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몇 권의 책들을 읽었는데 정리할 기회가 없어서 미루고 있었다.

 

사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도 있고 이번에 다시 읽게 된 책도 있다. 신간평가단을 안하다보니 뭐랄까, 어깨에 힘이 많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뭐랄까, 훨씬 가볍게 책들에 대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사실 나는 리뷰를 쓸 때 확 끌리게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서는 리뷰를 아예 안쓰는 편이다. 그러니까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별점이 만점이 아니면 리뷰를 원래 아예 안쓰는 편이다. 그러나 신간평가단을 할 때에는, 그리고 사실 여기 있는 리뷰의 대부분이 신간평가단 리뷰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별 수 없이 별점을 매기느라 고심을 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상당히 힘을 꽉 주면서 썼던 리뷰들도 몇 개 된다. 원래 내가 남에게 나쁜 소리는 잘 안한다, 풋.

 

그렇게 별점이 만점이 아닌 책들을 리뷰하면서 생각한 건데, 분명 서평과 리뷰는 좀 다른 면이 있다고 본다. 리뷰에는 어떤 자신의 감상이나 주관적인 느낌을,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느꼈다, 완전 감동이다, 등등을 적는 것도 괜찮지만, 서평에서는 약간 그런 면을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리뷰에는 일종의 붙여넣기,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 책의 누구누구는 이런 말을 했다, 라는 식으로 쓸 수 있겠지만, 서평에서는 그런 부분은 피해야 되지 않을까. 리뷰에서는 나는 이 책이 완전 좋아, 반론은 허용하지 않아, 라고 쓸 수도 있겠지만, 서평에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라고 마무리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내가 지금껏 쓴 글들은 저런 리뷰와 서평들이 뒤섞인 글들이라고 밖에 할 수는 없다. 어떤 글은 서평이지만 어떤 글은 리뷰다. 굳이 예시를 들지는 않을 것이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둘 중에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또 곤란한 일이다. 물론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리뷰는 있다. 과학이나 인문계열의 책을 예로 들자면 바로 밑에 내가 쓴 '얽힘의 시대' 에 대한 것 처럼 어떤 개념 설명으로 메우는 리뷰들 말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이 책의 어느 사상가는 이렇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밑에 사상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형식으로 나가는 리뷰들도 있다. 소설로 치면 주인공이 뭘했는지 끝까지 스토리를 다 누설하는 리뷰나 다름없다. 이런 리뷰들은 본인 스스로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 리뷰다. 그래서 바람직한 리뷰는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만족해서 그렇게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래의 얽힘의 시대, 리뷰를 예로 들자면, 사실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는 아래의 리뷰에 매우 만족한다. 결국에는 서로간의 우열은 없고 글을 쓰는 본인이 만족해야 되는 거다.

 

그러나 나쁜 리뷰나 서평은 있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이것은 매우 나쁜 리뷰며, 매우 나쁜 서평이다. 그럴 거라면 그냥 책을 중간에 덮고 스스로의 생각을 적는게 훨씬 낫다. 내가 쓴 단어. 내가 쓴 문장, 내가 쓴 개념이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인가? 나로서는 매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사실 개인적으로는 리뷰든 서평이든 잘 안쓰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내 허영이 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정말 많은 것을 모르는구나, 아는 게 정말 별로 없구나, 라는 것을 안다. 넷 서핑을 하며 리뷰를 읽다보면 쓴 웃음이 나오는 리뷰들도 많고, 잘 모르는 개념에 대해서 그저 붙여넣은 수준으로 쓴 글들도 많다. 그럴 때면 나는 적어도 이 사람들의 부류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내 허영심이다.

 

허영심이라는 말을 쓴 것처럼, 사실 이런 생각을(그러니까 남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가지는 것 자체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이런 허영조차도 없다면 계속 독서를 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을때마다 나는 '어라, 내가 이것도 몰랐어?', '아,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야 했었다구', '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이 책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뭐지?' 등등의 생각에 사로잡혀 그야말로 나락에 빠지게 된다. 그런 나락과 절망 속에서 날카로운 사유를 가진 책은 쉽사리 구원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면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땅을 파고 어딘가 숨고 싶을 정도가 되버린다. 이럴 때 넷 서핑을 하면서, 에휴, 그래도 저 사람들보다는 내가 그래도 낫구나, 하는 생각을 약간씩 가지는 것이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진다. 저들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고 있구나, 그래도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쌓아올리면 돼, 라고.

