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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여행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 업무와 관련된(밥벌이와 관련된) 여행은 의무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여행이라고 말하지 않고 출장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행할 권리라면 순전히 개인적은 목적으로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창비.2008년)에서 보면 내용에서 많은 부분이 그의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여행에서 자신의 문학적인 소재를 얻고, 자신의 문학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여행을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반어적인 의미로 ‘여행할 권리’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책 처음에 나오는 문장 “‘겨우 이것뿐인가‘ 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라고 한 그의 말은 이 책의 서문 역할을 한다. 즉 그는 기존의 일반적인 여행(낯선 곳에서 만나는 풍물과 사람, 음식, 문화, 언어를 만나는 여행)에 대해 ‘그것뿐인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는 여행에 있어서 ‘그것’ 외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연수의 여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김연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간다. 우리가 보통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는 의미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의문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본능적인 의문을 풀기위한 것이다. 보통 남한 사람의 경우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하면 반나절이면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멀다고 한다면 북한일 것이다. 사실 북한은 지리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지만, 우리가 가 볼 수 없기에 심리적으로 아주 먼 곳이라 느낀다. 그런데 김연수 아버지의 고향은 지리적으로도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아주 먼 곳이었다. 그 먼 느낌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은 일본하고도 나고야하고도 타지미하고도 카사하라”. 또한 심리적으로 먼 느낌은 아버지의 말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났기에 그곳에 항상 가고 싶었지만 남들에게 그 이야기를 30년 동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일 간에는 심리적인 거리차가 있는 것이리라.
그 심리적인 거리차를 저자는 이 글이 담긴 장의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경 너무 도끼로 이마까라 상들의 나라로”. 저자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에서도 항상 자신의 문학과 연결시킨다. 그는 아버지의 슬픈 삶에 빗대어 자신의 문학관을 내비친다. “왜 글을 쓰냐고 하면 바로 그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리얼리티는 이 현실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 셈이다.”
2006년8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그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한다. 즉 자신의 모국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학이란 그들을 대신해 소리를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문교가 있는 한 누군가는 이민자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드러낼 것이다.”
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으로 입장을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아스트리드 트롯찌를 만나서 그는 ‘민족 문학’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는 문학은 ‘민족’이나 ‘피’와 같은 생물학적인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문학은 민족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바로 이 장의 제목인 “내 피를 물만큼이나 묽게 만들지 않으면”이다.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부분은 작가 ‘이상’에 대한 글이다. 김연수는 이상이 사망하기 전까지 살았던 일본 도오꾜오로 향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이상에 관한 많은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마치 이상의 전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이상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공부의 결과가 김연수의 다른 책 <굳빠이. 이상>인 것 같다.
마지막 장은 김연수는 자신을 ‘매혹시키고 있는 세 개의 공간’을 말한다. ‘역’, ‘휴게소’, ‘공항’에 관련된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특히 공항은 그에게 가장 매혹적인 장소로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글은 앞부분은 유머러스하게 시작을 한다. 어떤 부분은 마치 빌 브라이슨의 글처럼 웃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책의 느낌은 무겁고 어둡다. 또 김연수가 천착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김연수가 다음에는 이런 책을 내겠구나’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집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구석구석에 그는 자신의 문학관을 내비치고 있다. 즉 그의 여행은 자신의 문학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문학을 완성하기 위해 공항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다. 또 중국에서 그는 중국어를 배우고, 미국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부하는 작가라는 말이 결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