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하는 명절이라야 설과 추석이 고작이지만 나에게도 '명절증후군'이라는 도통 어울리지 않을 듯한 오래 묵은 지병이 있었던 것인지 명절 연휴만 지나고 나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곤 한다. 몸도 마음도 파김치처럼 축 늘어지지만 어려운 숙제를 모두 끝낸 아이처럼 저으기 안심이 되는 것이다.

 

추석 명절만 해도 그랬다. 10월 초에 장인, 장모의 생신이 몰려 있어서 추석 모임은 겸사겸사 밖에서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반인 큰동서의 딸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동서의 딸까지 처갓집 식구들 모두가 단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모였었다. 그렇게 다 모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공통의 관심사라는 게 아이들 교육 문제나 취업, 승진이나 건강 등 단발성의 이야기뿐인지라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서들이나 처형, 처제의 정치성향이 서로 엇비슷하다는 점이다. 딸만 넷인 처갓집에서 서로의 정치성향마저 달랐다면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겠는가.

 

수험생을 둔 둘째 동서는 식사를 마치자 마자 바로 집으로 갔고, 나와 큰동서, 막내 동서는 처갓집에 잠시 들렀다가 헤어졌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하는 큰동서의 딸은 작년에 페루에서 1년을 보내고 온 덕분인지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졸업 프로젝트 때문에 한걱정을 하는 게 조금 안쓰럽기는 했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그보다 더한 난관들이 왜 없겠는가. 졸업을 하면 당장 마주쳐야 할 취업난도 그렇고.

 

아침에 잔뜩 흐렸던 하늘은 낮이 되면서 반짝 해가 나왔다. 뺨에 닿은 가을바람이 부드럽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처럼 기운이 없는지 다들 축 처진 모습이다. 9월이 그렇게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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