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한국사회는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어려움에 빠져있다. 미국산 소고기는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은 한국 국민들에게 음식과 건강을 연결하고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존재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당연히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 먹어야만 하는 음식이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우리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 것이었다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먹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어떤 것은 먹어서는 안 되며, 어떤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잡식동물로 특히나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데에 다른 동물들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먹을거리는 건강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와도 연결된다. <죽음의 밥상>(산책자.2008년)은 환경, 윤리로 이야기의 범위를 확대한다. 원제목도 ‘The Ethics of What We Eat’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먹을거리에 있어서 건강 문제는 아주 단순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식 안에 들어있는 더욱 중요한 여러 가지 의미를 찾기 위해 책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각기 다른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세 가족을 소개한다.

첫 번째 가족은 ‘전형적인 현대적 식단’으로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가족이다. 이 가족은 SAD(Standard American Diet, 미국 표준 식단)를 대표하는 가정이다. 즉 이 가족은 고기, 달걀, 유제품의 비중이 높다. 빵, 설탕, 쌀 등의 탄수화물 식품은 보통 정백 과정을 거친 것들로, 이들은 과일과 채소의 비중이 낮아서 섬유질 섭취에 취약하다. 또한 튀긴 음식의 빈도가 높기에 지방 섭취율이 높다.

두 번째 가족은 ‘양심적인 잡식주의자’로 이 가정의 식단은 채소 위주이고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있는 ‘윤리적 식사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가정과 다른 점은 육류를 소비하는 데에 있어서 동물을 어떤 조건에서 사육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하는 식단을 꾸미고 있다,

세 번째 가족은 ‘완전 채식주의자’ 가정이다. 이 가정은 앞에 소개한 두 가정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하고,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데에 있어서도 윤리적이고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가정이다.

저자들은 이 가정을 방문해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또 이들이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하는 데에도 동참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세 가정이 음식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과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세 가정에서 구입하는 농산물이나 육류상품에 대해 이 먹을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역추적하고 이를 통해 각 먹을거리에 대해 건강, 환경,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는 계란에서부터 소고기, 돼지고기 속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 이 먹을거리들이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유전자 조작식품(GMO)과 양식 어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 유기농이란 표기가 있는 식품들조차도 정말 우기농이란 표시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에 빠진다. 정말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과연 무엇을 먹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든다 정말 마이클 폴란의 책 제목처럼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빠진다.


저자인 피터 싱어는 세계적인 실천윤리학자로 동물의 권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여러 권의 저술을 한 바 있다. 또 공저자인 짐 메이슨은 농부이자 변호사로 피터 싱어의 책<동물 해방>을 읽고는 그와 공동 작업을 하게 되어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두 명의 저자는 이 책의 저술 목적을 “먹을거리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향상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 책을 읽으니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식자우환(識字憂患)’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정말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진실은 불편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이아의 복수 -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
제임스 러브록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구는 과연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스스로의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에 대해 당연히 ‘그렇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이 책 <가이아의 복수>(세종서적.2008년)의 저자 제임스 러브록이었다. 러브록은 이러한 자신의 가설을 ‘가이아 가설’이라고 불렀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러브록의 친구인 노벨상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 붙여준 이름이다.

‘가이아 가설’은 지구는 유기체처럼 항상성(homeostasis)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많은 과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히나 리처드 도킨스의 비판은 혹독했다. 도킨스는 지구가 스스로 유기체처럼 지구의 대기를 만들어 낸다는 ‘가이아 가설’에 대해서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사이비 과학이라고 매도한다. 이에 대해 러브록은 “다윈주의적 입장에서 가이아를 반대한 주요 인물이 뛰어나고 명쾌한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였다는 점이 그나마 내겐 다행이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나는 곧 당시 이해되고 있던 형태의 다윈 진화가 가이아 가설과 모순된다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51쪽)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후 러브록은 ‘데이지 세계’라는 이름의 진화 모형을 만들어 자신의 이론을 더욱 확고히 하고자 했으나. 이 또한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러브록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인류와 지구는 치명적인 위험과 마주하고 있으며, 피할 시간이 거의 없다. 과학계의 중진들이 가이아에 대해 다소 덜 반발했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미래에 관한 훨씬 더 어려운,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릴 시간을 20년은 더 벌었을지도 모른다.”(55쪽)라고 이야기하며 과학자들의 비판에 서운함을 강하게 비치고 있다.

