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산을 오르다 보면 늘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내가 아는 슈나우저 할머니가 그런 분이다.

몇해 전 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운동할 장소를 물색하고, 답사까지 마친 후

본격적으로 아침 산행을 시작했을 때,

그날 처음 만난 분이 슈나우저 할머니였다.

나는 아직도 그분의 진짜 이름도 모른 채

슈나우저 할머니로만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분을 슈나우저 할머니로 명명한 데는

까닭이 있다.  목줄을 맨 슈나우저 한 마리를

끌고 산책에 나섰던 할머니는 방한복에 달린

후드로 얼굴을 깊이 가리고 있어 나이를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동행하는 슈나우저

때문이었다.  그 늙은 슈나우저는 몇 발짝 걷고는 지친 숨을 몰아쉬었고

그럴 때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 할머니는 개의 입에서 길게

흐르는 침을 연신 닦아주고 계셨다. 

한동안 나는 할머니보다 그 개에게만 눈길을 주었고

우리는 그저 아침 산행길에 스쳐지나는 행인으로만 지냈다.

 

그런 관계가 한 몇 개월쯤 지속되었을까?

나는 가벼운 목례로 아는 체를 했고

또 그런 관계는 일 년쯤 지속되었다.

 

2년쯤 무렵부터 우리는 비로소 소리를 내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늙은 슈나우저의 나이가

평균 수명(15년 정도)을 훌쩍 넘긴 17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슈나우저를 위해

매일매일의 운동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만나던

슈나우저 할머니를

올해 초여름 무렵부터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여름이 다 지나도록 뵐 수 없었던

슈나우저 할머니를 며칠 전에 만났다.

 

그 늙은 슈나우저는 결국 할머니의 곁을 떠났고

한동안 상심이 크셨던 할머니는

운동을 할 의욕마저 잃었다고 했다.

늘 하던 운동을 끊자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

병원 신세도 여러 번 지셨단다.

 

결국 할머니의 가족들은 할머니를 위해 죽은 슈나우저를 꼭 닮은

슈나우저 한 마리를 사서 할머니께 안겨주었고

그 슈나우저와 함께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셨단다.

 

두 살된 슈나우저는 기운이 넘쳐 보였다.

할머니를 끌고 제 가고 싶은 곳으로 이리저리

돌아치는 모습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인다.

 새 슈나우저의 이름은 하는 행동과는 걸맞지 않게

'미미'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슈나우저 할머니 곁에

수다쟁이 할머니도 함께였다.

밤나무 밑에서 코를 박고 킁킁대는 미미를 향해

"미미야! 가자.  밤도 하나 못 물어 오는 놈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수다쟁이 할머니의 애정어린 농담에

미미도 슈나우저 할머니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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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0-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럼 '시쭈 아줌마' 쯤 되겠네요 ^^
새로 가족이 된 슈나우저에, 수다쟁이 할머니까지...당분간 슈나우저 할머니, 든든하시겠어요. 먼저 슈나우저 잃고서 얼마나 우울해하셨을지 짐작이 되는데 그래도 용기있게 잘 넘기셨네요.

꼼쥐 2012-10-12 16:10   좋아요 0 | URL
자주 뵙는 할아버지, 할머니 중에 한동안 안 보이는 분이 계시면 가슴이 철렁하곤 하죠. 혹시나,하는 마음에. 슈나우저 할머니를 다시 뵙게 되어 얼마나 반갑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