 

 

 

레 미제라블.

최근 영화로 정말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다. 사실 나는 장발장, 이라는 청소년용 축약본을 읽은 게 전부이지만, 이번에 영화 개봉을 기회로 한 번 읽어보았다. 물론 지금껏 영화는 보러가지 못했다. 굳이 두 책을 넣은 까닭은, 왼쪽의 민음사판은 1, 2권을 읽었고, 오른쪽의 더 클래식판으로는 5권을 다 읽었기 때문이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른쪽의 더 클래식 출판사에서 번역한 책들을 여러권 읽어봤는데, 아래에서도 설명하겠지만 의외로 읽을 만했다. 이건 매우 호불호가 갈릴 일이겠지만,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원서의 충실함을 느끼려고 한다면 분명 민음사판이나 다른 출판사의 판본이 나을 것이다.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보석의 원석이 있다. 민음사나 다른 출판사의 경우에는 이 원석을 적당히 갈아서 광택도 내고, 캐럿수도 높게 유지했으나, 더 클래식의 경우에는 너무 갈아서 광택만 내었다, 라고. 광택은 있을지 모르나 원석에 비하면 캐럿 수가 너무 줄어버린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니 줄이겠다. 다만 고백하자면 장발장과 같은 사람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겠지만, 저렇게 살 수는 없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솔직히 말해서 이 출판사가 깜찍한 짓을 한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문판에 번역까지 제공하고, 게다가 가격도 싸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1+1이면 이득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는 알았달까. 나로서는 사실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출판사에 관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사실 상당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아마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영어 단어 정리가 되어있는 영문판을 함께 제공할 이유가 없다.) 다만 무작정 비판하기에 좀 저어되는 부분은 읽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오히려 술술 잘읽힌다, 라는 부분이려나. (원문과 차이가 많이 날지라도 적어도 쉽게 읽힌다는 것은 강점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다르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쉽게 잘 읽히는 부분에 점수를 주는 편이다. 아마 내가 다른 출판사의 책들을 모아서 같이 읽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한 번역본들 중 단 한 권만 추천하라면 미안하지만 이 출판사의 책은 아닐 것이다.) 그만하고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구절은 성경의 이 구절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 책의 주인공은 저 구절 그대로 온 세상을 얻고 자신의 영혼을 잃었다. 그리고 자신이 영혼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파괴했다.

 

 

 

백년 동안의 고독.

아무래도 책에 관한 이야기보다 번역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 하게 될 것 같다. 원래 내가 읽었던 책은 민음사판으로 나온 백년의 고독, 이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읽게 된 책이 왼쪽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인데, 나로서는 원문과 일일이 대조할 어학 실력이 없기에 번역본 두권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책이 더 쉽게 읽혔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왼쪽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의 손을 더 들어주고 싶다. 민음사의 판형이 좀 딱딱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준다면 문학사상사의 판형은 물흐르듯이 한번 잡으면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듯 하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다 : 장하준이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이 책을 추천했었다. 매년 다시 읽는다고 했던가. 그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소설에 별도의 가계도가 첨부될 정도로 구성이 얽혀있다.) 왜 그럴까, 라고 고민했었는데 (그당시 읽고 있던 민음사판에 끝도 없이 나오는 인물들에 좀 질렸던 것이 컸다.) 나중에 다 읽고나니 그 모든 장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진실로 마술같은 책이다. 혹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다섯 시간 정도 떼어놓고 끝까지 한 번에 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이 어느 순간 폭풍처럼 휘말려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그런 기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식의 역사.

