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ㅣ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어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이 들었던 밤,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단어인가. 바람 앞에 붙는 '선선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걸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설 때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내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에는 환한 아침의 기운 대신에 어둠의 잔해가 희미하게 남기 시작했다. 그것이 첩첩 어둠은 아닐지라도 어둠의 빛깔이 조금씩 진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등산로에 낯선 얼굴들이 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오히려 익숙했던 얼굴도 하나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동하는 시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계절 체험자'라고 부른다. 봄이나 계절 한 철을 또는 바뀐 계절의 며칠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습관성 운동은 애초부터 그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만에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바뀐 계절을 열심히 체험하는 것이다.


"처음 헬스장 등록할 때 OT라는 걸 받으라 했다. 인바디 체크하고 이런저런 기구들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병원 의료진 앞에서도 싫은데 남 앞에서 저울에 내 몸을 올리고 이리저리 출렁대는 몸을 기계마다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게 영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렇다, 나는 '독학' 스타일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들으며 한 적이 없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지내다가 시험 전날 독학하는 게 내 공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나는 남의 말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는 건 내 스타일, 독학 스타일을 버려야 할 바로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는 거다."  (p.11)


어느 날 새벽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작가는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아 들었다. 운동이라곤 25년 넘게 해온 인권운동밖에 모르던 작가가 피트니스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기간이 늘어날수록 체감하게 된 몸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삶의 변화는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쓰는 데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는 작가가 2년 가까이 체감한 피트니스에 대한 활동 기록지인 동시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다. 물론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체중이 조금 가벼워지자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쉬기도 했고,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요구에 난감해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고기를 끊었고, 고혈압 판정을 받은 후 저염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럼으로써 작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는 작가는 식습관을 바꾸는 인생의 대전환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운동의 효과를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운동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고 마구잡이식 식사에 젖어 있던 작가의 예전 모습을 비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변화였다. 데드리프트와 체스트리프트, 복근 운동과 스쿼트 등 트레이너의 지시와 운동기구의 사용 요령에 대한 학습이 반복되면서 작가 역시 헬스장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동물 개체일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힘듦과 부침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제대로 내 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다짐을 해보곤 한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있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  (p.152)


나는 오늘도 산뜻한 운동복 차림의 몇몇 '계절 체험자'들과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그들 중에서 올 겨울을 넘겨 2027년과 2028년을 함께 걷게 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계절 변화 얼리 어답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극한의 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아, 산에는 지금쯤 상수리나무의 잔가지가 떨어져 등산로를 덮고, 알도 차지 않은 풋밤송이가 매미의 울음소리에 놀라 후둑후둑 떨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등등하던 폭염의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그렇다고 한낮 더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이따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겠습니다만 이제는 여름휴가도 대부분 끝이 나고 평일에는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나른한 루틴이 이어지겠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특별할 것 없는 심드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대 후 복학을 해야 하는 아들의 이사를 돕기 위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근처를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아들은 그곳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을 숙소로 정했고, 그곳에서 어쩌면 남은 대학기간 2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계획하는 대로 차후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그곳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2년을 계약한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피스텔 임대 계약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그곳에 직접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8월 3일에 임대 계약을 마친 아들은 그 사이에 에어컨 청소를 의뢰하고, 침대와 책상을 구입하고, 가볍게 청소를 하는 등 입주 준비를 서둘렀던 듯합니다. 승용차에 아들의 짐을 바리바리 싣고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는 아들이 이케아에서 주문한 책꽂이며, 조립식 스탠드 조명이며, 베개며, 커튼 등 집에서 가져간 짐만큼의 이삿짐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울 요량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한 후 책꽂이를 조립하고, 커튼을 달고, 스탠드 조명을 조립하여 침대 곁에 두고, 짐 정리 후 나온 박스와 비닐을 모아 쓰레기장에 분리수거까지 마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의 유럽 여행 후일담을 듣느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진 동아리의 정기 사진전에 걸었고, 그중 두 점이 팔렸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있었던 신촌의 숙소에 비하면 상암동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주변에는 산과 공원 등 초록초록한 자연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가까운 식당을 가려고 해도 1km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할 듯합니다. 그곳에서 아들은 무척이나 건전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비비언 고닉이 쓴 <연애 시대의 종말>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고 있는 듯한데 비비언 고닉 역시 20세기의 문학작품에서 보는 사랑의 문제가 꽤나 심각하게 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메러디스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플로베르와 에마 보바리의 관계에 비교할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이 바로 작가 자신이다. 다이애나를 찬란한 존재로 만들고 다이애나가 독립을 갈망하는 지적인 여성의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함으로써, 다시 말해 상황을 첨예하게 만듦으로써, 메러디스는 굴욕당한 무지한 자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잘 다가갈 수 있다. 그게 작가의 진짜 관심사이며 작가 자신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p.25)


