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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버트런드 러셀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혔다는 이 인기 없는 에세이, 의 목차를 읽어내려가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생각이었다. '이 모든 게 러셀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지?' 러셀의 이 책은 정말 수많은 영역을 다루고 있다. 철학, 정치, 종교, 억압받는 자, 인류에게 해를 끼친 관념과 이득을 준 관념 등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러셀과 그다지 관련없을런지도 모른다. 서양철학사, 로 먹고 살만한 수입을 가지게 된 러셀, 여러 여성과 염문을 뿌렸던 러셀, 수학과 논리학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러셀. 결국 러셀이 살고 있는 경계는 그정도이다. 하지만 러셀에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니, 그러면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는 입이나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이야?' 물론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우리는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 등에 대해서 자유롭게 자신의 신념을 말할 권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러셀 본인이 강조하듯이) 그 신념이 그릇된 근거를 바탕을 하고 있거나, 설령 제대로 된 근거(라고 짐작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광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러셀 자신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이미 러셀이 가지고 있는 이름에서부터 오는 후광, 그리고 그 자신의 활동과 업적에서 오는 권위 등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사람들' 에게 정말 적절한 '제대로 된 근거(라고 짐작되는 것)'를 제공해준다. 이런 제대로 된 근거를 제공받은 사람은 탄탄한 이론을 세우게 된다. 러셀은 이 책에서 지적한다 : 단단한 이론을 제공받은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구체화시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헤겔 철학에 대한 러셀의 비판이다. 사실 나로서는 헤겔과 라캉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없기에, 정확히 말하면 근거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 둘에게 철학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지젝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헤겔 철학에 대한 러셀의 비판을 읽으면서 아주 좋은 비판이다,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기까지 했지만, 몇 몇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헤겔의 저작인 행성궤도론에 대한 러셀의 비야냥거림은 아주 적절하다. 하늘에 행성은 7개밖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헤겔의 행성궤도론에 대하여 러셀은 뒤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엮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의 치아의 개수와 남자의 치아 개수에 대하여 이론을 세웠다.) 이야기한다. 직접 눈을 뜨고 관찰했다면 그런 이론을 세우지는 못할텐데, 라고. 하지만 이 비야냥거림이 적절하다고 해서 헤겔 철학 전체를 비판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변증법에 대하여 너무나 명징한 문장을 가져와서 '자, 이게 헤겔철학의 정수임에 다름아니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변증법이 왜 엉터리인가? 러셀은 변증법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를 헤겔이 설명하지 못했다, 고 이야기하지만 러셀 본인도 왜 그게 마르크스가 얻은 '가장 터무니 없는 부분' 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러셀은 헤겔의 철학을 읽으면서 '뭔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라고 여겼었다가 수학철학에 대하여 엉터리인 내용을 언급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헤겔 철학이라는 독' 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한 사유를 말하는 사람이 일부가 거짓이라고 해서 전체를 두고 다 잘못된 거야, 라고 비판받아야 하는가? 나는 헤겔의 철학에 대하여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러셀 처럼 '무언가 심오한 뜻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조차도 해본적 없다. 하지만 이는 내가 어쩌면 충분히 깊게 헤겔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지 모른다. 내가 시간을 들여 충분히 헤겔 철학을 공부한다면, 그리고 그의 모든 저서를 깊게 분석한다면 어쩌면 정말 심오한 뜻이 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만약에 내가 헤겔 철학을 접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렇게 여기고 접근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경험론자이자 합리적인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러셀이 취했어야 하는 태도일런지도 모르겠다.

 