겨우 다 읽었다. 일전에 70퍼센트 정도만 읽고 놓아둔 상태로 있었는데, 뒤의 세 장 읽기가 앞의 열 몇 장을 읽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70퍼센트만 읽었던 나로서는 이 책에 후한 평가를 줬었지만 (이전에 쓴 페이퍼 중 이 책에 호의를 보인 페이퍼가 있다.) 뒤의 30퍼센트까지 읽고 쓰게 된 이 페이퍼에는 무작정 호의를 보일 수가 없다. 이 책을 구입한다면 앞의 70퍼센트만 읽고 그냥 놓아두기를 바란다. 뒤의 과학에 관한 부분은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압권(나쁜 의미로)인 것은 미래의 백 년을 예측한 마지막 장인데, 사이언스 픽션작품을 너무 많이 읽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저자도 마지막에다가 솔직히 자신이 사이언스 픽션작품들을 많이 참고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별로 잘못된 점이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저자가 미래전문가도 아니니 굳이 엄격하게 기준을 들이댈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쎄, 적어도 책을 출판한다면 최소한 근거가 사이언스 픽션보다는 더 나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책은 1960년대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앞부분의 역사에 관한 부분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대해서 쓰여진 부분은 뭐랄까, 약간 편향된 시각이 있는 듯 하다. 그 부분은 다른 책들을 읽으며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

 

 

 

고대문명교류사

아직 다 읽지 못해서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책이다. (적어도 내가 읽고 있는 부분까지는) 저자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내 기억으로 정수일, 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남파간첩출신으로 알고 있다. 세간에 원래 알려진 이름은 무함마드 깐수. 필리핀 국적의 레바논 사람으로 연세대를 거쳐 단국대 사학과정에 들어갔고, 문명사 부분의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보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순수 100퍼센트 한국인이었단다. 조선족 출신으로 매우 뛰어난 엘리트였는데 간첩으로 파견되면서 정수일이라는 이름 대신 깐수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얼마나 철저했냐면 잠꼬대마저도 아랍어로 했다던가. 손익계산을 해보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수일이 북한으로 보낸 자료들은 사실 크게 가치가 없는 정보들이었고, 남한 입장에서는 문명연구에 권위자 한 명을 얻게 된 것이니 사실 남한으로서는 이득일려나. 이 책은 감옥에 갇혀 있을때 쓴 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문명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교류란 어떤 의미인가, 등의 정의를 자료를 가지고 꼼꼼하게 정의하고는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참고서 광고같지만) 기초부터 심화된 부분까지를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기서부터는 여담인데,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은 단순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책이 비싸니 좀 싸게 샀으면 좋겠다. 그래서 도서정가제가 강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측의 의견이 일리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도서정가제가 강화되기 전에 할인등을 하는 책들 중에서 양서들을 미리 구입해놓을 생각이다. 게임에서도 사기캐릭터가 하향패치된다는 선고를 받으면 패치되기 전에 그 캐릭터로 게임을 하는 것이 이득이니 말이다.

 

여러번 말하게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상당한 실용주의자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 책에 어떤 내용이 실려있느냐, 이며 그 책의 내용을 내가 아는가, 이다. 인터넷으로도 동일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면 굳이 책을 구입할 이유가 없고, 고전의 경우에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활용하는 편이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면 굳이 문학작품들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원문이 인터넷의 바다에 널려있는데 무엇때문에 번역본을 (그것도 번역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면서) 읽겠는가,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는 로마제국 쇠망사도 올라와 있다.) 예를 들어서 나의 경우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을 영어로 읽었다. 물론 읽는 속도야 느려지지만 그게 대수인가?

 

