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나면 대기의 층이 한 뼘쯤 두터워지는 느낌입니다. 텁텁하고 두터워진 대기층으로 인해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지게 마련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그 간절한 소음을 뒤로한 채 점차 뜨거워지는 여름 햇살의 열기는 두꺼운 대기층을 뚫고 지상의 모든 생물을 향해 "견뎌라. 이 고통을 견디는 자만이 곧 다가올 가을의 신선한 햇살을 누릴 자격이 주어지리니."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어느새 8월입니다. 경남의 어느 지역은 한낮 기온이 41도를 넘었다지요. 극한의 더위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도 하고, 이웃의 죄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국에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와 결핍으로 얼룩진 앙상한 팔뚝과 빈손뿐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해 작은 양산의 그늘 속으로 숨어보지만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글이글 불타는 한낮의 도로는 모자이크를 닮은 아지랑이로 인해 모든 피사체가 흔들리고 있는 듯합니다. 여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태양의 열기 속에서 자신의 크고 작은 죄가 흔적도 없이 불타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낮 기온이 아무리 뜨거워도 우리에게는 일말의 '죄 사함'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늦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서희 작가의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를 읽고 있습니다. 아스라이 멀어졌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눈앞에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잠시 행복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아픔을 간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보내는 태도에 있습니다. 안나와 마니를 통해 우리가 치유받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녀들은 힘든 일과 슬픔을 피하지 않고 마주합니다. 솔직한 태도로 내면의 아픔에 마주 서는 것입니다."  (p.68 조앤 G. 로빈슨의 '거기 마니가 있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도서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베란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 화단에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무궁화는 시골집 담장 밑에 피어서 진드기 떼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곤 했던 까닭에 언제나 지저분한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궁화에 진드기가 달라붙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꽃이라는 상징성이나 주목도는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된 게 사실입니다. 베란다 창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두텁고 답답한 대기층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아무래도 책을 반납하는 일은 내일로 미뤄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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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김인철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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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을 읽을 때도 그랬다. 탐사 기자 이기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 2019년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파헤칠 탐사보도팀이 결성되면서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변형 바이러스라 할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성행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능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가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로서의 '탐사보도'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엘리트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속한 기자들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인 기준과 아구스틴은 팬데믹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간다.


"그는 이제 바이러스 팬데믹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닥쳐올 새로운 팬데믹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2019년 코로나19 사태의 숨겨진 진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품게 된 것이다."  (p.42)


정유정의 소설 <28>의 공간적 배경은 화양시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자 화양시는 봉쇄된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소설 <28>에도 소방대원의 이름 역시 기준이었다. 소설 <28>은 팬데믹 이전(2013년)에 출간된 소설이었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예상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에도 포함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는 첫 번째 '물리학 실험의 실패', 두 번째 '화산폭발', 세 번째 '빙하기 또는 태양 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 네 번째 '외계인의 침략', 다섯 번째 '컴퓨터의 지배', 여섯 번째 '소행성 충돌', 일곱 번째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바이러스와 연관), 여덟 번째 '별의 대규모 폭발', 아홉 번째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광기 어린 도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은 따로 있었다. 벡터로 강제 개조된 인공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잃어버린 복제 능력을 되찾거나, 대자연의 야생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전대미문의 괴질을 퍼뜨릴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임상에 동원된 피험자의 체내에서조차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의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제창과 자오융의 흐려진 동공에 그런 과학적 경고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들의 영혼은 오직 빛의 속도로 임상을 주파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틀어쥐겠다는 검은 광기로만 펄떡이고 있었다."  (p.312)


탐사 기자 이기준과 그의 동료 아구스틴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밝고 희망에 찬 내용이 아니었다. 부를 향한 거대 제약회사의 편법과 은폐, 권력의 동조와 과학의 오만 등이 섞여 세상은 다시 M-바이러스라는 공포 속으로 걷잡을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M-바이러스는 인간의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나 거짓말까지 겨냥한다. 종국에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심판하는 상황.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준마저 M-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


"그들은 서둘러 기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당도한 민희가 초인종을 거듭 눌렀으나, 문 너머에서는 어떠한 생의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구스틴이 기준의 현관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간신히 닫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그들의 시야에, 소파 곁에 처참히 허물어져 있는 기준의 형상이 들어왔다."  (p.545)


