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
김인철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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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을 읽을 때도 그랬다. 탐사 기자 이기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 2019년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실을 파헤칠 탐사보도팀이 결성되면서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변형 바이러스라 할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성행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능력은 극도로 약화되어 가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로서의 '탐사보도'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엘리트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속한 기자들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인 기준과 아구스틴은 팬데믹의 발원지인 우한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간다.


"그는 이제 바이러스 팬데믹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에 닥쳐올 새로운 팬데믹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2019년 코로나19 사태의 숨겨진 진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깊은 사명감을 품게 된 것이다."  (p.42)


정유정의 소설 <28>의 공간적 배경은 화양시이다.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자 화양시는 봉쇄된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펼쳐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소설 <28>에도 소방대원의 이름 역시 기준이었다. 소설 <28>은 팬데믹 이전(2013년)에 출간된 소설이었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예상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에도 포함된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 종말 시나리오 9가지는 첫 번째 '물리학 실험의 실패', 두 번째 '화산폭발', 세 번째 '빙하기 또는 태양 폭발로 인한 기온 상승', 네 번째 '외계인의 침략', 다섯 번째 '컴퓨터의 지배', 여섯 번째 '소행성 충돌', 일곱 번째 '치명적인 벌레의 공격'(바이러스와 연관), 여덟 번째 '별의 대규모 폭발', 아홉 번째 '나노 기술의 악몽'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지구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이와 같은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광기 어린 도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은 따로 있었다. 벡터로 강제 개조된 인공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에서 잃어버린 복제 능력을 되찾거나, 대자연의 야생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전대미문의 괴질을 퍼뜨릴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임상에 동원된 피험자의 체내에서조차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의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제창과 자오융의 흐려진 동공에 그런 과학적 경고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들의 영혼은 오직 빛의 속도로 임상을 주파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틀어쥐겠다는 검은 광기로만 펄떡이고 있었다."  (p.312)


탐사 기자 이기준과 그의 동료 아구스틴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밝고 희망에 찬 내용이 아니었다. 부를 향한 거대 제약회사의 편법과 은폐, 권력의 동조와 과학의 오만 등이 섞여 세상은 다시 M-바이러스라는 공포 속으로 걷잡을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다. M-바이러스는 인간의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이나 거짓말까지 겨냥한다. 종국에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심판하는 상황.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준마저 M-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데...


"그들은 서둘러 기준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당도한 민희가 초인종을 거듭 눌렀으나, 문 너머에서는 어떠한 생의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아구스틴이 기준의 현관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간신히 닫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그들의 시야에, 소파 곁에 처참히 허물어져 있는 기준의 형상이 들어왔다."  (p.545)


여름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그 열기가 무섭기만 하다. 이런 열기라면 웬만한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으로 며칠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무섭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 김인철의 소설 <하얀 거짓말>도 어쩌면 인간의 지적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인류의 생존은 그렇게 조심조심 지켜져 왔을 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개개인의 건강 역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금 건강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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