도서정가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도서정가제는 아무리 알라딘에서 반대하더라도 (알라딘 혼자 반대하는한)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게다가 나 또한 도서정가제 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의견들에서 (논리적 연결은 사실 빈약한 부분이 있지만) 큰 문제점을 찾지 못했으니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뭐라고 말해도 사실 내가 심정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그저 책값이 비싸니 싸게 사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으니 대의적 측면에서는 솔직히 찬성측 의견에 밀린다. 그렇다면 그냥 정가제 강화되기 전에 양서들을 구입해놓는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실용적인 내 결론과 달리 심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신간에 대해서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것은 옳지만 그걸 구간(현행으로는 1년 6개월 지난 책들)에까지 강화시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인 것 같다. 신간에 대해서야 값을 그대로 받는 것은 이해가 가고, 장기적으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출간된지 오래된 책들도 제값을 모두 주고 판다? 과연 그 책들을 살 사람들이 있을까? 안그래도 인문계열의 독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이 책을 생각해보자. 이안 커쇼의 히틀러 1,2 권의 경우에는 합쳐서 11만원에 달한다. 지금은 할인이 좀 되어 10만원 남짓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정가 그대로 판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살 사람이 있을까? 전공자가 아니라면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 히틀러 평전은 정말 뛰어난 책이다. 번역도 매우 뛰어나고 제책도 매우 잘되어있는 책이다. 2차세계대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빌려서라도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11만원씩이나 주고 구입하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저 책 히틀러, 가 11만원의 값어치를 못한다는 말인가? 글쎄, 그렇지는 않다. 전공자들에게는 그 값어치 이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니며 단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11만원으로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11만원이라는 가격을 본다면 우선순위를 생각할 것이다. 이 돈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을텐데, 라고 말이다. 당장에 나에게 도움이 안될텐데 이 돈으로 그냥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게 낫지 않을까? 차라리 옷을 사는게 낫지 않을까? 나로서는 옷에 거의 관심도 없고 대충 입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멋진 옷이 책보다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히틀러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이 무슨 도움이 될까? 사람들에게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흥미롭게 듣다가 이렇게 묻는다.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 그리고 여기에 대한 답은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삶의 방향이니 어쩌니 등과 같은 말을 하기란 쉽다. 하지만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결국에는 전공자들이나 구입하는 책이 될 것이다, 히틀러, 와 같은 책들은.

 

그런데 우습게도 우리는 히틀러, 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찾다보면 위의 히틀러 1,2권에는 못미칠지언정 적어도 5만원에 해당하는 정보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당신 스스로가 찾아내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면. 그리고 인터넷의 정보는 계속 재생산될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는 11만원의 이안 커쇼의 평전과는 적어도 6만원 가량의 정보는 빠진 상태로 계속 재생산될 것이고, 이윽고 사람들은 이정도의 정보로도 충분해, 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결국 깊지 않은 정보만 일반적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저런 책들을 구입하며 읽게 될 전공자들은 대중과 유리될 것이다, 혹은 자신들의 틀에 갇히게 될 것이다. 쉽게하려고 히틀러, 를 예로 들었지만 히틀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렇게 책읽는 사람들 중 혹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혹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게 더 많으니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등을 떠밀어버릴것이다.

 

비약이 섞인 이야기이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당황스럽다. 실제로 현재도 이런 일들이 진행형이다. 특히 한국어권 위키는 내용이 너무 축약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 뿐만이 아니다. 블로그, 질문과 답변들 등에서 보이는 대답이 여러 곳에 붙여넣기 된 경우가 흔하게 보인다. 왜? 인터넷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답변이 바로 그것이거든.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안그래도 인터넷 검색해서 다 나오는데 뭐하러 십만원씩이나 주고 책을 사서 읽는가? 책을 왜 읽는데? 그 돈으로 옷을 사입는게 낫지 않아? 먹는것을 잘 먹는게 낫지 않아? 책 많이 읽는다고 자랑할 속셈인가? 책 많이 읽었다고 해서 무슨 인격이 고매해진 것도 아닌 주제에 아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얕은 지식을 가진 주제에 말이다. 그리고 모르는 부분, 그러니까 앞서 말한 6만원짜리 정보를 말하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데?' 그리고 실제로 소용이 없다.

 

아마 구간 할인마저 폐지한다면 저런 현상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으아, 그 비싼 책을 뭐하러 살까? 가격이라도 좀 할인된다면, 어라? 지적 허영이라도 부려야지 하는 마음에서 구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놓다가 너무 심심해서 한 장 들쳐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격이 5년이 지나도 십만원이라면 다른 우선순위에 계속 밀리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이렇지 않을까? 독서를 통해서 교양을 쌓니 어쩌니 하지만 실제로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인격이 좋아질 거라고는 난 절대 생각못한다. 차라리 불경이나 성경, 코란을 100번 읽는게 훨씬 교양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에는 책을 안읽는게 가장 큰 문제다. 도서정가제를 강화한다면 신규독자들을 생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구간의 기간을 1년 6개월로 정해진 것을 2년 이상으로 잡고, 구간 할인은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좋겠다, 는게 내 바람이다.

