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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삶의 중심에 컴퍼스를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원 하나를 그려 보자. 그리고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같은 크기로 등분을 하여 각각의 나이대에 동일한 양의 슬픔을 나누어 주자. 일명 슬픔의 분할. 그렇게 등분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할까? 어느 나이대에 너무 과도한 슬픔이 몰린 까닭에 한동안 견디기 힘든 시기를 보내거나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각각의 나이대에 일정한 슬픔이 배분된다면 삶은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행복의 총량이 조금쯤 늘어나지 않을까? 같은 크기로 나뉜 피자의 조각처럼 같은 양의 슬픔을 각각의 나이대에 분할하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이따금 설렁설렁 여유를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최지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그런 의문에 젖어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슬픔이 내게 전이되어 어느 순간 눅눅한 슬픔이 감정의 밑바닥에 착 달라붙어 곰팡이처럼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여름의 슬픔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는 한동안 '슬픔의 분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특정 시기에 슬픔이 집중된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하느님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런 심정이 여름의 불청객 불쾌지수에 더해져 짜증만 늘었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 (p.105)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어렸던 작가를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것도, 할머니의 죽음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잠깐 돌보았다는 작가,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작가는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대학생 시절 가난하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는 작가는 신인시인상 수상 상금 500만 원도, 첫 시집을 내고 인세로 받은 180만 원도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상금도 첫 인세도 내게는 소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시를 써서 받은 돈이 내 것 같지 않았고, 시를 쓰게 된 삶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시와 아버지의 죽음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쓸 수 없다면 급하게 필요한 사람과 나누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은 다 나중에야 생각해본 이유들이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명확한 이유를 여전히 나는 모른다." (p.134~p.135)
아버지의 자살 이후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는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서 휴직하고, 작가의 남편이 검은 개 탄이와 흰 개 설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우리의 여름에게>는 읽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다거나, 불쌍하거나 기구하다거나, 가엾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려주는 건강한 슬픔은 때로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모모 씨는 이보다 더한 슬픔도 이겨냈다는데' 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
"글로 하는 고백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 나의 시간, 나의 경험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을 때 고백은 쓸쓸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쓸쓸함 때문에 꼭 필요한 고백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수많은 오해를 품고 살면서 왜 모든 독자와 오해 없이 연결되기를 기대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쟁이일까." (p.170)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작은 카페에 들렀다. 냉방이 잘 된 보송보송한 공간이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겐 조금 서늘하다 싶은, 기분 좋은 한기가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끼쳤다. 그리고 구수한 커피 향과 달착지근한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른한 '풀림'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불필요한 여자>를 조금 읽었다. 더위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는 손님이 끊긴 조용한 카페에서 이글거리는 바깥 풍경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최지은 작가의 <우리의 여름에게>가 내게 남겼던 눅눅한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