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런 삶의 해부 - 거짓말, 그리고 이중생활의 심리학
게일 살츠 지음, 박정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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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모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생겼을 때 어른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육체적인 기준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을 말할 때도 있지만, 비밀이 생긴 것을 어른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은 적절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숨기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이나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방어수단을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싶은 것들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성문제라든지 아니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비난 받을 수 있는 행동이나 범죄와 관련된 상황일 것이다.

 

이 책 <비밀스런 삶의 해부>(에코리브르.2008년)에서 비밀이란 “우리가 진정성을 탐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주는 안전한 피난처”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인 게일 살츠는 정신분석 전문의로서 실제 임상에서 얻은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있어 ‘비밀’이란 무엇인지, 또 비밀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인간에게 있어서 비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은밀하게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인간이란 종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도 다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공감하거나 비밀을 지키는 사라에게 자부심을 느끼게도 하는.” 비밀을 양성(良性)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반면 비밀이 누구에게도 밝히기 어렵고 또 그 비밀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피해를 보는 경우에는 이를 악성(惡性)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비밀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마련이지만 저자는 비밀을 결코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저자가 말하는 비밀의 긍정적인 측면은 “(타인과 공유하는 비밀은)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상대를 독점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거나 사랑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최초로 대서양을 비행기로 건넌 찰스 린드버그의 얘기가 나온다. 린드버그는 아내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을 통해서 많은 아이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이 사실을 숨겼고, 그가 사망한 이후에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 린드버그는 자신의 사생활에 있어서 철저히 비밀을 지킨 것이다. 린드버그의 비밀은 ‘연인들의 비밀스런 삶’이라는 장이 수록이 되어있다.

반사회적 성격 질환자라는 의미를 가진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단어가 있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그 구별이 쉽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이코패스가 더 능숙하고 계획적이고 비밀스러운 데 비해 소시오패스는 좀 더 어눌하고 무질서한 편”이라고 역자는 주석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소시오패스는 이를 테면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이 살인을 하고 체포된 경우, 그 이웃들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이웃들은 그가 아주 평범한 사람이고, 예의도 바르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경우를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죄자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가? 저자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범죄자들도 최초에는 작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고, 이것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만들었고, 나아가 더욱 큰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 것이다. “비밀은 범죄자가 머룰 임시 거처를 제공함으로써 모순감정, 갈등, 그리고 공격성이라는 불꽃에 쉼 없이 부채질을 한다.”라고 말하며 저자는 비밀이 범죄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예는 ’범죄자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는 제목의 장에 나온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비밀스러운 삶’이 노출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사례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외도를 일삼는 남편의 사례가 나온다. 외도를 아내에게 들키고는 정신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를 외도의 길로 가게 되었으며, 정신적 상담을 통해 치유하는 경우도 소개된다. 

이렇게 이 책은 비밀의 의미에 대해 깊숙이 파헤치고 있는데, 과연 이 책의 저자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남에게 밝히지 않는 비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는 과연 어떤 비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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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 평생 잊지 못할 몽골의 초원과 하늘,그리고 사람 이야기
강제욱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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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이른아침.2008년)은 6명의 사진가들이 몽골를 방문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쓴 책으로, 저자들 모두가 사진가다 보니 멋진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있다.

 

우리와 가까이 살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인 보다 비행기로 3시간가량 걸려야 갈 수 있을 정도로 먼 지역에 있는 그들이 한국인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들은 정말 우리와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이다.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보고만 있으면, 몽골인들은 그냥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느낄 정도로 닮아 있다.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이고, 우리와 닮은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 6명의 저자는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그들이 본 몽골의 모습은 어땠을까.

“서너 번을 보니 풍광이 눈에 들어왔고, 대여섯 번을 보니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열 번을 보니 자연과 인간, 문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몽골병에 걸린 게 분명합니다.” 사진가이자 <윤광준의 생활명품 산책> 등 여러 권의 책을 낸 윤광준이 몽골에 대한 느낌을 쓴 부분이다. 윤광준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몽골에 빠지게 되었을까?


몽골의 생활은 우리와 비교해서 많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윤광준은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원시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몽골인의 이동가옥인 게르에서 나는 역겹던 냄새에도 익숙해졌다고 한다.