 

나 또한 이런 저런 책들을 그럭저럭 읽는 편이다. 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절망하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지? 나는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구나, 라고. 그리고 사실 소용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독서의 필요를 찾는다면 다만 그저 흥미롭기 때문에 읽을 뿐이다. 아마 나는 독서계에서는 별난 독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딱히 정해진 분야가 없이 여간한 책들의 여간한 장르는 다 읽는 편이다. 이는 독서가 사실은 내 삶의 중심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인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도서정가제가 독서계에서나 이슈지 사실 누가 관심 가지는 사람이 있는가? 솔직히 대부분은 책을 잘 안읽지 않는가. 대부분은 삶의 중심에서 독서가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서계에서 중요한 것이라면 그런사람들 중에서 신규독자를 만들어내는 것일텐데 어차피 옷 십만원 어치 살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옷 십만원 어치를 살 것이고, 어차피 책 안 살 사람들은 앞으로도 안살것이다..... 특별할인, 오늘만 반값, 이런 문구라도 붙지 않으면, (가격경쟁력이 어느정도로 사람들을 유인하는지는 위의 더클래식 출판사의 책들의 세일즈포인트를 본다면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사실 번역의 완성도 이런것보다도 더 책을 읽게만드는 것은 슬프게도 가격이다.) 혹은 저번의 정의 열풍처럼 열풍이라도 불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물어보라. 아니, 옷을 십만원 어치 사는 것은 안아까우면서 책을 십만원 어치 사는 것은 아깝다고? 옷 십만원 어치는 당장 내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거든.. 소개팅 나갈 때 입고 나갈 수 있거든. 책은..? 소개팅할때 히틀러, 라도 들고 나갈거야? 풋. 뭐, 결혼했다고? 쳇.

 

 

 

하나만 더, 전 알바가 아닙니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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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28 13:38   좋아요 0 | URL
저는 욱, 해가지고 말이지요.

네, 나 알바입니다, 어쩔래요.

이런 글을 쓸 뻔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꾹, 참았어요. 욱, 했다면 꾹, 참을수도 있어야 되는 법.. (응?)
(아, 진짜 알바라는건 아니에요. 노파심에..orz)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저는 로쟈님의 페이퍼를 읽고 이게 좋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도서정가제' 라면 쓰여진 가격 그대로를 받아야 정가제 아닌가요? 그러니 신간에 대해서는 그 정가 그대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대로 받되,
구간에 대해서라면 할인을 적용하자는거죠. 가연님의 의견에 덧붙이자면,
팔리지 않는 구간들을 창고에 쌓아두는 것만큼 무용한게 어디있나 싶은거죠. 그걸 가격을 내려서라도 소비자한테 공급하면, 공간낭비도 줄일 수 있을것이고 재고로 쌓아두지 않아도 될 것이며, 소비자는 망설이던 책에 대해 기꺼이 소비를 하고 읽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요. 책은 독자에게 읽힐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생기죠.


아, 그리고, ㅎㅎㅎㅎ
저는 '서평' 이든 '리뷰'이든 그게 너무 어려워서, 에라이,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으니 걍 내 마음대로 페이퍼나 쓰자, 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확실히 페이퍼는 쓰기 쉬워요. 막힘이 없죠. 그런데 리뷰쓰기를 클릭하는 순간 멘탈이 붕괴되고 말아요. orz

가연 2013-01-28 20:26   좋아요 0 | URL
사실 이 글은 도서정가제 부분은 빼고 쓰여질 예정이었답니다, 풋. 로쟈님의 글은 저도 읽었는데, 사실 그 글이 있는데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알바' 때문에 기분이 솔직히 좋지 않아서 뒤에 덧붙이게 되더군요, 풋. 알라딘 유저 중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나, 적어도 반대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왜.. 선을 아예 그어버리려고 하는지 좀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알바 다수들, 이라는 표현에서 '다수들' 이라는 말로 다 빠져나갈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락방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구간 할인은 용인해달라, 라는 말도 나 책 싸게 사보고 싶소, 라는 말에서 크게 벗어난 얘기도 아닌 것 같아서, 풋.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너 책 싸게 사고 싶은거잖아?' 라 묻는다면 그런 비판을 벗어날 길이 없네요, 하하.) 결국에는 이기적인 입장의 글처럼 보일 것 같네요.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심정적 생각은 모두 지우고 실용적으로 도서정가제 강화하기 전에 빨리 괜찮은 책들을 모아두어야겠다능... 하지만 신간에는 도서정가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되 구간에는 할인을 허용한다는 제안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솔직히 해봅니다. (물론 구간의 기간을 2년 이상으로 잡아야겠지만)

ㅎ저렇게 써놓긴 했지만 저건 제 개념일 뿐이구.. 다른 분들은 각자가 서평에 또다른 개념들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결국 자기가 읽기에 재미있어야 되지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줄 독자는 결국 자기 자신일테니, 풋.

