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참으로 질긴 것이어서 아내로부터의 잦은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못된 습관도 아닌 듯하다.  아내에게는 밝히지 않았지만 내가 지닌 물건을 버리기 아까워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시기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적당한 때를 번번이 놓치는 까닭에 그리 된 것일뿐, 나의 성품이 지극히 인색하다거나 돈이라면 벌벌 떠는 쫌생이 기질을 타고 났다고는 볼 수 없다.  어쩌면 쇼핑을 즐기지 않는 데 그 이유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내가 꺼리는 일에는 유독 게으름을 피우는 유아기적 태도가 아직도 내 몸에 남아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지난 달에 나는 17년 동안 타던 승용차를 폐차하고 장인어른으로부터 11년 된 차를 그 대신으로 물려받았다.  그도 따지고 보면 내 자발적 의사는 아니었고, 손윗 동서가 안식년을 맞아 영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타던 차를 장인어른께, 그리고 장인어른의 차는 얼결에 내 차지가 되고 만 것인데, 워낙 꼼꼼하신 성격의 장인어른은 거금 100여만 원을 투자하여 잔 부속품 하나까지 교체한 후 내게 주셨다.  기실 그 차는 햇수는 오래되었지만 주행거리는 고작 6만km에 불과하니 내 차에 비하면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군데군데 녹이 슬고 엔진도 골골 노인네  소리를 내던 내 차를 버렸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닥 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차를 가져가라는 장인어른의 권유에도 마뜩찮은 태도를 취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아내의 강압에 못 이겨 그동안 정들었던 차를 떠나 보내던 날 괜스레 울적하여진 나는 냉장고에서 몇 년째 뚜껑도 열지 않은 빼갈을 한 잔 마시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어제는 퇴근 후 평소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화장을 한 여학생이 눈에 띄어 계획에도 없는 일장 연설을 늘어 놓았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다들 화장한다는 아이들의 항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내 할 말을 하는데 생각해 보니 조금 멋적은 생각도 들어 '오늘은 숙제를 주지 않겠다'며 서둘러 돌려 보냈었다.

체면이나 외모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아무래도 장소를 잘못 골라 태어난 듯하다.
뒷축이 헤어진 구두는 벌써 5년이 넘었고, 결혼 전에 산 옷가지들도 이제는 군데군데 구멍이 보이곤 한다.  그러니 산책 삼아 마트를 다녀오곤 하는 아내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군소리 없이 살아주는 아내를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까닭에 아내의 잔소리는 언제나 도를 넘지 않는다.  이것도 천성이라면 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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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3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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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꼼쥐님! 글이 참 재밌네요 ㅎㅎ
제가 버리지 못하는 습관은 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되는데 음... 생각하다가 관뒀어요. 나쁜 습관만 죄다 생각이 나는 바람에... ( '')~ 이 참에 좋은 습관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꼼쥐 2011-09-03 08:5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생각해 보면 저도 나쁜 습관만 있는 듯해서 조금 찔리지만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어차피 똑 같은 사람은 없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