칸트에 대한 러셀의 말도 당혹스러운데, 물론 대학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분명히 공부했기에 나보다 더 많이 러셀이 칸트 등에 대하여 사유를 했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장은 보아넘기기 어렵다. '실천 이성에 따르면 의지는 자유로운 것이다. 이러저러한 행위를 할 능력이 내가 없다면 당신은 그런 행위를 해야 한다, 라는 명령이 그릇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수학적으로 집합을 그려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A집합이라고 하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건을 B집합이라고 두자. 그리고 자유의지를 C집합이라고 두면, 위 문장에 따르면 A집합은 B집합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 A집합과 C집합의 관계는? 이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능력만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 자체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니다. 칸트가 원하는 것은 정언 명령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자유의지의 표상이라고 우리가 깨닫는 것이다. 후회감, 등으로 말이다. 우리가 거짓말하면 후회를 느낀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가 그런 것을 느낀다는 것이 초월적 자유의 편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초월적 자유에서 칸트는 신 등의 개념을 가져온다. 러셀의 저런 사고과정에서도 신이 결국에 등장하기는 하겠지만 두 신에 이르는 길은 전혀 다르다. 물론 나는 러셀이 칸트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싶지는 않다.(인기작 러셀의 서양철학사, 를 보면 전혀 이해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쓰다보니 쉽게 풀어서 쓰게 되고 결국 오류가 생겼다고 믿고 싶다. 아니, 도리어 이게 러셀의 심정에 관한 더 정확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철학자들은 늘 서로 다른 관념을 가지고 싸운다. 그런 관념을 일반인들에게 적당히 끼워맞춰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일반인들에게 무슨 영향이 생기겠는가?' 

 

이런 러셀의 태도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또 아니다. 이 책애서 러셀은 이야기한다. 거칠게 말하면 먹고 살기도 바쁘고, 우리가 사는 이런 문화 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좁은 영역의 전문가들을 많이 배출하여야만 하지만, 그런 좁은 영역의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을 위하여 전반적인 정도의 수준의 교양은 필요하다, 라고 말이다. 원 글은 교사의 중요성(저런 전반적 수준의 교양을 갖추기 위하여 교사의 역할이 크다)에 관한 글이었지만, 이렇게 잘라서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일반인들은 넓게 어느 정도만 알면 된다. 굳이 깊게 파고들어서 명사와 형용사, 부사의 미묘한 차이에 따른 철학의 변천사 등을 알 필요가 있는가? 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것을 안다고 하여 그다지 도움되지는 않는다. 굳이 채우는 거라면 지적 허영정도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교환양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서양철학사, 서문에서 러셀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철학은 No man's land, 과학과 종교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 매우 애매하기도 하다. 러셀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로지 코믹스, 를 보면 러셀이 어떻게 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철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저 철학자는 저렇게 말해. 철학도 수학처럼 계산해서 어떤게 답이다, 라고 알려주면 좋을텐데, 라는 마음을 품고 있던 러셀은 라이프니츠를 만나게 된다. 라이프니츠가 그런 방법을 고안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라이프니츠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한 것 같다. 오죽하면 서양철학사,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겠는가 '라이프니츠를 제외하고는 다른 철학자들에 대하여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 라이프니츠를 '제외' 하고는.

 

특히 헤겔에 대하여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론이 논리적 기반인 변증법을 활용을 하고 있다는 점때문이리라. 논리적 기반을 바탕을 하는 이론은 러셀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마음뿐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사로잡는다.' 그것의 결과는? 광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관념, 역사가 변증법적인 논리를 따라 발전해나간다, 를 받아들인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적으로야 어떻든) 결국 소련을 낳았다. 그리고 소련이 어떤 국가였지는 굳이 여기서 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건 러셀이 라이프니츠와 그의 제자 불Bull이 그들이 고안한 방식으로 옳고 그름을 계산했었다면 당장에 그르다, 라고 나왔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풍선에 김을 빼는 소식이겠지만, 그런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러셀의 저런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러셀의 공격이 그의 권위를 빌려 '헤겔은 모조리 엉터리야, 칸트도 초등학교때나 배우던 것 (사실 이 부분에 러셀은 유년기의 도덕률, 이라고 표현하는데 러셀의 표현에 동의하기는 한다. 진, 선, 미는 우리가 초등학교때 배우잖는가.) 을 이야기하려고 하네, 우린 초등학교 나왔거든?' 라는 식으로 또다른 광신을 낳게 된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겠는가?

 