사진가 진아라가 쓴 글에 “저들은 길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며 가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평탄한 초원지역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길이 없지만 그냥 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길이 없기에 길을 잃을 이유도 없는 것이리라. 또 몽골사람들은 가축들과 먹이 경쟁을 하지 않기 위해 채소를 먹지 않는다고 하니, 가축과의 공존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몽골인들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권태균이 쓴 글의 제목은 ‘한국의 시원을 찾아서’다. 그가 간 네이멍구자치구 남하시에는 부여도읍지가 있었다. 그곳은 또한 선비족의 고향으로 선비족은 중국인들에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이족으로 불린다. 이 지역은 홍산문화가 발흥한 곳이고, 이는 한민족의 뿌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한 몽골엔 지금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늘어나는 공장시설로 말미암아 국토는 오염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몽골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탐내는 외국기업이 들어오면서 도시가 새로 개발이 되어, 초원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전통 유목민들의 생업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저자들은 몽골이 변화하기 전의 모습을 기록하고, 또 기억하고 싶어서 그곳에 간지도 모르겠다. 현대 문명의 편리함의 내면에는 파괴된 자연과 오염, 전통의 파괴 등 많은 문제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몽골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저자들이 편지 형식으로 쓴 ‘초원에서 보낸 편지’에 나타나 있는 몽골의 아름다운 모습은 곧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문명으로 인하여 사라지고 있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본 독자들은 아마 쓸쓸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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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센스 - 당신의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깨우는 역발상 비주얼 에세이
정철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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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센스>(황금가지.2008년)라는 제목을 봐서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감이 안 잡힌다. 영문제목을 보니 ‘The seventh sense'다. 7번째 감각이라는 말인데, 육감까지만 알고 있는 나에게 내용이 궁금해진다.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깨우는...‘이라고 적혀있는 책의 부제를 보니 조금은 알 듯도 하건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책을 펼치자 저자 소개는 “송강 정철 선생이 아니다. 영어로 유명한 정철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정카피라 부른다.”라고 나온다. 이제 책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카피라이터가 쓴 창조적인 감각 살리기’라는 것인데, 과연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얼른 본문을 펼쳐본다.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다. 제7감을 얻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뇌를 꺼내서 먼저를 털고, 살균한 후에 이 새로워진 뇌를 심장에 있는 자리에 놓으라고 한다. 뇌라는 이성을 상징하고 심장은 감성을 말하는 데, 그렇다면 7감을 얻는 방법은 이성을 없애고 감성만 남기라는 표현으로 보인다. 감성을 이성보다 우위에 놓으라는 말에 충분히 일리가 있기에 진도를 나가보도록 하자.


‘습관을 파(破)하기’라는 첫 장의 제목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몇 장을 넘기자 ‘양반’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지금 마시는 소주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세요, 
 지금 피우는 담배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세요, 
 ....(중략) 
 지금 내뱉는 불만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세요,
양을 반으로 줄인 사람은 양반 소리를 듣습니다.“

양을 반으로 줄이면 양반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은 정말 기발하기도 하고 읽는 나에게 슬며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피라이트’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내 안으로 다가온다.

 

‘느리게’라는 제목의 글은 “너무 빨리 걷는 사람은, 침을 뱉으면 자기 발등에 떨어진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끝난다. 한 문장으로 현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게 한다. 빠르다는 것이 마치 복음인양 추앙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제는 느림이나 쉼표가 정작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또 이 문장은 우리들의 아둔함에 내리는 경고문 같다.


세 번째 장의 제목은 ‘편견에 노(No)하기’다. 내용을 보니 노(No)는 노(怒)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보신탕’이란 제목의 글 역시 단 한 문장이다. “에펠탑이 누워서 낮잠을 잔다고 해도 우리는 너희를 간섭하지 않겠다.”와 에펠탑이 옆으로 누워있는 그림이 같이 있다. 정철은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의 보신탕에 대한 편견에 노(No)라고 외치고 있으면서, 또 점잖게 노(怒)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 장은 ‘긍정을 탐(耽)하기’다. 저자가 말하는 탐은 탐낼 탐(貪)이 아니라 즐길 탐 (眈)이다. ‘少’라는 제목의 글은 정말 작은 글씨로 써있어 눈이 좋은 사람들도 잘 볼 수 없을 정도다. 눈을 부릅뜨고 읽어나가자 맨 마지막 문장이 “나이는 1년에 한 살씩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포기할 때마다 한 살씩 먹는 것입니다.”라고 써있다. 정말 반짝하게 빛이 나는 문장이다.

