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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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고백하자면 나는 고집이 센 편이다. 
얼마나 세냐하면 한번 아니다 싶은 일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내 의견을 굽히지 않는, 그 고집이 가히 쇠심줄이다.  그런 내가 유독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이 있다.  아니, 고집은 고사하고 오히려 팔랑귀가 되곤 한다.  그게 뭔고 하니 바로 '책'이다.  누군가로부터 "이 책 괜찮으니 한번 읽어보라"는 얘기를 듣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당장 구입을 하거나 읽을만한 시간이 없음에도 한달음에 도서관으로 달려가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언제나 읽지 못한 책들로 넘쳐난다.  그렇다고 대형 출판사의 광고까지 무턱대고 믿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의 추천도서나 자주 만나는 지인들이 읽고 좋았다고 하는 책, 또는 아내의 권유 등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는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관련 도서의 목록이 굴비 두름 엮듯 줄줄이 등장하니 메모 수첩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책의 목록으로 빼곡하다.

책에 관한한 낭비벽에 가까운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지라 특별히 경계하는 책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의<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같은 류의, 작가 자신이 읽고 좋다고 느꼈던 책들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책으로 엮은 것들인데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갑자기 홍수처럼 불어난 책의 목록에 정신이 아찔하여 넋을 놓게 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해에는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을 읽고 추천도서 50권을 읽어내느라 다른 책을 들춰 볼 겨를이 없었다.  한동안 이런 홍역을 치르고 나면 '이제 다시는 이런 책을 읽지 않겠다' 결심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또 누군가의 추천도서 목록에 눈길이 머문다.

이 책은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오직 '새 책'만을 고집하던 자신이 헌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전 주인의 흔적마저 사랑하게 된 사연을 모은 책이다.  책에 적혀 있는 메모뿐만 아니라 저자의 서명까지도 흠으로 여기던 '새책주의자'가 헌책방을 뒤지는 '헌책방 마니아'로 변모하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마음만 있다면 좋은 책을 누구나 알게 되고 또 언제든 구해서 읽을 수 있는 독서 환경을 꿈꾸면서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언급된 어떤 책들은 다시 출간이 돼 ‘오래된 새 책’이 됐지만 아직도 많은 책들이 ‘오래되고, 구할 수 없는’ 책으로 남아 있다. 나는 오래되고 구할 수 없는 책들 모두가 ‘오래된 새 책’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이와 같이 책을 낸 배경을 밝힌 박균호의 ‘오래된 새 책’은 34편의 헌책에 대한 이야기를 1.내 생애 잊지 못할 그 책 2.오래된 서가를 뒤지다 3.그분의 삶은 향기로웠습니다 4.글맛기행 5.금서라는 훈장 6.책 사냥 일지 등 6부로 나눠 편집했다. 부록에는 그가 언급한 180여 권의 도서목록과 20권의 민중자서전 목록 및 ABE 문고 시리즈의 88권 목록이 실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벌써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을 두어 권 구매하여 어제 벌써 택배로 받았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힌 것들은 대부분 절판본이어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지금도 출판되고 있는 몇몇 책들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언제 읽게 될 지 모르는 책들을 끝없이 사들이는 낭비벽도 문제려니와 '책 좀 읽어야지'하면서도 좀처럼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게으름은 구제불능이다.

유난히 볕이 좋은 요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병든 닭처럼 비실대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