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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센스 - 당신의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깨우는 역발상 비주얼 에세이
정철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세븐 센스>(황금가지.2008년)라는 제목을 봐서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감이 안 잡힌다. 영문제목을 보니 ‘The seventh sense'다. 7번째 감각이라는 말인데, 육감까지만 알고 있는 나에게 내용이 궁금해진다.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깨우는...‘이라고 적혀있는 책의 부제를 보니 조금은 알 듯도 하건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책을 펼치자 저자 소개는 “송강 정철 선생이 아니다. 영어로 유명한 정철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정카피라 부른다.”라고 나온다. 이제 책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카피라이터가 쓴 창조적인 감각 살리기’라는 것인데, 과연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얼른 본문을 펼쳐본다.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다. 제7감을 얻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뇌를 꺼내서 먼저를 털고, 살균한 후에 이 새로워진 뇌를 심장에 있는 자리에 놓으라고 한다. 뇌라는 이성을 상징하고 심장은 감성을 말하는 데, 그렇다면 7감을 얻는 방법은 이성을 없애고 감성만 남기라는 표현으로 보인다. 감성을 이성보다 우위에 놓으라는 말에 충분히 일리가 있기에 진도를 나가보도록 하자.
‘습관을 파(破)하기’라는 첫 장의 제목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몇 장을 넘기자 ‘양반’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지금 마시는 소주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세요,
지금 피우는 담배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세요,
....(중략)
지금 내뱉는 불만의 양을 반으로 줄여 보세요,
양을 반으로 줄인 사람은 양반 소리를 듣습니다.“
양을 반으로 줄이면 양반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은 정말 기발하기도 하고 읽는 나에게 슬며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피라이트’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내 안으로 다가온다.
‘느리게’라는 제목의 글은 “너무 빨리 걷는 사람은, 침을 뱉으면 자기 발등에 떨어진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끝난다. 한 문장으로 현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게 한다. 빠르다는 것이 마치 복음인양 추앙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제는 느림이나 쉼표가 정작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또 이 문장은 우리들의 아둔함에 내리는 경고문 같다.
세 번째 장의 제목은 ‘편견에 노(No)하기’다. 내용을 보니 노(No)는 노(怒)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보신탕’이란 제목의 글 역시 단 한 문장이다. “에펠탑이 누워서 낮잠을 잔다고 해도 우리는 너희를 간섭하지 않겠다.”와 에펠탑이 옆으로 누워있는 그림이 같이 있다. 정철은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의 보신탕에 대한 편견에 노(No)라고 외치고 있으면서, 또 점잖게 노(怒)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 장은 ‘긍정을 탐(耽)하기’다. 저자가 말하는 탐은 탐낼 탐(貪)이 아니라 즐길 탐 (眈)이다. ‘少’라는 제목의 글은 정말 작은 글씨로 써있어 눈이 좋은 사람들도 잘 볼 수 없을 정도다. 눈을 부릅뜨고 읽어나가자 맨 마지막 문장이 “나이는 1년에 한 살씩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포기할 때마다 한 살씩 먹는 것입니다.”라고 써있다. 정말 반짝하게 빛이 나는 문장이다.
‘두 여자 이야기’라는 글은 내가 몇 번을 읽어봤는지 모른다.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서울시장 후보를 했던 강금실에 대한 이야기다. 한 사람을 마치 두 명인 것처럼 대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쓴 글로, 이 글을 읽으니 강금실이 아주 매력적인 사람인 것으로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불편함도 있었고, 미소 짓기도 했고, 또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현란한 단어 활용 능력과 운과 율을 맞추는 능력 등 카피라이터의 정수를 봤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는 내게 ‘세븐 센스를 얻었나?’라고 자문해본다. 흐흐흐. 아니다 제7감은 결코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쉽게 배워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