아침에 하늘 저편에서 보이던 먹구름은 이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은 온통 가을을 닮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무사히 살아낸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 ㅣ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인이 된 후에도 동화를 읽을 때가 더러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는 것이다. 동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곤 한다. 소설을 읽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이다. 은유나 비유가 많지도 않은, 그렇다고 구성 자체가 복잡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지도 않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쓰인 단출한 인물과 사건 구성임에도 동화는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그토록 쉽게 사로잡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고 문장의 표현이 직접적인 까닭에 독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하자면 소설은 투명한 유리 반대편에 반투명의 얇은 종이를 덧댐으로써 독자들에겐 그저 흐릿한 윤곽만 제공함으로써 독자 개개인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지만, 동화는 그런 장치 없이 투명한 유리 저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동화 속 주인공이 울고 있으면 나도 따라 훌쩍거리며 울게 되는 것이다.


"은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과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기도 합니다. 은하철도에 올라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모두 갑작스럽습니다. 조반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바라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은하철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이처럼 『은하철도의 밤』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과 슬픔,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우리는 이처럼 상반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p.211)


이서희 작가가 쓴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는 PART 1 '함께할 때야 빛나는 것', PART 2 '진심의 아름다움', PART 3 '상상을 뻗어 자유로운 세계로', PART 4 '내 심장으로 마주하는 모험', PART 5 '우리의 성장을 닮은 이야기' 등 총 5부로 나뉘어 22편의 동화가 발췌되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비롯하여 정글북, 소공녀, 피터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닐스의 신기한 모험, 브레맨 음악대, 보물섬,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 등제목만 들어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유명 동화들이 작가의 안내와 해설에 따라 줄줄이 소환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일에 조심스러워지며, 아무 조건 없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하던 감각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아직 좋은 곳일 수 있다고 믿던 작은 확신도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접어두기도 합니다. 그럴 때 동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 곁에 놓입니다."  (p.4~p.5 'prologue' 중에서)


