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마음 있는 사람
정기현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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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편집자가 인기 작가로 탈바꿈하는 사례는 불가능하거나 희귀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흔한 사례도 아니지만 말이다. 타인이 쓴 글에 대해 조언하고 격려하는 일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글을 쓰는 일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일 때문이든 취미로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당연히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양자 사이에 서로 긴밀한 연관은 있을지언정 '반드시'로 귀결되는 건 아닌 듯하다. 나 역시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그닥 즐기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게다가 이걸 평생의 업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나의 이런 성향은 책을 읽고 숫제 기록도 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을 오래도록 유지시켰던 바, 어떻게든 이를 고치고 바로잡겠다는 명목으로 오죽하면 영양가도 없는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별반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지만 말이다.


정기현 작가 역시 스타 편집자에서 신인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난 나의 감회는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자' 결심하거나 생각해서 나온 글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쌓이고 쌓였던 것이 자연스레 넘쳐흘러서 비로소 세상에 나온 책일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인간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때가 되어 마땅히 나와야 할 게 나왔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끝없이 걷는 모습으로 일관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은, 새미, 승주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들이 마주하는 다른 풍경들을 끊이지 않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나온 시간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 탓인지, 아니면 교회에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것인지, 낯선 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끝나지 않는 긴긴 얘기를 늘어놓았다. 교회에 와서야 털어놓는 이야기라는 것이 대개 먹고사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나 그 나름대로는 충분히 무거운 것들이라 이들의 장황한 이야기는 붕 떠올라 당사자만 아는 리듬대로 흘러갔다."  (p.83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중에서)


정기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빅풋', '발밑의 일', '검은 강에 둥실',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농부의 피',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바람 부는 날' 등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신인 소설가인 만큼 소인(小人) 새미가 임준섭의 집에 숨어들어 지내는 며칠 동안 인간이 소인의 존재를 눈치채면 그 즉시 처단된다는 그들만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새미는 왠지 그에게는 정체를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임준섭을 불러보는데, 그는 의외로 차분하기만 하고, 집안의 고요가 깨져 기쁘다는 듯 행동한다는 내용의 '발밑의 일'처럼 실험적인 작품도 선보인다. 물론 큰 발을 갖고 있는 새미가 발 때문에 흐려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슬픔을 다룬,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빅풋'과 같은 작품이 작품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신발 자체로만 본다면 그리 무시무시한 크기까지는 아니었는데도 새미를 먼저 알고 새미 없이 그 신발들을 보게 된다면 그 뒤로도 한동안 발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만드는 신발들이었다. 새미는 여전히 실종 상태인데 발 크기에 놀라 마땅한 슬픔을 뒷전으로 밀어둔 것처럼 보일까봐 나는 신발들이 선사한 놀라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p.15 '빅풋' 중에서)


소설 '빅풋'에서 새미는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발에서만 자세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대표성이 발의 크기가 아님을 은연중에 밝힌다. 동네 곳곳에서 발견되는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되는 낙서를 보면서 기은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김병철'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사연을 찾아 나서게 되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기은이 자신이 새로 발견한 사실을 준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그린 '슬픈 마음 있는 사람'과 여름방학에 꾸었던 꿈을 소재로 다룬 '검은 강에 둥실', 뻐꾸기와 파쿠르의 상상력을 다룬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우연히 발견한 비옥한 땅을 보면서 자신에게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승주의 이야기를 다룬 '농부의 피', 외고를 목표로 노력해 온 승주가 어느 날 노는 아이들의 무리인 '버들치'와 어울리게 되면서 달라지는 삶의 패턴을 그린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재건축을 하기 위해 펜스가 쳐진 아파트 단지를 멀리 돌아 출근하는 대신, 펜스를 뚫고 한가운데로 걸어보자고 결심한 승주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그린 '바람 부는 날' 등 작가는 다양한 소재에서 얻은 여러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길에도 성격이 있다면 고갯길은 무척이나 음흉한 성격일 것이다. 꼭대기에 다다를 때까지 너머의 풍경을 감춘 채 고개의 이쪽 면만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만일 누군가 푸른 초목이 무성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가 멈추지 않고 걷는 이유는 내리막길에도 그 녹빛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너머가 바위산이면 어떡하려고? 얼음산이라면? 절벽이라면?"  (p.264 '바람 부는 날' 중에서)


