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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죽음의 대기실에 있었습니다. 저는 차분히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당장이라도 불빛이 꺼지면 품위 있게 죽으리라 다짐했죠. 헬멧과 소지품을 준비하고, 혁대를 말아, 장화를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광부답게 죽고 싶었어요. 만약 구조대에게 발견된다면, 고개를 꼿꼿이 쳐든 긍지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고 싶었습니다.” - 세풀베다와 저자의 인터뷰
2010년 2월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칠레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은 진도 8.8로 역사상 다섯 번째로 강력했다. 이로 인해 수십 만 명이 집을 잃고 수백 명이 죽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후인 8월 커다란 사건이 또 일어났다. 화불단행이라고 했던가.
2010년8월5일 칠레 북부에 있는 구리 광산이 붕괴되었다. 광산 속에 광부 33명이 매몰되었다. 그들과 지상과의 통로도 끊겼고 또한 지상으로의 전화 연결도 불가능했다. 이들에게 남겨진 식량은 물 10리터, 복숭아 통조림 1개, 완두콩 통조림 2개, 연어 통조림 1개, 우유 16리터, 주스 18리터, 참치 통조림 20개, 크래커 96통, 강낭콩 통조림 4개에 불과했다. 이 정도라면 광부 열 명이 48시간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33명이니 하루를 살아갈 양에도 부족했다. 구조대가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나갈 가망성은 별로 없어보였다.
신간
(월드김영사.2011년)에는 이들 33인의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드라마 같이 실려 있다. 저자인 조나단 프랭클린은 매몰 광부를 비롯해 그들의 가족과 구조대원 120명을 인터뷰해서 이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독자들이 마치 자신이 광산 속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는 데에 있다. 또 삶을 향한 이들의 처절한 싸움에 독자들은 눈물까지도 흘릴 수 있다.
매몰된 지 하루가 지나자 극단적인 상황에 빠진 광부들 중 일부는 침울해지고, 일부는 오히려 활기차진다. 세풀베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즐긴다. 그는 마치 자신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틀째가 되자 벌써 마실 물이 바닥이 났다. 그러자 광부들은 주로 착암기에 쓰이는 산업용수가 담긴 물탱크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물탱크에 괸 물이기에 기름 냄새가 났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상에서는 광부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광부들이 있을 만한 장소를 겨냥해 시추해보지만, 1주일이 지나도 생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부에서 발주한 연구 용역 결과에 의하면 광부들의 생존가능성은 2%에 불과했다.
암담한 상황에서도 광부들의 놀라운 협동이 시작된다. 그들은 직급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무조건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들은 기초적인 질서 의식을 바탕으로 하루 일과를 조직적으로 꾸려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칼로리로 버티고 있지만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4주에서 6주였다. 매몰 구 일 째가 되자 24시간마다 한 번 하던 식사를 36시간마다 한 번 하기로 결정했다.
구조대가 계속 드릴을 이용해 광부들이 있는 곳으로 뚫으려 했으나, 그 넓은 광산에서 그들이 있는 곳을 찾는 일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일에 가까웠다. 열다섯째 날에 광부들은 마지막 음식을 먹기 위해 모였다, 그들 앞에는 참차 캔 두 개가 있었다. 그들은 참치 캔의 숫자가 몇 배로 늘어나달라고 기도했다. 매몰 16일째인 8월21일에 세풀베다는 죽음을 확신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는 오염된 물을 토했다. 그리고 열세 살짜리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자기 가족을 지키는 전사 브레이브하트를 잊지 말아라. 너도 반드시 그래야 해. 엄마와 누이를 보살피고 지켜주렴. 이제 네가 우리 집 가장이란다.
17일째 드디어 드릴이 광부들이 있던 대피소의 천장을 뚫었다. 광부들은 드릴에 자신들이 생존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렸고, 드릴에 편지를 매달았다. 이윽고 드릴은 다시 지상으로 올라갔고, 몇 시간 후 구멍을 통해 음식물이 전해졌다. 지상으로 올라간 광부들의 편지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써있었다. “우리 33인은 대피소에 살아있습니다.” 광산 사고 역사상 이렇게 많은 인원이 17일간이나 살아있었던 일은 없었다. 이건 기적이었다.
광부들의 생존은 확인되었고, 그들에게 음식도 제공되었다. 이제 광부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이 극복해야 할 일은 많이 있었다. 일단 배고픔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광부들의 음식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워졌다. 또 광부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들의 생활도 나태해졌다.
이제 가장 큰 일은 이들을 탈출시킬만한 구멍을 뚫는 일이었다.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에서 시추 전문가가 이곳으로 왔다. 세 팀으로 나누어 시추를 했건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디어 한 팀의 시추가 성공을 했다. 매몰된 지 무려 65일 만에 지상으로 연결된 통로가 뚫렸다. 69일 만에 광부들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마지막 33번째 광부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십장인 루이스 우르수아였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님, 저희 근무는 끝났습니다.”
매일 우리에게 전해지는 뉴스는 전쟁이나 살인, 사고 혹은 테러처럼 암울한 것투성이다. 그런 세태에 이번 사건의 마무리는 정말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뉴스에 식상해있던 우리들에게 이는 청량제와 같았다.
자신의 삶이 권태롭다고 느끼고 있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33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