맥거핀 2013-01-28 14:39   좋아요 0 | URL
계속 살까말까 하고 있었는데 이안 커쇼의 <히틀러> 1,2권을 이 글을 보고 질렀어요. 교양인 출판사에 들어가보니 리퍼브 도서로 이 책을 싸게 팔길래, 4만4천원에.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말씀하신대로 그래도 살 수 있을 때 사둬야할 것 같아서..여러모로요.

가연 2013-01-28 20:12   좋아요 0 | URL
ㅎ 구입할 수 있을때 사둬야죠 뭐.. 음.. 사실 구간까지 엄격하게 적용하면 약간 염려되는게 예를들면 최근에 재출간된 비트겐슈타인 평전, 의 경우 이전의 판본이 품절되었었는데, 중고시장에서 한권당 가격이 7만원을 호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서관에서 읽고는 중고로 구해볼까 하다가 가격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이건 미친짓이다, 라는 생각에 결국 구입을 안했는데, 카자르 사전(최근 하자르 사전, 으로 재출간된)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었지요. 뭐, 사실 중고의 가격을 책정하는 거야 판매자 마음이긴 하지만, 구간할인이 있을때도 저렇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었는데 구간 할인이 인정안되는 상태에서 어느 책이 품절이 되었다, 와 비슷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뭐랄까, 중고로 품절도서를 팔 때 가격을 책정하는 심리적 저항이 상당히 낮아질 것 같아요, 풋. 5만원짜리를 그냥 15만원에 판다거나..(2만5천원으로 구할 수 있었던 녀석을 15만원으로 올리는 것 보다는 쉽게 올릴거라는 것은 확신하겠네요.) 그렇다면 도서정가제가 강화되기전 열심히 책을 구입해서 책테크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 푸하하, 책테크 이야기는 당연히 농담이구요, 모든 중고도서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근거가 빈약하기도 하고.. 어렴풋한 예측이니 확신은 없지만...

Shining 2013-01-29 11:38   좋아요 0 | URL
하하. 뭔가 속이 시원한 느낌이네요. 저는 혼자서 읽은 책 중에 엄청 좋았던, 혹은 자꾸 뭔가를 말하게 만드는 책만 리뷰에 쓰거든요. 그건 제가 잘 알아서라기보단 하고 싶었던 말이 많기 때문에, 겠죠. 그래서 제 리뷰는 별점들이 대개 좋은 편이에요. 왜냐면 기본적으로 좋았던, 그러니까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많다는 것에 별점을 높이 주니까요(웃음). 그렇지만 신간평가단 하면서, 아이구, 첫 책부터 막혀서 꽤나 고생했습니다ㅠ 저는 이 책에 대해 쓰기에 적절한 독자가 아닙니다, 라는 고해문까지ㅠ 어려워요 정말. 아니 어렵다기보단 복잡한 걸까요.

제가 요즘 책을 자꾸 구입하게 되는건 어쩌면 무의식중에 가연님 말씀과 같은 생각이 있어서일까요?ㅎㅎ 잘 읽고 갑니다 :)

가연 2013-01-29 22:19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샤이닝님과는 신간평가단에서 인연이 좀 있네요. 다른 분야긴 하지만 예전에 책이 한 번 잘못배송되어서 샤이닝님과 교환을 했던것 같네요, 풋. 평가단하면서 가장 힘들었던게 별을 몇 개를 주는게 옳을지.. 였던 것 같네요. 은근히 신경많이쓰이니까..ㅎ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음,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샤이닝님이나 저같은 경우는(은근슬쩍 자신을 끼워넣는다) 그만큼 고민을 한다는 이야기니까, 푸하하. 좋게 좋게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독자라고 자부해도 될지도 모르겠네요, 풋. 적절한 리뷰어일지는 모르겠지만,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