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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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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침은 언제나 '조용함'으로 시작된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조금은 경건하다 싶게, 아주 가끔은 나직한 비밀을 품은 채 집을 나선다.  혹여라도 작게 들리는 나의 발소리가 옆집 사람들의 달콤한 아침잠에 방해나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 까치발을 하고 사붓사붓 걷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긴장의 끈에 옭죄인다.  때로는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우울한 얼굴과 마주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침은 아직은 잠이 덜 깬 부시시한 하늘과 아침을 준비하는 새들의 부산한 날개짓,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는 나무들의 차분한 시선 속에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벌써 십수 년째 매일 아침 산을 오르고 있다.

새벽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날이 그날일 것처럼 막연히 생각하게 마련이다.  단 하루도 지난 날과 같지 않음을 직접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평온 속에 깃든 잔잔한 변화가 사람들을 얼마나 설레이게 하는지, 내 발로 두드리는 땅의 울림이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인지, 까슬한 나무껍질의 감촉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은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에 어울리는 책이다.  이런 날이면 '점액의 은빛 길을 남기며' 느릿느릿 나아가는 달팽이의 걸음에도 내 시선이 머물 것만 같다.  또는 여리디여린 아침에게도 '안녕'하며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작가는 그 작은 소리에도 한껏 귀를 열고 평온함 속의 경이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는 마치 햇살 속에 숨겨진 신의 목소리마저 들을 수 있겠다는 헛된 욕망을 품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마음 깊이, 그러면서도 즐겁게 귀 기울였다.  비는 찾아 오는 장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곳 항구에, 넘실대는 모래언덕에, 소귀나무에 내리는 빗소리는 저지대의 더 풍성한 빗소리나 심지어 옥수수밭의 빗소리와도 다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빗속을 걸으며 이 좁은 곶의 빗소리를 뼛속 깊이 기억해두었다.  어디서든 어둠 속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면 내가 집에 있는지 다른 데 있는지 알 수 있다.  밤에 걸으면서도 리틀시스터 연못의 윤기 나는 어깨에 떨어지는 빗소린지, 더 길게 뻗은 해치스 항구에 음산하고 활기차게 내리는 빗소린지 알 수 있다."    (p.132 - p.133)

 

시인의 감성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사뭇다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또는 낯설고 외로운 먼 여행길에서의 이야기는 시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나도 어쩌면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기에는 새롭고 다양한 것, 희귀하고 누구나 탐내는 것, 위험하지만 내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것들에 한없이 끌렸는지 모른다.  삶의 가치는 오직 그것 뿐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평온하기를 기원했었다.  그 상반된 감정이 차츰 평범함 속으로 갈무리 되었을 때 숨겨진 삶의 경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p.137-p.138)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고 프로빈스타운의 자연에 둘러싸여 50여 년을 지내온 메리 올리버.  79세인 그녀는 여전히 시인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시인들과 작가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워즈워스, 셸리, 에머슨, 너새니얼 호손.  그러나 이 책에서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평범함 속에 깃든 삶의 의미와 자연에 대한 찬사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시인, 생태시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녀의 시가 이 책에서는 '그저 책갈피에 앉아 숨만 쉬는' 형태로 몇 편 실려 있다.  조금은 아쉽지만 말이다.

       

"시는 바늘처럼 단순하든, 물레고둥 껍데기처럼 화려하든, 백합 얼굴 같든, 상관없어.

시는 말들의 의식, 하나의 이야기, 기도, 초대, 아무런 현실감 없이 독자에게 흘러가서 마음을 흔드는,

진짜 반응을 일으키는 말들의 흐름."    (p.126)

 

하루 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온함으로, 누군가에게는 스산함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무덤덤함으로 그 바라보는 느낌도 제각각이겠지만 우리는 무수히 반복되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과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느낄 만큼 나이가 들면 격한 감정의 회오리에도 휘말리지 않는 메리 올리버처럼 차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꿈꾸듯이 나도 이 책의 작가처럼 늙고 싶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는 그런 감성을 유지하고 싶다.  익숙함이 곧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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