비록 이 책에는 작가가 가려 뽑은 동화 속 일부 문장들이 실려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 문장들로 인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동화가 한두 권쯤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어느 가을의 언저리에서 홀로 남은 빈집을 지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읽었던 '정글북'이나, 할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조명도 없는 사랑방에 숨어들어 읽었던 '피노키오' 등 우리는 동화 한 편을 다시 읽음으로써 소중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박한 사회생활로 잔뜩 날이 섰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무뎌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렸던 누군가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004 얘야,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야. 세상에는 다리가 짧은 거짓말도 있고, 코가 긴 거짓말도 있거든. 네가 한 것은 코가 긴 거짓말이란다."  (p.190)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르는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굳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수없이 잔금이 가는 듯하다. 날 선 표정에 질린 탓인지 사무실에선 농담이 사라졌다. 무거운 침묵이 흐를 뿐이다. 침묵은 가히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닮아 있다. 그 무거운 침묵 사이를 각자가 겨누는 마음의 검이 마치 어느 영화의 광선검처럼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듯하다. 언제든 찌를 준비를 하고. 내가 읽은 동화 한 편이 광선검을 막아줄 캡틴의 방패가 되어줄 것인가. 강한 햇살에 기운을 잃은 나뭇잎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울까 봐 덥다는 말을 가급적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덥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요즘입니다. 게다가 비가 자주 내릴 때는 그렇게 지긋지긋하더니 이렇게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자 차라리 비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잠깐 내리는 소나기조차 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맘때의 나는 새벽 운동을 나서는 경우에도 주로 긴소매의 운동복을 입는 편이었습니다. 극성스러운 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앵앵거리는 모기마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동안 비는 오지 않고 강한 여름 햇살만 내리쬐는 까닭에 등산로에서도 모기 유충이 살 만한 물웅덩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릴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말하기를 올해 여름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또 다른 여름에 비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보다 내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며, 내년 여름보다 내후년 여름이 더 더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입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런 전망이 수긍은 되면서도 들을 때마다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을 사진에 담았던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긴 여행의 도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문득,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말이었다. "이 세상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만다. 체념과 희망이 공존하고, 밝음과 슬픔이 한데 섞인 채, 나는 내일을 생각한다." 제인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나와 미카엘의 손을 잡았다.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약속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은 끝이 났다."  (p.52)


여전히 비소식은 없고, 쨍한 하늘만 지겹도록 계속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애프터 다크>에는 '내 인생의 좌우명.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좌우명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런 날씨에는 물을 자주 마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듯합니다. 어쩌면 올 여름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의 중심에 컴퍼스를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원 하나를 그려 보자.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같은 크기로 등분을 하여 각각의 나이대에 동일한 양의 슬픔을 나누어 주자. 일명 슬픔의 분할. 그렇게 등분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할까? 어느 나이대에 너무 과도한 슬픔이 몰린 까닭에 한동안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각각의 나이대에 일정한 슬픔이 배분된다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행복의 총량이 조금쯤 늘어나지 않을까? 같은 크기로 나뉜 피자의 조각처럼 같은 양의 슬픔을 각각의 나이대에 분할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이따금 설렁설렁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최지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그런 의문에 젖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슬픔이 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눅눅한 슬픔이 감정의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슬픔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는 한동안 '슬픔의 분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특정 시기에 슬픔이 집중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하느님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런 심정이 여름의 불청객 불쾌지수에 더해져 짜증만 늘었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  (p.105)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어렸던 작가를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것도, 할머니의 죽음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잠깐 돌보았다는 작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작가는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대학생 시절 가난하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는 작가는 신인시인상 수상 상금 500만 원도, 첫 시집을 내고 인세로 받은 180만 원도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상금도 첫 인세도 내게는 소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시를 써서 받은 돈이 내 것 같지 않았고, 시를 쓰게 된 삶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시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쓸 수 없다면 급하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은 다 나중에야 생각해본 이유들이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명확한 이유를 여전히 나는 모른다."  (p.134~p.135)


아버지의 자살 이후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하고, 작가의 남편이 검은 개 탄이와 흰 개 설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우리의 여름에게>는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불쌍하거나 기구하다거나, 가엾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려주는 건강한 슬픔은 때로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모모 씨는 이보다 더한 슬픔도 이겨냈다는데'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


"글로 하는 고백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 나의 시간, 나의 경험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고백은 쓸쓸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쓸쓸함 때문에 꼭 필요한 고백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수많은 오해를 품고 살면서 왜 모든 독자와 오해 없이 연결되기를 기대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쟁이일까."  (p.170)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냉방이 잘 된 보송보송한 공간이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겐 조금 서늘하다 싶은, 기분 좋은 한기가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끼쳤다. 그리고 구수한 커피 향과 달착지근한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른한 '풀림'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불필요한 여자>를 조금 읽었다. 더위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손님이 끊긴 조용한 카페에서 이글거리는 바깥 풍경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최지은 작가의 <우리의 여름에게>가 내게 남겼던 눅눅한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