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하는데 공원 한켠에 걸린 낯선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근처를 오가면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어쩌면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한 풍경이었다. 그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비둘기로 인하여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00구청 농축산경제과

 

현수막 옆에서는 한 무리의 비둘기떼가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현수막의 글자를 읽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마치 공공의 적인 양 취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왠지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옆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한 장 더 걸려 있었다.

 

개 소유자는 페티켓을 지켜주세요.

공공장소에서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꼭 착용하고 배설물을 반드시 수해주세요.

00구청

 

어젯밤에는 늦은 시각에 귀가하였는데 아파트 앞에서 묘한 풍경과 맞딱뜨렸다.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밤산책을 나온 듯했는데 여자의 손에는 어린 푸들의 목줄이 쥐어 있었다. 푸들은 여자의 발치에 붙박인 듯 서서 주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며 연신 꼬리를 흔들고, 앞서 갔던 남자가 빨리 오라며 보채자 여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강아지의 목줄을 잡아채며 가자고 얼렀지만 제 주인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아지는 도통 움직일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던 여자는 남자의 재촉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얼른 강아지의 몸통을 낚아채어 가슴에 안고는 남자를 따라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강아지는 아마도 제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조금만 버티면 주인이 알아서 자신을 안고 갈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 마른 놈이 우물 파라는 식으로 강아지는 제 주인을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딱하게도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키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애견 인구 천만 시대라는데 내가 오르는 등산로에는 오늘 아침에도 개의 배설물로 몸살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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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6-1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일상 들여다보기 능력은 탁월하신 듯 합니다!!

꼼쥐 2016-06-18 17:3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괜히 부끄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