가이아 가설에 많은 과학자들이 반대 의견을 내고 있지만 그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바로 지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으며, 그 원인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이후 급속히 높아진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우리는 매년 올해 여름이 가장 더울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이제는 하도 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을 정도로 지구 온난화는 일상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화석연료사용으로 인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아직도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구가 더워지기도 하고 또 추워지는 것은 과거에도 늘 그래왔기 때문에 지금의 더위도 지구의 자연스런 순환과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는 온난화의 주범이 바로 이산화탄소라는데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특히나 1989년 설립된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보 간 패널,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그 원인을 찾는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한다.

지난 100년 간 지구의 온도는 섭씨 1도 증가했다고 한다. 1도 라는 온도를 우리는 아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침과 낮의 일교차만 하더라도 겨울에는 많은 차이가 나기에 1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지막 빙하기와 지금의 온도차는 불과 3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1도가 심각한 기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수준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면 21세기에 지구는 5도 정도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린란드의 빙하가 다 녹을 것이고, 이에 따라 전세계 해수면은 7미터 정도 상승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전 세계 대도시들은 강이나 바다에 면해있다. 또한 많은 경작지도 낮은 곳에 있다. 그렇다면 해수면이 7미터 상승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문명을 송두리째 없애버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를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지만 행동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행동하려고 할 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었을 것이다. 아니 러브록은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이 서문에서 “이 세기가 저물기 전에 우리 중 수십억 명은 죽을 것이고 그나마 견딜 만한 기후가 남아 있는 극지방이나 극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을 것이다.”(10쪽-서문)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인데, 이 문단은 이 책의 제목인 <가이아의 복수>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만 문단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뜨겁고 메마른 세계의 생존자들이 극지방의 새로운 문명 중심지로 떠나기 위해 모인다. 사막에 동이 트면서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야영지에 강렬한 햇살을 쏘아낸다. 쌀쌀한 밤공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열기가 충만해진다. 낙타가 깨어나 눈을 깜박이면서 천천히 일어난다. 몇 안 남은 부족의 생존자들이 낙타에 오른다. 낙타는 트림을 하면서 다름 오아시스까지 참기 어려운 열기를 헤치며 나아가는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239쪽)

뜨거워진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극지방뿐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어버렸고, 운 좋게 살아남은 몇몇 사람만이 살기 위해 극지방으로 이주한다는 러브록의 마지막 말이 미래의 현실이 아닌 SF영화의 한 장면이 되길 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傳 -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한국사傳 1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 <한국사傳>(한겨레출판.2008년)에 담긴 의미를 쉽게 알기 위해서 ‘기전체(紀傳體)’라는 역사서술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동양 최초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바로 기전체로 쓰인 최초의 책이다. 기전체는 본기(本紀)·열전(列傳)·지(志)·연표(年表) 등으로 구성하는데 이 중 ‘본기’에서  ‘기’와 열전에서 ‘전’을 합쳐 기전체라고 한다. 본기(本紀)는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중심으로 역대 왕조의 변천을 연대순으로 서술한 것이고, ‘열전(列傳)’은 각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한국사 인물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총 10명이 수록되어 있다. 그 인물들의 면면은 어떤지 살펴보자. 일단 성별로 구분이 가능하다. 여자가 세 명이고, 남자가 일곱 명이다. 남자들의 이야기(History)치고는 여자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여자가 소개되어 있을지가 매우 궁금하다. ‘리진’, ‘김만덕’, ‘덕혜옹주’가 그 주인공이다. ‘리진’은 최근에 소설로 우리에게 알져진 인물이다. 그의 개인적인 슬픈 인생사가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이 책에서 보듯이 한국사 1세대 근대여성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프랑시와의 사랑과 그와 함께한 프랑스 생활, 그리고 쓸쓸한 귀국과 귀국이후 관기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근대여성’은 존재할 수 없었는지,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김만덕’이란 이름은 이 책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제주의 여자로 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제주가 기근에 시달릴 때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주 민을 살린 그녀의 가상한 베품이 멋지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정조의 말에 한양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말하는 부분에서 제주 사람들이 생각하는 뭍에 대한 선망을 느낄 수 있었다.

