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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쓴 글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나의 성격과 똑 닮았거나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의 성격과 흡사해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데 천성적으로 타고 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는 내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을 가르친 기간이 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한다면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교육자가 되려면 적어도 얼치기 심리학자의 수준에는 이르러야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처음 만나는 아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로부터 몇 마디 말만 들어보면 그 학생의 성격이며, 공부 성향이며, 가정환경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는데 사회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내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이들로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자리 펴시죠?"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자라온 배경이나 성격, 대인관계나 취미 등을 추측하거나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약간의 직업병(?)처럼 말이다.  이 책 <랄랄라 하우스>를 읽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었다.  작가의 성격이 글에 잘 녹아 있을 때, 독자는 내용에 상관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작가는 자신의 성격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과 유사한 면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랄랄라 하우스는> 나꼼수의 김어준 스타일로 "실패!"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랄랄라 하우스>의 내용이 재미없다거나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로서 내가 느꼈던 것은 작품이 작가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는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범생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규칙도 잘 지키고, 책임감도 있고, 농담도 잘 하지 않고, 단상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늘 겸손하거나 수줍어 하고, 옷차림이나 정리정돈이 항상 흐트러짐이 없고, 윗사람으로부터의 지적이나 나무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렇다고 성적도 우수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이런 부류의 학생들이 성적으로 최상위권에 드는 경우는 드물다.  공부를 못하지는 않지만 뛰어나지도 않은, 변동이 거의 없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내가 추측한 작가의 성격이 맞는다면 이 책은 태생적으로 글과 독자의 불협화음을 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님 한 분이 있다.  성격도 강직하고 고지식하며, 약간은 근엄하기까지 한 표정이 일상적인데 가끔 농담을 던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썰렁하다.  평소에 잘 웃고 농담도 잘 하는 사람이 했더라면 무척 재미있을 내용인데도 목사님을 통해 전달되기만 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썰렁한 농담이 되고 만다.

 

유쾌한 철학자로 알려진 전시륜이나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을 때면 엄숙한 자리에서도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킥킥대는 웃음이 터져나와 입을 막게 된다.  그들에게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개그코드가 온 몸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듯하다.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독자는 별 내용도 아닌 대목에서도 키득대곤 한다.  낙천적인 성격의 작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우울하고 시니컬한 성격의 작가도 그에 딱 맞는 작품을 쓰는 경우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 작품을 꼽으로면 나는 주저없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떠올릴 것이다.  과거를 말하면서도 과거와의 단절을 꿈꾸는, 다소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느낌은 모범생으로 자란 작가가 성장기에 느꼈던 반항의식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행동은 언제나 일직선의 규칙을 따라가지만 그 규칙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이율배반적 느낌은 성인에 이르러 반항적인 모습으로,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모범생이 일탈을 꿈꾸는 것과 끝없이 과거를 말하면서도 과거와의 단절을 꿈꾸는 것은 적당히 닮아 있다.

 

작가가 운영하는 인터넷 미니홈피에 올렷던 글들을 중심으로 엮은 이 책에는 언론매체의 기고문이나 여행지의 사진, 작가가 기르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자신과 아내의 소소한 일상, 자신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일화 등 다양한 내용의 유쾌한 글들이 실려 있다.  사실 이러한 산문집이 아니라면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작품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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