며칠째 날이 무척이나 차다.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갑작스럽거나 느닷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삶에서 받는 충격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멈춰 서거나 기운을 잃고 쓰러질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좋은 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네 모습을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한 편의 소설이 가리키는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멈추어 서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 지쳐버린 자신의 삶을 잠시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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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이 조금 내렸습니다. 가볍고 건조한 눈이었습니다. 아파트 인근의 차도와 인도는 비교적 따뜻했는지 내리자마자 금세 녹아 비가 내린 듯 젖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내리는 눈의 방향이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등산로 초입의 계단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인지 조금씩 눈이 쌓이고 있었고, 계단을 디딜 때마다 선명한 발자국이 지문처럼 남았습니다. 등산로와 등산로 주변의 낙엽 더미에도 눈이 쌓여 어둠에 지친 숲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에 내몰린 차량들이 새벽부터 도로를 질주하고,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향하는 어느 노동자의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지 만 12년이 되었건만 나는 지금도 누군가의 담배 연기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삶에 나른한 권태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어쩌면 멀리하던 담배에 불을 붙여 진한 연기를 가슴 한가득 빨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정기현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걷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익숙한 골목골목을 무작정 걷는 느낌입니다. 도시를 질주하는 차량의 속도에 익숙해진 도시인이 자신의 보조에 맞춰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낡은 현수막에 실린 어느 정치인의 구호나 전봇대에 나붙은 과외모집 광고 등 우리는 도시 곳곳에 남은 여러 문장들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새미는 보리밭 쪽으로 걸었다. 보리밭 반대쪽 산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길도 아빠 차 타고 매번 지나던 길이라 영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걸어본 일이 없어 새미는 할머니와 매일 걷던 보리밭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할머니와 걸을 때에는 보리밭 길 정도야 선산으로 가기 위한 통로라는 것밖에 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혼자 걸으려니 그 길까지도 지나치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p.120)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때로는 시간의 경과마저 잊게 합니다. 그것을 비로소 인식하였을 때에는 시간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후라는 걸 우리는 너무 늦은 나이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익숙했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말마다 내가 사는 도시 전체를 다 돌아볼 수는 없겠지만, 자주 지나치던 공원이나 천변을 느린 속도로 걸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아주 느린 속도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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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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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살 때마다 종이 영수증을 꾸준히 받다 보면 소비 행위가 한결 위축되는 걸 느낀다. 하루에도 주머니 가득 쌓이는 영수증 더미를 보면서 아연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종이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소비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보겠다는 구차한 명목이 아니라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말이다. 계산을 마침과 동시에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는 금액을 확인하는 정도의 단순한 용도에 그칠 뿐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아니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던 습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목에 가시처럼 걸리던 마음속 죄책감을 없애는 일에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은 '23세부터 매일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2025년 48세가 될 때까지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책에는 40세가 된 정신 작가가 서울을 떠나 포틀랜드로 향하는 2017년 3월 27일의 미국행 비행기 항공요금 937,800원의 영수증으로 시작된다.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글을 쓴 주인공 정신과, 정신의 영수증뿐만 아니라 배경 사진을 담당한 사이이다 작가, 그리고 영수증과 사진을 모아 정신이 쓴 글과 함께 배치한 공민선 디자이너가 그들이다. 책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어쩌면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말이다.


"글을 한 번 쓰고 나면/몇 번을 수정해요//체에 거르면 고운 것들이 내려앉듯이/수정 후에는 고운 글이 됩니다//체에 남아 있는/거친 것들은 읽어보면 웃음이 나서/고운 것들만 세상에 내보내요//"  (p.166)


정신이 소비한 영수증과 움직인 장소가 찍힌 사진, 그리고 메모에 가까운 정신의 글이 토막처럼 실린 이 책을 정말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읽는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 사이, 영수증과 영수증 사이의 여백이, 때로는 정신 작가의 짧은 메모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책에서 벗어난 독자의 시선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좇을 수도 있고, 멍한 시선으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을 벗어나 문득 책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인해 책을 완독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책이다.


