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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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하다'는 단어를 아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일상의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분석이나 비평 따위가 매우 매섭고 날카롭다'는 뜻의 한자 단어입니다. 특이하게도 '매울 신(辛)'에 '매울 라(辣)'자가 결합된, 맵다는 의미의 한자가 중첩되어 뜻이 강조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지도 않고, 그닥 특별하지도 않은 이 단어를 내가 굳이 꺼내든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맵다'는 단어는 맛을 표현하기도 하고, 눈이나 코가 아린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몹시 차갑고 냉혹하다의 뜻을 가진 '모질다'의 의미로 쓰일 때도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살이가 맵다'와 같은 표현이지요. 나는 '신랄하다'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유년기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갖게 되는 날 선 표현을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유년기와 아동기를 욕설의 세례로 풍요롭게 자랐다. 물론 내가 학습받은 내용을 전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반 친구와 자지러지는 입씨름을 할 때 어른의 욕설을 능숙하게 사용하니 담임 선생님은 내 현란한 비속어에 기함을 했다. "네년을 낳고 네 에미가 먹은 미역국이 아깝고나!" 내 욕설을 듣던 담임 선생님도 그만 전염되어 '그 혀를 뽑아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와 다툰 여자아이들은 다 책상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물론 남자아이들도 온전할 수는 없었다."  (p.50)


유년기의 삶을 등급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신(辛)하기만 했거나 랄(辣)하기만 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신랄(辣)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을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거나 남들에 비해 돋보이는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신랄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을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 추측합니다. 뭐 그렇다고 신랄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을 찬양하거나 그것이 좋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신랄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독특한 시선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해서 100%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늘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전폭적인 신뢰는 아니지만 적대감이나 날 선 시선을 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또는 그녀)는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김미옥 작가의 에세이 <미오기傳>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작가의 신랄했던 삶의 단면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그 매웠던 시간을 어린 나이에 어찌 견디며 살아왔을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섯 자식과 병든 남편을 떠안았던 엄마에게 어리기만 한 막내딸은 없어도 좋을 잉여 자식이었던 셈입니다. 12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입주 과외를 전전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써야 했던 작가에게 책은 자신의 신산한 삶을 잊게 하는 해방구이자 미래를 기약하는 작은 등불이었습니다. 독서에 몰두했던 작가가 자신의 SNS에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책을 열성적으로 소개하면서 어느 순간 그녀는 북 인플루언서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았다. 세상은 집 없이 떠도는 여학생에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나의 노력보다는 누군가의 온정으로 공부도 끼니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중 사흘을 굶은 내게 밥상을 차려준 옆방의 모르는 언니를 나는 잊지 못한다."  (p.272)


신랄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글에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기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합니다. 흔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낮은 틈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웁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입니다. 전시륜 작가가 쓴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이 그렇고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傳>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작가들의 여린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편입되지 않았던, 하마터면 세상에 편입될 수 없었던 몇몇 생명체의 존재를 뒤늦게 인지하곤 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는 무지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인간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어제 당신을 향해 웃던 친구들, 친절한 이웃들이 갑자기 등을 돌릴 때 세계는 무너지는 것이다. 다시 나의 지인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는 그는 우리나라의 엘리트층에 속하고 재력도 있다. 쾌활하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열린 사고를 갖고 있어 후배들도 좋아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코로나로 그의 사업이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그는 늘 웃고 있었다."  (p.263)


