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사傳 -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ㅣ 한국사傳 1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평점 :
이 책의 제목 <한국사傳>(한겨레출판.2008년)에 담긴 의미를 쉽게 알기 위해서 ‘기전체(紀傳體)’라는 역사서술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동양 최초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바로 기전체로 쓰인 최초의 책이다. 기전체는 본기(本紀)·열전(列傳)·지(志)·연표(年表) 등으로 구성하는데 이 중 ‘본기’에서 ‘기’와 열전에서 ‘전’을 합쳐 기전체라고 한다. 본기(本紀)는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중심으로 역대 왕조의 변천을 연대순으로 서술한 것이고, ‘열전(列傳)’은 각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한국사 인물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총 10명이 수록되어 있다. 그 인물들의 면면은 어떤지 살펴보자. 일단 성별로 구분이 가능하다. 여자가 세 명이고, 남자가 일곱 명이다. 남자들의 이야기(History)치고는 여자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여자가 소개되어 있을지가 매우 궁금하다. ‘리진’, ‘김만덕’, ‘덕혜옹주’가 그 주인공이다. ‘리진’은 최근에 소설로 우리에게 알져진 인물이다. 그의 개인적인 슬픈 인생사가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이 책에서 보듯이 한국사 1세대 근대여성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프랑시와의 사랑과 그와 함께한 프랑스 생활, 그리고 쓸쓸한 귀국과 귀국이후 관기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근대여성’은 존재할 수 없었는지,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김만덕’이란 이름은 이 책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제주의 여자로 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제주가 기근에 시달릴 때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주 민을 살린 그녀의 가상한 베품이 멋지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정조의 말에 한양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말하는 부분에서 제주 사람들이 생각하는 뭍에 대한 선망을 느낄 수 있었다.
‘덕혜옹주’부분에서는 정말 슬펐다. 그녀는 소개한 제목도 ‘비운의 라스트 프린세스’다. 일제시대까지도 신문에서는 그녀를 ‘아기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조선 왕실을 없애버리려는 일본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일본식교육을 받아야 했고. 또 전략적 결혼을 하게 된 그녀는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박정희 시대에 와서야 한국으로 귀국한 그녀는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다가. 1989년 향년 77세로 죽는다. 사진으로 보니 아버지인 고종과 얼굴이 아주 똑같이 닮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망국 조선의 슬픈 운명과 너무도 닮아 있어 가슴이 쓰려왔다.
‘신숙주’도 나온다. 변절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 신숙주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그를 조명해 보고 있다. 또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라는 인물이 나온다. 우리는 홍종우를 수구파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홍종우는 수구파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고, 그도 개화를 주장한 사람이었다는 내용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 외에도 헤이그 밀사사건의 주역이었던 ‘이준’, 당나라에 반기를 들어 제나라를 세운 고구려 유민 ‘이정기’, 아들을 죽인 슬픈 왕이었던 ‘영조’, 역사에서 나선정벌로 알려져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 ‘신유’가 나온다. 그렇지만 내게 제일 관심이 있었던 인물은 이 책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역관 ‘홍순언’이었다.
‘홍순언’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그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역사책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보기로 하자.
홍순언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중국, 일본 등과의 외교 통상 관계를 수록한 책인 통문관지(通文館志)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홍순언은 조선 선조 때 역관으로 명나라에 간다. 북경에 도착하기 전날 그는 기생집에 간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일생을 바꿀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홍순언에게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자신은 외동딸인데, 부모님을 고향으로 모셔가 장례를 치르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기생집에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홍순언은 그 여인에게 큰돈을 준다. 그러자 여인은 홍순언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홍순언은 자신이 홍 씨라고만 말해준다.
선조시대에 있어서 명국과의 외교관계에서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의 이름을 엉뚱한 인물로 적혀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조선은 이를 고치고자 조선 초부터 200여 년에 걸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사신을 보냈지만, <대명회전>에 잘못 수록된 내용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렇게 이성계의 가계를 시정하고자 명나라에 요청했던 사건을 종계변무(宗系辨誣)라고 하는데, 거듭되는 사신의 요청에도 명나라가 고치지 앟는 것은 역관의 잘못이라는 것이 조선 내에서의 평가였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사신을 보내면서 이번에도 역관이 이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홍순언이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584년 홍순언은 자신의 마지막 사신행이 될 지도 모르는 북경행을 한다. 그가 북경의 관문인 조양문에 도착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홍순언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명나라의 예부시랑(외무차관)인 석성(石星)이었다. 보통 조선의 사신이 그곳에 도착하면 말단관리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전례 없이 파격적으로 고위관리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석성의 아내까지 와서 홍순언에게 절을 올린다. 석성의 아내는 바로 그가 과거에 도움을 준 바로 그 여인이었던 것이다. 석성의 도움으로 <대명회전>은 고쳐지게 되고 홍순언은 공로로 말미암아, 광국공신의 칭호를 받는다. 그리고 종2품에 해당하는 보직을 받는다. 역관이 오를 수 없는 자리였지만, 홍순언이 처리한 일이 너무도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조는 홍순언에게 당릉군이란 군호까지도 하사한다.
그리고 8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전쟁준비가 없었던 조선은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조선의 요청에 명나라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선을 돕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조선을 돕자고 의견을 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병무상서(국방부장관)인 석성이었다. 그리하여 명은 원군을 파견하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홍순언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순언과 석성은 개인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맺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석성은 조선을 돕다가 막대한 군비를 소모한 책임을 지고 투옥된다. 그리고 죽으면서 유언을 한다. 유언내용은 조선으로 귀화하라는 것이었다. 석성의 후손은 지금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살고 있는 석덕완씨가 석성의 14대 손이라고 한다. 석성의 후손은 석성의 유언대로 조선으로 귀화했고, 선조는 그들에게 해주 땅을 주어 해주 석씨가 조선인으로 살게 된다.
정말 드라마 같지 않은가. 개인적인 인연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저자는 “개인의 사소한 일이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줄 좋은 소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무엇일까? 역사 그 자체를 공부하는 것과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로 대단히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KBS에서 ‘한국사전’이라는 역사 다큐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