‘덕혜옹주’부분에서는 정말 슬펐다. 그녀는 소개한 제목도 ‘비운의 라스트 프린세스’다. 일제시대까지도 신문에서는 그녀를 ‘아기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조선 왕실을 없애버리려는 일본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일본식교육을 받아야 했고. 또 전략적 결혼을 하게 된 그녀는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박정희 시대에 와서야 한국으로 귀국한 그녀는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다가. 1989년 향년 77세로 죽는다. 사진으로 보니 아버지인 고종과 얼굴이 아주 똑같이 닮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망국 조선의 슬픈 운명과 너무도 닮아 있어 가슴이 쓰려왔다.

‘신숙주’도 나온다. 변절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 신숙주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그를 조명해 보고 있다. 또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라는 인물이 나온다. 우리는 홍종우를 수구파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홍종우는 수구파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고, 그도 개화를 주장한 사람이었다는 내용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 외에도 헤이그 밀사사건의 주역이었던 ‘이준’, 당나라에 반기를 들어 제나라를 세운 고구려 유민 ‘이정기’, 아들을 죽인 슬픈 왕이었던 ‘영조’, 역사에서 나선정벌로 알려져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 ‘신유’가 나온다. 그렇지만 내게 제일 관심이 있었던 인물은 이 책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역관 ‘홍순언’이었다.

‘홍순언’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그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역사책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보기로 하자.

홍순언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중국, 일본 등과의 외교 통상 관계를 수록한 책인 통문관지(通文館志)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홍순언은 조선 선조 때 역관으로 명나라에 간다. 북경에 도착하기 전날 그는 기생집에 간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일생을 바꿀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홍순언에게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자신은 외동딸인데, 부모님을 고향으로 모셔가 장례를 치르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기생집에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홍순언은 그 여인에게 큰돈을 준다. 그러자 여인은 홍순언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홍순언은 자신이 홍 씨라고만 말해준다.

선조시대에 있어서 명국과의 외교관계에서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의 이름을 엉뚱한 인물로 적혀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조선은 이를 고치고자 조선 초부터 200여 년에 걸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사신을 보냈지만, <대명회전>에 잘못 수록된 내용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렇게 이성계의 가계를 시정하고자 명나라에 요청했던 사건을 종계변무(宗系辨誣)라고 하는데, 거듭되는 사신의 요청에도 명나라가 고치지 앟는 것은 역관의 잘못이라는 것이 조선 내에서의 평가였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사신을 보내면서 이번에도 역관이 이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홍순언이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584년 홍순언은 자신의 마지막 사신행이 될 지도 모르는 북경행을 한다. 그가 북경의 관문인 조양문에 도착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홍순언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명나라의 예부시랑(외무차관)인 석성(石星)이었다. 보통 조선의 사신이 그곳에 도착하면 말단관리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전례 없이 파격적으로 고위관리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석성의 아내까지 와서 홍순언에게 절을 올린다. 석성의 아내는 바로 그가 과거에 도움을 준 바로 그 여인이었던 것이다. 석성의 도움으로 <대명회전>은 고쳐지게 되고 홍순언은 공로로 말미암아, 광국공신의 칭호를 받는다. 그리고 종2품에 해당하는 보직을 받는다. 역관이 오를 수 없는 자리였지만, 홍순언이 처리한 일이 너무도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조는 홍순언에게 당릉군이란 군호까지도 하사한다.