우리가 사는 삶은 날아갈 듯 가볍지도 않고, 연약한 인간으로 하여금 무릎을 굻리게 할 만큼 혹독하거나 가혹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년기의 삶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삶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인간의 삶 전체를 따져볼 때 그것은 결코 가벼운 분량이 아닙니다. 내가 이 책 <미오기傳>을 쉽게 읽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인데 뭐.' 하면서 넘기기에는 책의 한 장 한 장이 내개 주었던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이 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딸기 한 상자를 선물로 받고 인근의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주었습니다. 딸기에 대한 답례 치고는 너무나 헐한 가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환한 웃음으로 나를 기쁘게 했습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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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조금 당신을 그리워하였습니다. 눈이 녹고 강의 얼음이 풀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풀려가는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습니다. 아직은 봄을 말하기에는 좀 이른 시기, 그리움이 깊어지면 내가 바라던 봄도 차츰 무르익겠지요. 미처 지우지 못한 과거의 흔적들이 마치 오랜 습관처럼 혹은 내달리는 버스의 관성처럼 나를 흔들고, 때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나를 되돌리려 할지라도, 기온이 오르고 때가 되면 거르지 않고 봄이 오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나를 지나쳐 저 멀리 앞서간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나의 생각이 머무르는 공간이 현재가 아니라 헐레벌떡 뒤를 쫓던 대상이 늘 현재였던 까닭에 나는 지금껏 현재라는 실체를 단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내란 수괴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거짓과 위선, 무능과 부패, 무속과 음주로 점철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개중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사적 이익을 편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리하는 약삭빠른 자들도 있겠으나 그들의 선전 선동에 휘말려 쥐뿔도 모르면서 그들 편에 서는, 그야말로 허접한 떨거지들이 다수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쇼트 폼 콘텐츠를 과잉소비한다는 점입니다. 체포된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극우 세력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입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쇼츠를 과잉소비함으로써 집중력 저하, 문해력 약화 등 지적 퇴화가 심각해지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라고 합니다. '뇌 썩음'이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 수 있음은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나는 요즘 인문학자 김태현이 쓴 <군주론 인생 공부>를 읽고 있습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미래나 당위가 아닌, 현재와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 인류의 가치관을 윤리나 의무에서 개인과 현실로 돌린 최초의 인물이었기에 그의 사상은 지금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사에 대한 지적 통찰과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그가 쓴 '군주론'을 통해 습득할 자신이 없었던 까닭에 인문학자 김태현의 해설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치자의 지능을 평가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의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군주론' 22장 중에서)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면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태현 저자는 위의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사람을 보는 눈을 꼽았습니다. 군주는 훌륭한 인재들을 가까이 두고 그들의 조언을 신뢰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군주의 능력은 단지 개인의 지혜나 용기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군주가 주변 인물들의 역량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군주의 권력 유지와 확장이 좌우된다고 마키아벨리는 강조했습니다."  (P.56)


불행하게도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개인의 지혜나 용기는 물론 주변 인물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능력 역시 부족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없으면 주변 인물들의 역량을 파악하는 능력이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자 우리 모두에게 악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많이 풀리자 원하지 않았던 대통령도 체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조금 당신을 그리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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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스틸 영
박병진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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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못 마시는 내가 위스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지 싶다. 10년도 더 지난 시점에 내가 읽었던 한 권의 책. 그것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었다. 술이 좋아서라기보다 작가에 대한 편애 때문이었다. 하루키의 책이라면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일단 읽고 보는 습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하루키 저작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읽게 되었던 책. 그러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은 예상보다 재미있었고, 위스키 특유의 달큰하고 나른한 향취가 책을 읽는 내내 입안에서 감도는 듯했다. 물론 하루키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가 독자들로 하여금 위스키에 대한 강렬한 끌림을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박병진의 <위스키, 스틸 영>을 읽게 된 건 순전히 10여 년 전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 대한 하루키의 안내서가 박병진에게까지 이르도록 유도하였던 것은 하나의 우연이 또 다른 우연을 부르는, 이른바 줄리언 반스의 예언처럼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한 셈이다. 박병진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위스키라는 술에 대해서도 나는 우연처럼 거리를 좁히고 있다.


