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소설은 이미 결론이 난 역사적 사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 소설가는 어떤 면에서는 사관(史官)의 입장에서 책을 쓰는 것이리라. <남한산성>(학고재.2007년)은 병자호란이란 소재를 차용하고 있다. 그러니만큼 저자는 당연히 병자호란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사관으로서의 김훈의 입장은 이 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fact)은 이미 결론이 났다. 그해 겨울 정통성이 없는 임금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에 마련된 수항단(受降檀)에 올라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의 예를 올렸다. 이런 슬픈 역사적 사건을 이 소설은 차용해 온 것이다. 차용해 온 만큼 소설가에게는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1592년부터 일본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1636년에 병자호란까지 44년 동안에 조선은 큰 전쟁을 4번이나 겪는다. 이 처참한 시기에 민중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는가.

1636년에 일어난 전쟁, 우리는 흔히 병자년에 일어난 오랑캐의 난(병자호란)이라는 표현으로 청을 깎아 내린다. 소중화주의에 빠져 상대방을 오랑캐라고 부르고 있는 그 상대는 이미 거인이 되어있었으며, 명이 다시 일어서리라고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시기에 조선에게는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다.

 

청의 기병은 예상보다 빨리 한양에 도착한다. 강화로 도망하려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갈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약 1만5천 여 명의 병사와 함께 남한산성에서 방어에 나서는 조선의 조정.

어쩌자는 것인가. 왕궁을 비우고 도망한 임금은 목숨은 구했지만, 한양이나 청나라 군대가 지나간 곳에 살던 백성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했다. 역사 소설에서는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했다고 본다. 민초들은 어찌되었을까. 독자들은 이미 정치사적인 의미는 잘 알고 있으며 자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해 겨울 그 초라한 남한산성에서의 모습과 삼전도의 굴욕을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훈의 <남한산성>이라는 역사소설이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가 명확해 진다. 그런데도 김훈은 인조와 김상헌, 최명길만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이 김훈이라는 이름의 사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아닌가. 역사 소설은 모름지기 강자의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는 약자들의 삶을 살펴봐야 할 것이고, 그들의 슬픔이 임금의 삶 보다 중요한 데, 김훈은 철저하게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또 주전론, 척화론에 대한 김훈의 입장도 모호하다. 그는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에서 중요한 펙트인 두 진영에 대해서 그냥 사실 전달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관 임무는 가치판단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독자들은 아마도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끝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관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채 서날쇠의 미소로 책을 마감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기대에 그는 약간은 사관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 부분도 있다. 청태종 혹은 홍타이지를 그는 칸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중국의 황제가 아니라 여진족의 족장 칸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쓴 것인가? 그렇다면 김훈은 주전파인 김상헌의 편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명이 살아나리라고 믿고 있는 낙관론적이고 비현실적인 사람들 속으로 숨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문을 주로 사용해서 상황을 절박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비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그리고 그 결과가 굴욕적인 상황은 저자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부담감은 시종일관 김상헌을 통해서 표출된다. 한강 뱃사공의 죽음은 계백의 칼날을 생각나게 한다. 패한 전쟁에 자신의 식솔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계백의 그 칼 말이다. 뱃사공은 바로 조선인 백성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편안한 시절이면 자신의 일을 통해서 풍요롭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그에게, 아니 조선 백성에게 대륙의 변화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백성들에게 대륙의 정권 교체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그들은 국내의 정황조차도 상관이 없다, 누가 왕이 되든지 하루하루 밥 잘 먹고 아이들 잘 자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정세의 변화는 그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잡초와 같다. 뱃사공의 삶은 그의 딸로 연결이 되고, 서날쇠의 아들과 함께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종일관 나루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김상헌의 모습은 뱃사공에 대한 미안함과 아울러 불쌍한 조선 민중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황과 아울러 김훈의 단문은 인조가 처한 어려움을 극적으로 표출해주고 있다.

그러나 소설 도입부에서 보이는 말들의 유희는 짙은 화장을 한 작부의 모습처럼 지나친 수사로 가득 차 있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1/3이 지나는 시점부터 김훈의 글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 시점부터 소설의 상황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역사소설로는 완전히 함량미달로 보인다. 김훈은 역사에 대한 그의 시각을 더 벼려야 한다.

사람들은 소설은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역사 소설가는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사건을 해석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소설에 투영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남한산성>은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치 있는 역사소설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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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23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하양물감 2007-07-0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소설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갑니다. 이건, 역사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