디스토피아 사회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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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어스 2009-10-17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670X
[우리들] 번역되어있네요 ^^
저도 동물농장을 본뒤 [우리들]을 찾다가 글보게 되었네요.
글 잘보았습니다.저도 유토피아 이야기와 걸리버여행기를 꼭 사보고싶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