여름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그 열기가 무섭기만 하다. 이런 열기라면 웬만한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으로 며칠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무섭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도 어쩌면 인간의 지적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인류의 생존은 그렇게 조심조심 지켜져 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개인의 건강 역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 건강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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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허방을 짚고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급하게 서둘렀던 탓입니다. 경사가 진 산 중턱 비탈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는 마침 관리가 잘 된 가족묘 두 기가 서 있는데 묘를 관리하는 듯한 노인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 묘 주변의 잡초를 뽑고, 파인 곳을 돋우고, 봉분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등이 굽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면서 소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묘 앞의 작은 공터에 호박을 심어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 산을 올라 호박 구덩이 물을 주는 모습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노인은 새벽부터 산에 올라 묘를 관리하다가 '어이쿠!' 하고 넘어질 듯하다가 멀쩡히 일어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넘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말입니다. 노인의 미소 너머로 매미가 '맴맴' 기를 쓰고 울고 있었고,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묘 주변에 쪼그려 앉은 채 열심히 잡초를 뽑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지금 잡초 뽑기를 핑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몰래 하곤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하거나 불필요한 거부와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무던히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또 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산을 오가며 마주치는 저 노인처럼 말입니다.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불필요한 여자>를 읽고 있습니다. 요르단 암만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섯 편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썼고, 화가로도 활동하면서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에 나를 맡겼다.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이다. 나는 그 안에서 놀고, 요새와 성을 쌓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놀이터 바깥의 세상이다. 나는 눈앞의 세상에  온순하게, 그러나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적응해왔다. 모래의 비유를 변형해 보자면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 현실 세상은 나의 모래시계이다. 모래는 한 톨 한 톨 빠져나간다.   문학은 내게 삶을 주고, 삶은 나를 죽인다."  (p.16)


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많아지는 요즘, 주식 시세마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표정은 울상입니다. 현 정부가 잘못한 일은 주식의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대다수에게 주식 투자를 알게 모르게 권유하고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주가가 이렇게 하락하였을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알지 못한 채 마냥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투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묻지마 투자'에 뛰어드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결과는 냉혹하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주가 하락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겪게 될 것입니다. 주식 투자는 사실 원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투자 방식임을 이번 기회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온종일 주식 시세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는 게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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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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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내가 그와의 어떤 추억이나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몇몇은 나 역시 읽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여 갑자기 그의 열혈팬이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웬만한 작가들이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소설을 써왔던 까닭에 서점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언제나 그가 쓴 새로운 소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열혈 독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을 몇십 년 지켜보는 동안 나에게도 그의 이름이 친숙하거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작가였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조금 느닷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가(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전공자이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쓴 김신지 작가 역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해서 작가로 데뷔한 경우이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김신지 작가의 글은 적당히 신선한 반면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p.57~p.58)


우리는 종종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삶은 이러이러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보고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각자에게 펼쳐질 삶의 전개를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들 각자의 마지막이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평안함 속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 넘고 있는 삶의 고비들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여유를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문제는 '생산성'이라고(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  (p.163~p.164)


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에서 작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작가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를 살아가는, 전보다 헐거워진 자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작가에게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계절이 오가는 풍경들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와 그 풍경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하나의 문장 속에서 요렇게 저렇게 꾸며 볼 수 있는 여유,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말 속에 깃든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는 여유는 모두 작가가 누리는 헐거워진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사람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해준 적 있다. 모든 흉터는 사실 훈장인 걸 아느냐고. 이 일을 겪어냈다는, 그 후로 여기까지 살아냈다는 흔적이니까. 어린 내게 '흉터'가 방향을 일러줬다는 건, 그러고 보면 삶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 중 하나 같기도 하다."  (p.291)


나는 오늘도 텁텁한 무더위를 견뎌낸 하루의 시간에 길게 밑줄을 긋는다. 먼 훗날 내가 떠올리게 될 오늘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오늘과 사뭇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힘들게 밑줄을 그었던 그 가상한 노력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7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 창밖의 모든 소음이 말매미 울음소리에 묻힌다. 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등을 타고 흐르는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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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서너 살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뜻일 테지요.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원활히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언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배우고, 같은 언어로 쓰인 책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덕목을 갖추는 것일 테지요.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가족 공동체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통하여 어린 나이부터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언어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얼빠진 어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 얼빠진 어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성인들 중에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진 듯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동영상 쇼츠에 몰입하는 것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겠지요. 직장에서도 뒷귀가 어두운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꽤나 어렵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물며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이나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권의 인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그는 아마도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 소위 정치비평가를 자처하는 방송인이나 정치인들 중 뒷귀가 어두운 사람을 너무 자주 목격하는 까닭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간결한 언어로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소위 정치평론가라고 하는 작자들 대부분은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거나 엉뚱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치원만 제대로 나왔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은 없는 듯 보였는데 성인도 훌쩍 지나 장년이나 노년에 접어드는 그들이 그렇게 쉬운 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라면 반드시 ~~한다'라는 조건문에서 앞의 조건이 완성되어야 뒤의 문장이 성립하는 게 당연한데 이마저도 무시한 채 뒤의 문장만 따로 떼어 인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과 같은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들인지, 만약 읽는다면 그 책도 저런 식으로 엉뚱한 해석을 동반하여 읽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문학평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던 김현(본명 김광남) 작가입니다.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의 381일치의 일기이자 유고로 남겨진 그의 저서 <행복한 책읽기>에서 작가는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적 언어는 그 미숙함과 어리석음에 있는 듯합니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듯한 작자들이, 타인의 말도 해석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작자들이 정치 평론도 하고 심지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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