"새로운 답을 만날/장소에 거의 다 왔다//길을 건너며/답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는데/크고//순한 느낌이다//나는 옆모습을 어서 보려고/빨리 길을 건너갔다//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자/아이스크림은 소외되어 녹아내렸다//2019년 7월 19일 오후 5시 12분/아이스크림 두 컵/11.00$/Smitten Ice Cream//"  (p.177)


과거에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광고인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광끼>의 자문이자 모델이 되기도 했던 20대의 정신은 40대의 나이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단 한 명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던 정신은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다. <논어> '위정편'에 이르기를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고 하였는데 작가 정신은 자신의 나이 사십에 비로소 '혹함'을 배우려 했다. 흔들림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작가 정신의 삶은 한 장의 영수증 속에, 그 영수증과 함께 남은 장소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다. 내가 소비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던 어느 카페나 식당의 낡은 영수증 속에 나의 삶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23세/엄마가 47세일 때/아빠는 우리 식구의 삶에서/몇 주 후 사라진다// 엄마의 마음에는/화가 찼지만/나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마음에/무엇이 있었는지 느끼기가 어려웠다//엄마는 나에게 아빠까지 되어야 했고/나는 엄마에게 남편까지 되어야 했다//빌런은/우리에게 10년 후 나타나/자신의 지난 일을 덮어두었다//"  (p.210)


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 2026년 1월 18일 일요일의 가치를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의 가치로 살았던 것일까. 설렁설렁 가볍게 보낸 시간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지는 오후, 약하디 약한 겨울 햇살이 조용히 스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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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나아진 감이 있습니다만 요 며칠 대기 중 미세먼지의 농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밖에 나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육체적으로 오던 무력감이 정신적인 우울이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지게 됩니다. 며칠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도 이럴진대 개인의 인생에서 기나긴 좌절이나 실패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적 질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훈련이 잘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진심으로 바라던 게 있었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최악의 경우 단 한 명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 쌓였던 슬픔을 조금쯤 털어내고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기본적으로 기쁨보다는 슬픔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씀으로 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는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의 효능은 본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나름 결심하였던 게 있었습니다. 내 블로그를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내 능력에서 벗어날 정도의 과한 이웃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와 이웃을 맺었던 분이 한동안 나의 블로그를 방문하지도, 나의 글을 읽지도 않는 듯 보이면 이웃을 취소하곤 합니다. 이웃 한 분이 취소됨으로써 나에게 이웃을 신청하였던 다른 분(말하자면 이웃 대기자)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친구처럼 지내는 인터넷 서점의 개인 블로그는 그렇지 않고, 소위 sns라고 불리는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그렇게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가급적이면 나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보려 애쓰고 있고, 그들이 현재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면 늘 그렇지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보니 주말 휴일이 아니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나를 되돌아볼 잠시의 짬을 내기도 힘듭니다. 가끔씩이라도 나의 글을 읽거나 나의 블로그에 입장하여 잠시 머무르는 분이라면 이 기회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주 가끔씩 하늘을 보는 것처럼 나의 블로그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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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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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 감동의 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어떤 OTT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너온 삶의 서사에 그닥 관심이 없을 뿐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하는 핑계는 곧바로 다른 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실 하나는 무관심은 전염력이 매우 강한 까닭에 나로부터 출발한 무관심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삽시간에 주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어 결국에는 나의 삶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쏟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는 건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시작하며 적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며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이것은 1958년생 김한영 씨의 문장이다. 한영 씨는 작가 양다솔의 엄마이자 나의 친구다. 한영 씨 입에서 흘러나온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가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어른들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는 말 옆에 당신을 기다려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짧은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긴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의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기다림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월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p.282~p.283 '에필로그' 중에서)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를 읽는 내내 '나는 참 무정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하는 생각과 반성이 이어졌다. 나란 인간이 본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기차가 주요한 이동수단이었을 때,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승객과 언제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줄여갔는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 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p.105)


인터뷰집을 선호하지도 않는 내가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를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인터뷰 대상이었던 인터뷰이의 면면이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인터뷰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동료 작가의 부모님이나 아파트 청소 노동을 하시는 작가의 외할머니, 작가가 직접 책을 만들어봄으로써 인연을 맺게 된 출판계 종사자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수선집 사장님 등 작가가 꾸준히 인연을 맺고 만남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인터뷰를?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얼굴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지나온 삶의 서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이영애 사장님이 주인공인 영화의 끝을 상상하고 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생이 바라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대전의 가난한 팔남매들, '주'자 돌림 형제들과 '영'자 돌림 자매들의 이름, 공장에서 만난 오야와 시다들의 이름, 영애와 상경한 고향 여자애들의 이름, 하꼬방에서 함께 자취한 친구의 이름, 재단사들의 이름, 샘플사 직원들의 이름, 남편의 이름, 남편과 사랑을 했던 여자의 이름, 시어머니의 이름, 자식들의 이름, 며느리들의 이름, 손자들의 이름... 그리고 찬무 할아버지의 이름도 거기에 있다."  (p.272)


매섭게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의 알맹이엔 저마다의 사연이 익어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속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의 삶도 맥없이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들어줄 이가 없어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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