다른 분야에 대해서 러셀이 말한 것도 좀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다. 뭐, 러셀이야 미국이 지금 이런 나라가 되리라고는 몰랐을테니 -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쉽사리 자신의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한다 - 어느 정도 감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미국에 대하여 편향적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 정부를 만들자니. 그것도 미국을 중심으로 소련을 밀어내면서.  러셀은 당시에 드러낸 칼날만 날카롭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하는 중독인데도 말이다. 오늘날 미국의 헤게모니를 보면서 러셀은 그때 내가 정말 잘못생각했구나, 라고 여기지 않을까? (뒤에 역자가 친절하게 러셀은 '평생 후회했다' 라고 적어주었지만 말이다.) 핵무기는 정말 잔인한 무기이지만, 동시에 일종의 억지력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 옛날 개틀링 박사가 개틀링 건을 만들면서 '이 무기를 만들면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고 떨거야, 그럼 이제 전쟁은 안녕이겠지?' 라고 여겼던 순진한 꿈을, 이 핵무기가 이뤄준 것이다. 쓰면 모두가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억지력은 사람들을 이렇게 이끈다. 마치 핵무기가 없는 것 처럼 삶을 살아가도록 말이다. 그런 속담이 있지 않은가. 항상 가까이 있지만 모른체 하는 것은? 죽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삶을 살아가다보면 먹고 사는게 가장 큰 일이 된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먹고 사는 것을 무기로 하면 되겠구나, 라고. 그리고 이는 '자본' 의 이름으로 이를 무기화된다. 이것이 은밀한 독이 되는 것이다.

 

러셀의 경험주의적 태도는 배울만하다. 어떤 사례에 대하여 의견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의견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근거가 있는 한 이 의견이 다른 의견에 비하여 더 옳다, 라고 여겨야 된다. 하지만 러셀 본인이 이런 경험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에 이르면 사실 고개를 갸웃거릴수 밖에 없다. 이런 경험주의적 태도는 양비론과는 다르다. 그래서 비교적 명확한 입장을 취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명확한 입장이 다른 입장을 논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항상 본인의 의견이 틀릴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다른 입장이 그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이 부분이 더 옳다, 라고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신에 대하여 러셀이 언급하는 부분들을 보자. 수녀들은 목욕을 할 때 옷을 입고 목욕을 한다고 한다. 러셀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누가 본다고. 그러자 수녀들은 대답한다. 아니, 하나님이 보시잖아요? 그리고 러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수녀들은 신을 무슨 관음증 환자로 여기는 건가, 라고. 여기서 유추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당연히 신은 관음증 환자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수녀들은 왜 저렇게 목욕하는가? 이런 식으로 신이라는 관념을 인정하면 걸리는 관습이 너무 많다. 이러한 근거들을 종합해볼때, 신은 없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여기까지를 유추해냈지만, 만약에 경험론자라면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신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증거가 없으니 받아들이지못한다, 라는 말은 양날의 칼이다. 증거가 없으니 일축해버릴수도 없다.

 

이렇게 문제점들이 생기는 이유는 러셀 본인의 생각과 태도가 불일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 책 자체가 오랫동안 써왔던 글들을 묶어서 출판했다는 것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생각은 (근본적 심성이라던가, 신념, 사상은 바뀌지 않을지 모르나) 조금씩 깎여나간다. 어제는 신은 있다, 라고 외치던 사람이 오늘은 안 외치고, 그다음날은 신이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어제는 신이 없다, 라고 말하던 사람이 오늘은 신이 있을까? 라고 이야기하고 그 다음날은 신은 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깎여짐' 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어진 일종의 후천적 관념일 경우에 두드러진다. 갓 태어난 아이가 신에 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정치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자유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그런 의견들은 항상 '깎여질 수 있다' 는 말이다. 러셀의 초기 글에 비하여 이후의 글들은 약간씩 생각이 바뀐 것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았으니 오류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 책이 생긴 이유가 상업적이니 말이다. 서문에 대략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 '러셀의 책을 간행하던 출판사는 사실상 러셀이 무슨 주제에 관하여 쓰든 비평과 판매에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직 안 낸 글이 있다면 묶어서 책으로 만들자 하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인기 없는 에세이' 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책에서 다른 것을 주목할 것이 아니라 러셀의 핵심 그 자체를 노려야 한다. 그 외에는 모두 결국엔 깎일 이야기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러셀의 핵심은 무엇인가? 러셀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바뀌지 않을 그 신념, 사상, 심성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 책이 아니라 다른 책들을 참조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것은 명징하게도 이 책에 적혀있다. '눈 앞의 비교적 확실한 악을 내버려두고 미래의 비교적 불확실한 미덕을 택해서는 안된다.' 라는 말이다. 몇 번이고 재반복되며 이 책에 나타나는 저 주제가 바로 러셀 본인의 신념이자 절대로 깎여나가지 않을 심성이다. 그런데 어째서 러셀은 이런 신념을 품게 된 것일까? 그것은 러셀 본인의 심성과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자살을 하고 싶었던 러셀을 살게 해준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더 알고 싶다, 라는 심정때문이었다. 논리적이고 완전한 세계, 그 세계를 수학은 이루어주었고, 그에 힘입어 그는 수학 원리를 쓰고, 논리학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수학의 세계는 결국엔 불완전한 세계였었고, 사실일지도 혹은 거짓일지도 모르는 추측을 바탕으로 위태롭게 세워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체계였었다. 바로 여기서 러셀은 그가 원하는 완전한 세계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비교적 명확한 모순을 제거해나간다면 결국엔 무엇인가에 도착할거라고. 모든 것이 그와 '상관이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방향이 되어준 경구다. 생각해보면 러셀의 삶은 저 주제의 실천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전쟁이 위험하니 반전운동에 나선 것이다. 공산주의랍시고 사람을 굶겨죽이고 탄압하니까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기억하기 싫은 사람이라면 러셀의 삶이 어떻고, 사상이 어떻고 다 잊어도 좋다. 그러나 러셀이 남긴 이 말만은 가슴에 품기를 바란다 :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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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0-10 00:54   좋아요 0 | URL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이런 말을 붙이다니... 본래 제목에는 없는 말을 붙인 것인 듯해서 찾아보니 책 목록에 나와 있네요 본래 제목은 쉬워서 영어를 잘 모르는 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생각나는군요 나중을 위해 지금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눈감는 사람과 지금 바로 앞에 일어나는 나쁜 일을 없애려는 사람, 결국 처음 사람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막아야 한다로 돌아섭니다