‘두 여자 이야기’라는 글은 내가 몇 번을 읽어봤는지 모른다.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서울시장 후보를 했던 강금실에 대한 이야기다. 한 사람을 마치 두 명인 것처럼 대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쓴 글로, 이 글을 읽으니 강금실이 아주 매력적인 사람인 것으로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불편함도 있었고, 미소 짓기도 했고, 또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현란한 단어 활용 능력과 운과 율을 맞추는 능력 등 카피라이터의 정수를 봤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는 내게 ‘세븐 센스를 얻었나?’라고 자문해본다. 흐흐흐. 아니다 제7감은 결코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쉽게 배워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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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시클 다이어리 - 누구에게나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 순간이 온다
정태일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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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필자는 이 책 <바이시클 다이어리>(지식노마드.2008년)의 저자인 정태일을 만난 일이 있다. 모임에서 그를 만났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하였기에 그와 깊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때 정태일에 대해서 내가 받은 인상은 평범했다. 몸집도 그랬고, 말투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범상치 않은 구석을 발견했다. 그의 눈빛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애써 그것을 기억에 담아 두려하지 않았었다. 얼마 후 그가 책 출간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이어 서점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저자 정태일은 29세의 취업 준비생이었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졸업했건만 매번 취업에서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의에 빠져있는 그였지만, 그에게는 멋진 아버지가 있었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고, 또 아버지도 어려웠던 시기에 자전거로 전국여행을 하며 극복한 경험이 있었기에, 저자는 유럽으로 자전거여행을 할 준비를 한다. 이 단계에서 그는 바이크 숍을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 친구인 필중이 아저씨를 만난다. 필중이 아저씨는 저자에게 왜 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묻는다. 저자는 “자전거를 타고 유럽까지 가야 하는 정확한 이유는 아직 없어요. 하지만 어릴적 제가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면서 세상을 배웠듯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출발하기 전 저자는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든 타파해 보려고 이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저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보다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했던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하는 법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유럽 자전거 여행 출사표를 던진다.“ 또 밟고 또 밟아라!”라는 구호로 그는 이 여행에 대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든다. 다른 것 생각할 것 없이, 단순히 페달을 밟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자전거 분해, 조립, 수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체력훈련까지 하고, 자전거 여행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전체적인 일정을 수립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드디어 파리로 향한다.

촘촘히 계획은 수립했지만, 삶이란 것이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오히려 계획한대로 된다면 인생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그의 여행도 실수의 연속이다. 장비의 문제는 차라리 사소해 보인다. 길을 잃고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그는 사람들과 사귄다. 사귄 사람 중 한명인 독일인 바이커인 한프슈텡겔에게 자신의 이름이 ‘태일’이라고 말하자. 그는 ‘빌헬름 텔’의 ‘텔’이라고 알아듣는다. 그 후로 저자는 빌헬름 텔을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다. 이런 따스함이 있는 것이 여행이 아니던가. 어떤 유적지를 방문하고 수려한 경관을 보는 것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게다가 자전거 여행은 오로지 자신의 근육의 힘만을 이용해서 지역을 샅샅이 돌아다니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전거 여행은 극히 '미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걷는 여행이 가장 그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 여행을 하면서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는 지웠다. 여기만은 꼭 가야한다는 촌스러운 생각도 지웠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자유롭고 싶었고, 그것이 이 여행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그의 페달 여행은 스페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로 간 그는 일본인 여자 바이커를 만난다. 미유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저자보다 5살이나 어린 여대생인 그녀도 자전거 여행 중이었다. 그녀는 저자에게 자전거 여행을 온 목적을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은 이번 여행을 책으로 쓸 예정이라고 말한다. 미유키와 만나면서 저자는 “그래, 지금부터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야.”라고 결심한다. 결국 저자는 미유키라는 사람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 이 책을 쓴 것이다.

 

저자는 두 달간 2,500킬로미터를 달린다. 자전거 바퀴의 크기로 계산해보니, 700만 번을 페달질을 한 것이다. 그는 무사히 돌아왔고, 여행 3년 후인 2008년 여름 이 책을 출간한다. 책을 한 권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여행으로 말미암아 저자는 직장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멋진 책까지 얻었다.

