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가락처럼 길게 늘여진 금요일 오후의 나른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침과는 다르게 낮에는 제법 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올라 주말을
기다려온 사람들의 밭은 조바심을 가볍게 흐트러놓고 있습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여린 틈새를 비집고 옅은 졸음이 쏟아집니다.
어제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라신 분들이 많았을 줄 압니다. 저도 또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으니까요.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건 예외로 치더라도 말입니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딜런은 위대한 미국
가요의 전통 속에 새로운 시적인 표현들을 창조해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발혔다지요. 딜런의 노래를 두고 "귀를 위한 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더군요.
<밥 딜런 평전>을 썼던 마이크 마퀴스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1960년대 이후 이어지는 딜런의 작품은 1960년대의
작품만큼 시대와 밀착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딜런의 노래는 그 시대의 투명한 반영물이라기보다 차라리 그 시대에 반응하고 영향받은
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구성물이 아닐까? 딜런은 수동적인 피뢰침도, 장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끄는 위대한 지휘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흐름을 가로질러 앞서가는 항해자에 더 가까웠다."
저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모라카미 하루키가 뽑힐 줄 알았습니다. 하루키의 팬이기도 한 저로서는 당연한 바람이기도 하지만 사심 가득한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깊은 의미를 담은 고은 시인의 시구가 제대로 번역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인의 마음에 곱게 자리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지금도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을 듣고 가슴이
두근대는 젊은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they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삶을 깨닫게 될까
백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아는 대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