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리키는 나뭇잎 화살표를 따라 이십여 분쯤 올라가면 내가 매일 아침 몸을 푸는 체육공원이 나온다. 말하자면 나는 매일 아침 바람을 등지고 산을 오르는 셈인데, 그럴 때마다 바람은 마치 가기 싫어 하며 뻗대는 아이의 등을 강제로 떠밀며 재촉하는 어른인 양 여겨진다. 나는 앞발을 딛고 뻗대는 세살배기 아이인 양 여겨지고 말이다.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 친 날은 바람이 더러 싫을 때도 있지만 슬슬 꾀가 나는 겨울철에는 바람이 등을 밀어줄 때가 더 좋다. 심심하지도 않고, 힘도 덜 드는 것처럼 느껴지고...
오늘 아침에는 등에 와닿는 바람의 기운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약한 바람이 불었다. 나무에 붙은 메마른 나뭇잎이 그저 서걱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에서 '아, 바람이 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따금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산꿩이 푸드덕 날아올랐고, 나도 덩달아 놀라 하늘을 보면 손톱 모양의 그믐달이 둥실 솟아 있었다. 걸음은 다시 새벽의 어둠과 고요 속으로 향한다.
시의 예산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우선순위에서 한참이나 밀린 탓인지 오래된 운동기구는 새로 교체하기보다는 숫제 톱으로 잘라버렸다. 밑동이 심하게 흔들리던 철봉과 평행봉은 베어진 채 스산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 내가 운동을 하는 새벽 시간에 마주치는 사람은 고작 두서너 명. 겨울에는 다들 게으름을 피우는 건지, 운동을 아예 접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사람도 없는 어둠 속에서 홀로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토록 열성인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자신이 극성스럽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어차피 때가 되면 죽을 몸, 남들처럼 좀 더 편안히 있다가 가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