"이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위스키 전문 정보나 위스키 로드를 안내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 어디에도 위스키의 제조 방법이나 시음하는 방법, 그리고 위스키의 연도별 특징 같은 내용은 없다. 다만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와 정치, 인문과 지리, 최소한의 문화적 배경에 관한 내용을 담았을 뿐이다. 다만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와 정치, 인문과 지리, 최소한의 문화적 배경에 관한 내용을 담았을 뿐이다. 독자들이 부담 없이 위스키에 접근하게끔 되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꾸몄다. 위스키 마니아가 아니라도,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왜 세계인이 위스키에 열광하는지, 위스키가 역사의 면면에 어떤 자취를 남겼는지, 그 숱한 이야기에 한번쯤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p.5~p.6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내용이나 구성도 넓고 다채롭다. 1부 '아일라 위스키', 2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3부 '블렌디드 위스키', 4부 '일본 위스키', 5부 '미국 위스키'로 구성된 이 책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같은 독자라 할지라도 단순히 술 자체로서 목적이 아닌, 위스키를 둘러싼 문화적 배경에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접근 가능한 기호 서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 정치, 인문, 지리에 대한 문화적 배경을 동석한 사람들에게 안주 삼아 맛깔나게 풀어낼 수만 있다면 술자리에서 비록 무알콜 음료를 앞에 놓을지라도 언제든 참석을 권유받는 귀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술병에 적힌 음주 경고 문구는 우리나라와 미국과 영국이 서로 다르다. 여기서도 우리와 그들, 영국과 미국 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몇 가지 버전이 있지만,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처럼 의료 처방전 같은 느낌이다. 영국은 조금 우아하게 'Drink Responsibly(책임질 수 있을 만큼 마셔라)'인데 비해 미국은 직설적으로 'Know Your Limits(네 주량껏 마셔라)'이다. 우리의 문어체적 음주 경고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p.262~p.263)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은 2020년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이라는 제목을 달고 재출간되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고 썼던 에세이 속 한 문장이 제목으로 변한 것이다. 내가 굳이 하루키의 책을 들먹이는 이유는 세계 각 지역의 위스키가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그 맛도 제각각인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병진이 쓴 위스키 탐방기 역시 그 색깔과 맛이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독특한 광고를 통해 우리 세대에 친숙한 양주 캡틴큐는 럼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럼 원액은 20퍼센트 미만이 들어갔을 뿐이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제품은 아예 럼 원액이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다. 캡틴큐는 그 독특한 광고에서 럼의 중요한 소비자가 해적이었음을 잘 보여주었다."  (p.125)


한때 양주의 대명사였던 시바스 리갈은 권력자들의 전유물인 양 소비되던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로 대변되던 군사정권 시절, 자신의 부하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이따금 벌인 술판에는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던 게 시바스 리갈과 여성 접대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들이 향유하지 못하는 술을 권력자로부터 하사 받는 기분, 술과 더불어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동물적인 배설 행위 등은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위스키는 이제 대중적인 술로 변화하고 있다. 군사 독재 시대가 민주화 시대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민주화는 경제 민주화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혹은 당신이 거리낌 없이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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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뺌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잘못이나 타인에 의한 누명이 초래할 결과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감히 시비곡절을 따질 엄두가 나지 않게 하고 일단 발뺌부터 앞세우는 그릇된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더구나 간이 콩알만 한 사람들은 큰일도 아니면서 일단 발뺌부터 하는 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자리 잡게 된다. 그러므로 남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발뺌하는 데에만 급급하는 버릇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정교육을 담당했던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식을 엄하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자칫 체벌이 잦은 경우 아이를 발뺌만 하는 용렬스럽고 비겁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누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거짓말과 발뺌으로 일관하는 자들의 전형을 대통령으로부터 보고 있다. '저런 자를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았단 말이야?' 하는 자괴감이 치욕을 넘어 부끄러움으로 치닫게 하는 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자신이 했던 말은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다. 시쳇말로 '구라'이거나 허언일 뿐이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쉽게 길러지는 게 아니다. 가정교육을 담당하는 부모의 사랑과 헌신적인 노력이 없다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오직 참과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대개 일단 발뺌부터 하고 처벌에서 제외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거짓을 고하여서라도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를 항상 시험에 들게 한다.