책을 다 읽으니, 모임에서 보았던 그의 눈빛이 기억이 났다. 그의 강한 눈빛은 바로 자신감과 열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유가 바로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경험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 저자를 만나면, ‘빌렐름 텔’이라고 큰 소리로 그를 부르며 정말 거수경례라도 하고 싶고, 또 그에게 열정을 배우고 싶다. 필자가 저자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저자가 자전거 여행 중에 만난 5살이나 나이어린 미유키를 통해서 배웠듯이...

 

나도 유럽에 여행 갔을 때 현지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하루 종일 탄 적이 있었다. 스위스 바젤에서의 일이었는데 그곳에서 자전거는 무료로 빌릴 수가 있었다. 여권을 맡기고 빌린 자전거로 바젤 시내를 이리저리 다녔다. 처음에는 그들의 자전거 문화를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유럽인들은 자전거를 자동차를 동일하게 생각한다. 일반 도로에서 다닐 때에 방향을 바꾸고 싶으면 그쪽의 손을 들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표시해야 하며, 또한 한국에서와 같이 차가 가는 방향과 반대로 주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나도 다시 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저질러야 한다.

집에 있는 내 자전거를 봤다. 안탄지 일 년은 된 것 같았다. 안장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고, 체인에는 윤활유가 말랐고, 또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있는 이 자전거를 일요일에는 바이크 숍에 가서 손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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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7-1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으셨군요.
글치 않아도 이번 주 심산 선생님이 이 책 자랑하시면서
어줍잖은 시나리오 붙들고 몇 년씩 썩어 좀비되지 말고
요즘엔 사적인 이야기가 대세니 인디라이팅에 관심 가져보라고 하시더군요.
울 선생님 솔직한게 너무 심한 것 같아요.ㅜ.ㅜ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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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생물학적 관점에서 대답해 보면 ‘자기 복제를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은행나무.2008년)의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는 ‘자기 복제’만 가지고 생물을 말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생명의 첫 번째 조건은 ‘자기복제’다. 자기복제를 하는 주제는 바로 유전자로, 이 책에서는 유전자 발견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록펠러 대학 교수였던 오즈월드 에이버리가 폐렴쌍구균을 연구하면서 균의 성질을 바꾸는 물질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는 이 물질을 유전자라고 부르지 않고, 형질전환물질로 불렀다. 에이버리의 유전자 발견은 20세기 최대의 발견이며 이어진 DNA 구조의 발견이나 DNA 암호 해독에 기본 바탕을 제공한 것이었다.

이어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생화학연구실의 어윈 샤가프는 “DNA가 단순한 문자열이 아니라 반드시 대칭구조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즉 DNA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문자 ACGT는 A-T, G-C가 서로 쌍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DNA는 두 가닥의 사슬로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이는 “두 가닥의 DNA 사슬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잃어버려도 다른 한쪽을 모체 삼아 쉽게 복구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운의 여성학자가 등장한다. 프랭클린은 물리화학을 전공해서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녀의 연구 주제는 X선으로 DNA 결정을 해독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DNA구조 발견에 거의 근접한 연구를 한다. 그러나 과실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프랭클린에게는 모리스 월킨스라는 상사가 있었다. 그는 프랭클린이 DNA를 X선으로 촬영한 사진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게 보여준다. 왓슨과 클릭은 프랭클린의 도움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제외한 세사람은 노벨상을 받는다. 그에 반해 프랭클린은 40세가 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만다. 어쩌면 과학적인 발견이나 이를 통해 유명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운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생명의 두 번째 조건을 ‘루돌프 쇤하이머는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 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생명은 지속적인 대사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이란 끊임없이 동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그런데 저자는 쇤하미어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명의 두 번째 조건인 ‘동적 평형’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동적인 평형은 문제가 생긴 단백질을 제거하고 재빨리 새로운 부품으로 대체하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생체는 내부에 고일 수 있는 잠재적인 폐기물을 시스템 밖으로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생명이란 항상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20세기는 물리학의 세기라고 했고,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의 생물학적 발전은 20세기의 여러 가지 생물학적 연구 업적으로 인한 것인데,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내용이 바로 20세기에 인류가 이루어낸 대단한 성과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독자들이 소설과 같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글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이는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교수이고, 또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오스월드 에이버리와 같은 학교인 록펠러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거쳤기에 아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생명이나 생물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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