러셀은 완전한 세계가 없다고 절망하지 않았군요 절망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희선

가연 2013-10-10 20:43   좋아요 0 | URL
ㅎㅎ 러셀이 정말 완전한 세계를 목표로 살아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 추측에 지나지 않죠, 풋. 하지만 러셀이 논리학 그리고 수학을 정말 좋아하였던 것은 사실이니깐.. 뭐랄까, 수학의 체계를 완전히 반석 위에 올릴 수 없다, 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눈을 돌려서 수학에서는 실패했지만 세상에서라도 모순을 줄여보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좀 앞뒤가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

러셀의 현대적 후계자라고 볼 수 있는 촘스키의 경우엔 러셀과 아인슈타인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모두 반전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아인슈타인은 편지를 써놓고 다시 연구실 안에서 물리학 연구에 뛰어들었고 러셀은 거리로 걸어나갔다고.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불멸의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던데.. 저야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않지만...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희선 2013-10-11 01:17   좋아요 0 | URL
수학은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군요 수학을 왜 좋아하는지를 말한 사람도 더 깊이 공부를 해나간다면 그것을 알게 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수학 체계, 이런 것은 잘 모르지만... 러셀 조금 재미있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반전운동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아인슈타인처럼 자기가 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앞에 나서서 무엇인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가연 2013-10-16 13:04   좋아요 0 | URL
ㅎㅎ 수학은 딱 맞아 떨어지지만 그 기반은 불안하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인슈타인을 지지하기에... 하하하하하하

마립간 2013-11-02 13:01   좋아요 0 | URL
위 가연님의 글을 처음 게시 때 읽기는 읽었는데, 리뷰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모르는 부분을 언급하셔서, 반론보다는 의문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떠오르네요. (몇 가지는 이미 고민하고 있던 것이구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제 서재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 때 링크하려 해서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가연 2013-11-04 18:06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당선작이라고 해서 벌써 이달의 당선작이 발표되었나, 했더니.. 신간평가단 당선작이군요. 굳이 양해하실필요 없이 나중에 의문점 생기셨을때 댓글달고 링크하셔도 되는데.. 다만 제가 양해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요즘 제 서재도 잘 안들어오는 편이기도 하고... 요즘 마음이 좀 심란하기도 하고.. 제가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도 않기에 답을 제대로 못해드릴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13-11-08 08:15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이 글에 직접 먼댓글로 링크하지 않고 본문에 주소로 인용을 표시했습니다. 내용상 반론?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 날 때 읽어주시고 내용상 오류가 있으면 면 지적해 주세요.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8일 글 말고 다음주에 2편 더 있습니다.)

가연 2013-11-11 19:34   좋아요 0 | URL
답변을 길게 썼습니다.. 졸지에 푸념이 섞여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