자신의 비겁함을 잘 알고 있었던 대통령은 남들도 다 그렇겠거니 여겨 노상원으로 하여금 케이블 타이와 망치, 야구 방망이 등과 더불어 절단기까지 구입하도록 지시하였던 게 아닐까.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인사들을 체포하여 고문과 협박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어떤 조작이나 거짓 진술도 다 받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 세상에는 대통령처럼 비겁하고 용렬한 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 듯하다. 역사가 느리지만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고문과 협박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그의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한 듯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안중근 의사의 용기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썼던 단지동맹 동지들의 의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와 같은 이의 숭고한 사랑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었을 때,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라."는 말로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전했던 조 마리아 여사. 대통령은 내세에 다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어떻게든 자신이 쥔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지지자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비열하다 못해 가엾기까지 하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오직 국민의 몫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 찌질한 자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각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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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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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가가 쓴 소설인 줄 알았다. 혹시 번역가가 바뀌었나 해서 신경도 쓰지 않았던 번역가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작가의 이름은 에쿠니 가오리, 번역가는 김난주.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번역을 맡았던 사람은 주로 김난주 또는 신유희 번역가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달라졌다고 느낀 나의 감상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내가 알던 에쿠니 가오리는 간결한 문체와 절제된 감성,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거침없으면서도 적나라한 묘사, 각이 잡힌 구성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최신작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은 문체에서부터 구성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던 에쿠니 가오리가 아니었다. 문체는 부드럽고 조곤조곤 길어졌으며, 독자들을 감싸는 듯한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세이케 리에는 다미코의 대학 시절 친구다. 외국 금융회사에서 일하느라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다. 한 달 전, 일을 그만두고 귀국할 텐데 살 곳이 정해질 때까지 당분간 너희 집에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다미코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 집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지만,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다미코는 그 어느 쪽도 없다."  (p.8)


소설은 친하게 지냈던 대학 동창 중 한 명인 리에가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세 사람의 대학 동창인 다미코와 리에, 그리고 사키는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다. 한때 결혼을 했었으나 이혼을 하고 다시 혼자가 된 리에,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으나 5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작가로서 어머니 가오루와 함께 살고 있는 다미코, 아들 둘을 낳은 주부로서 무심한 남편과의 기계적인 일상을 반복하면서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문병하기 위해 요양원을 드나드는 사키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겠다는 큰아들과의 갈등 상황에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가온이 제안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나고서 알았는데, 가이는 벌써 가온에게 꽉 잡혀 있었다. 아들이 완전히 독립하는 셈이니까 어머니가 무척 허전할 거다, 그러니 그 빈자리를 메울 것이 필요하다는 둥 하고. 어이가 없다. 이 집에는 손이 많이 가는 남자가 둘이나 있고, 보살펴야 하고 보살핀 만큼 풍요롭게 답해 주는 마당도 있다. 그런데다 시설에 있기는 하지만, 늙은 시어머니도 보살펴야 한다. 그런데 뭐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요는 둘이서 사키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속셈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화가 났다. 분개하는 생각을 넘어 피가 거꾸로 치솟을 것 같은데, 그건 사키의 방식이 아니다."  (p.217~p.218)


대학 시절 '쓰리 걸스'로 불리며 친하게 지냈던 리에와 다미코, 그리고 사키는 리에의 귀국과 함께 완전체가 되었지만, 그들 앞에 놓인 현실과 각각 떨어져서 살았던 독립된 삶의 관성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 그들의 대학 시절로 향하는 추억 여행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소설은 그렇게 과거 절친했던 세 사람의 삶을 조망하면서 얽히고설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삶은 이렇듯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성격의 사람들이 우연이라는 선물을 통해 관계를 맺고, 약속이나 한 듯 흩어지기도 하면서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게 마련이다. 작가는 그런 모습들을 가감 없이 포착하여 우리들 앞에 자연스레 펼쳐 보인다.


"리에가 이사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다미코는 솔직히 침실을 되찾아 좋았고, 그보다 복도에 쌓인 대량의 짐이 없어지면 개운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정작 리에가 없어지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허전했다. 실제로 그 비 내리는 오후, 짐은 많았지만 이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업자 두 명의 힘이 얼마나 세던지, 작업은 또 얼마나 효율적이고 신속하던지 가오루와 다미코는 그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트럭을 선도하듯 차를 몰고 후다닥 사라진 리에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다미코는 상실감을 느낀다."  (p.348~p.349)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도시를 떠나 자연에 파묻히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까닭이다. 말하자면 텔레비전 속 자연인의 삶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내기들에게 자연에서의 생활은 단 한 달도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삶은 복잡한 관계로 인해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 관계를 모두 지우고 나면 차오르는 상실감과 고독을 우리는 감당하기 힘들다. 어쩌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맺게 되는 복잡다단한 관계에 대해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렇게 의미도 없이 흘러가는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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