그리고 8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전쟁준비가 없었던 조선은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조선의 요청에 명나라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선을 돕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조선을 돕자고 의견을 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병무상서(국방부장관)인 석성이었다. 그리하여 명은 원군을 파견하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홍순언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순언과 석성은 개인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맺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석성은 조선을 돕다가 막대한 군비를 소모한 책임을 지고 투옥된다. 그리고 죽으면서 유언을 한다. 유언내용은 조선으로 귀화하라는 것이었다. 석성의 후손은 지금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살고 있는 석덕완씨가 석성의 14대 손이라고 한다. 석성의 후손은 석성의 유언대로 조선으로 귀화했고, 선조는 그들에게 해주 땅을 주어 해주 석씨가 조선인으로 살게 된다.

정말 드라마 같지 않은가. 개인적인 인연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저자는 “개인의 사소한 일이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줄 좋은 소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무엇일까? 역사 그 자체를 공부하는 것과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로 대단히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KBS에서 ‘한국사전’이라는 역사 다큐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것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여행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 업무와 관련된(밥벌이와 관련된) 여행은 의무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여행이라고 말하지 않고 출장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행할 권리라면 순전히 개인적은 목적으로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창비.2008년)에서 보면 내용에서 많은 부분이 그의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여행에서 자신의 문학적인 소재를 얻고, 자신의 문학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여행을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반어적인 의미로 ‘여행할 권리’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책 처음에 나오는 문장 “‘겨우 이것뿐인가‘ 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라고 한 그의 말은 이 책의 서문 역할을 한다. 즉 그는 기존의 일반적인 여행(낯선 곳에서 만나는 풍물과 사람, 음식, 문화, 언어를 만나는 여행)에 대해 ‘그것뿐인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는 여행에 있어서 ‘그것’ 외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연수의 여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김연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간다. 우리가 보통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는 의미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의문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본능적인 의문을 풀기위한 것이다. 보통 남한 사람의 경우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하면 반나절이면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멀다고 한다면 북한일 것이다. 사실 북한은 지리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지만, 우리가 가 볼 수 없기에 심리적으로 아주 먼 곳이라 느낀다. 그런데 김연수 아버지의 고향은 지리적으로도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아주 먼 곳이었다. 그 먼 느낌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은 일본하고도 나고야하고도 타지미하고도 카사하라”. 또한 심리적으로 먼 느낌은 아버지의 말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났기에 그곳에 항상 가고 싶었지만 남들에게 그 이야기를 30년 동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일 간에는 심리적인 거리차가 있는 것이리라.

그 심리적인 거리차를 저자는 이 글이 담긴 장의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경 너무 도끼로 이마까라 상들의 나라로”. 저자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에서도 항상 자신의 문학과 연결시킨다. 그는 아버지의 슬픈 삶에 빗대어 자신의 문학관을 내비친다. “왜 글을 쓰냐고 하면 바로 그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리얼리티는 이 현실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 셈이다.”

2006년8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그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한다. 즉 자신의 모국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학이란 그들을 대신해 소리를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문교가 있는 한 누군가는 이민자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드러낼 것이다.”

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으로 입장을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아스트리드 트롯찌를 만나서 그는 ‘민족 문학’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는 문학은 ‘민족’이나 ‘피’와 같은 생물학적인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문학은 민족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바로 이 장의 제목인 “내 피를 물만큼이나 묽게 만들지 않으면”이다.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부분은 작가 ‘이상’에 대한 글이다. 김연수는 이상이 사망하기 전까지 살았던 일본 도오꾜오로 향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이상에 관한 많은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마치 이상의 전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이상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공부의 결과가 김연수의 다른 책 <굳빠이. 이상>인 것 같다.

