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보다는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보려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사람들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갖게 됩니다. 물론 제가 실제로 모든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저 자신의 내면도 보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요. 말하자면 오랫동안 그런 태도를 유지하다 보면 그런 비슷한 이미지, 배경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비슷한 사진이나 그림을 자신의 마음 속에 한 장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조금씩 굳어져 다른 사람도 이럴 것이다, 확대 해석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이런 것입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팔짱을 낀 두 팔을 제 무릎에 올려 놓고 쭈그려 앉은 열 살 남짓의 소녀.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이 들었던지 무릎 위에 제 머리를 힘없이 뉘인 채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을 그저 멀뚱히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깊고 깊은 고독, 삶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 이후의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 등 인간이 내적으로 부딪히는 보편적인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육체적 고통이야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인간 내면의 절망은 순전히 한 개인에게 고착된 것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유대감은 곧 안쓰러움이나 연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김연수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라고 말이지요. 가짜로 산 인생, 자신이 자서전에 썼던 대로 살았다고 믿는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김연수 작가가 그들을 경멸하는 이유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까닭이지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최종국이 지금 한창 진행되고는 있지만 엊그제 있었던 제4국에서의 이세돌 9단의 승리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던 까닭도 그런 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맞수가 아닌 인공지능과의, 말하자면 이세돌 기사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고독을 극복하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고독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의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실생활에서 자주 주어지는 게 아니기에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큰 감동을 느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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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3-1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뉴스에서 전문직 고소득자의 탈세가 33%
고의누락이라더군요 몰랐던 얘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네요. 특히 굳이 안그래도 될 고소득자들이
말입니다. 그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숨기는데 애쓰겠지요!
이런식의 부자들의 세금을 제대로 징수 못하고 간접세로 또는 유리지갑인 근로소득세로
메우려는 정부가 너무 한심할 뿐입니다.

꼼쥐 2016-03-16 13:49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들의 잘못은 투표에서 판가름이 나는 게 당연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가려지니 정치인들은 겁나는 게 없는 셈이죠. 나라를 팔아먹어도 당선될 판이니... 우리 세대에서는 한국의 문화가 바뀌기는 어려울 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