마지막 장은 김연수는 자신을 ‘매혹시키고 있는 세 개의 공간’을 말한다. ‘역’, ‘휴게소’, ‘공항’에 관련된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특히 공항은 그에게 가장 매혹적인 장소로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글은 앞부분은 유머러스하게 시작을 한다. 어떤 부분은 마치 빌 브라이슨의 글처럼 웃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책의 느낌은 무겁고 어둡다. 또 김연수가 천착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김연수가 다음에는 이런 책을 내겠구나’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집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구석구석에 그는 자신의 문학관을 내비치고 있다. 즉 그의 여행은 자신의 문학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문학을 완성하기 위해 공항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다. 또 중국에서 그는 중국어를 배우고, 미국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부하는 작가라는 말이 결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기세덱 2008-06-20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하, 알라딘에도 계셨군요....ㅎㅎ
이주의리뷰 추카드려요...ㅎㅎ

이환 2008-06-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ㅋㅋㅋ..김연수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을 멜기님한테 들겼네요.

뒷북소녀 2008-06-23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환님 축하드려요^^

이환 2008-06-2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여기서 만나니 더욱 반갑네요,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왕국 1>(민음사.2008년)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왕국’이라는 편이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드로메다 하이츠’라는 부제를 보았을 때 과연 ‘어떤 책일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안드로메다’라는 단어 때문에 혹시 ‘신화’나 ‘천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책의 제목이나 부제는 그 책의 내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시하기 때문이었다.

보통 독자가 생각하기에 제목이 아리송할 때에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제목에서 내용을 알아차리지 못함에도 서문도 없었다. 다만 책의 시작이 페디 매캘룬 이란 이름의 가수가 부른 ‘안드로메다 하이츠’라는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책의 본문 중에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 수록되어 있었다. 저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무언가가 지켜주고 있는 여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피붙이의 애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그리고 나고 자란 땅의 에너지와 지금까지 부여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 내 주위에는 무지개처럼 겹겹이 애정의 고리가 있다.”(16~17쪽)

주인공인 ‘시즈쿠이시’는 할아버지가 즐겨 재배한 선인장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부모는 없고 할머니와 산골 오두막에서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약초로 차를 만드는 명인이었다. 그래서 전국에서 병을 치교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두막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개발의 여파로 말미암아 자연의 균형은 깨지고, 이에 따라 약초의 효과도 줄어들었다. 이 부분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생각한다. “식물이란 매순간 섬세하게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산기슭에서 불미한 일이 생기면 그것이 온 산으로 퍼져, 마치 불안한 인간이 그렇듯 유독물질을 뿜어내는 일도 있다”(29쪽).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뭔가 환경보호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느끼기 쉬우나,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읽어보면 수렵채집을 하던 선사시대에 인간들이 나무나 숲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은 늘 한없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데 인간은 그런 산을 겸허하게 맏아들이지 않는다.”라는 대사는 자연에 대해 우리 선조들이 부여했던 지위가 현제에 와서는 착취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에 대한 한탄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렇게 자연이 망가지면서 약초의 효과가 없어지자 할머니는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고, 주인공은 홀로 남겨지게 된다. 주인공은 산을 떠나게 되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자 끊임없이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가에데’였다. 가에데는 눈이 잘 안 보이는 대신에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물건으로 그 사람의 온갖 것을 알아내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선사시대의 샤먼과 같은 존재로 이를테면 점쟁이였던 것이다. 점쟁이의 조수로 들어간 그녀는 가에데의 집에서 접수를 보고 전화를 받고 또 장부를 기록했으며, 더욱 중요한 일은 가에데의 책을 대필하는 일이었다.

 

일은 하고 있지만 외로운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조연 역할에 그친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 및 초능력과 관련된 신비주의이기 때문이다.



총 3권짜리 책 중에서 1편의 주요 내용이 이것이다. 끝까지 읽어봤지만 내용이 아리송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130쪽이 안 되는 분량이기에 가볍게 읽었지만, 다 읽은 후의 느낌은 그리 가볍지는 않다. ‘2,3권을 모두 읽으면 뭔가를 잡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가에데의 책 대필이 끝나자 가에데는 후원자이자 동성의 애인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고, 그녀는 다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옆에 있지만, 독자들은 그 남자친구를 결코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