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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평점 :
가정의달 5월을 맞는 사람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차라리 어지럽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물론 스승의날까지 모두 5월에 몰려 있는 것은 물론 기념일로 정해지기는 했지만 성대한 행사 없이 지나가는 바람에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성년의날이나 부부의날까지 포함하면 5월은 그야말로 가정의달이 아니라 기념일의 달이 되고 만다. 이렇게 많은 기념일이 있으니 5월은 매일매일이 기쁨으로 가득해야 하겠지만 사람들의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얄팍한 지갑에 비해 지출해야 할 돈은 꽤나 버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기에는 왠지 낯 뜨거운 시선이 부담이 될 듯하다. 물론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추억이 될 수 있겠으나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5월을 맞는 마음만큼은 언제나 따뜻하다. 아베 아키코의 소설 <카프네>처럼.
"저기, 카프네라는 회사 이름의 의미를 아시나요?" "포르투갈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빗겨주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죠. 일본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뉘앙스라고 하던데요." (p.268)
소설은 사십 대의 중년 여성 가오루코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남들처럼 자식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소망했지만, 거듭된 불임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실패하였던 그녀는 결국 남편인 기미타카로부터 이혼 제안을 받게 되고 끝내 이혼하고 만다. 이혼 후의 일상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매일 저녁 술에 의지하여 잠이 들었고, 집안은 온갖 쓰레기로 점령당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토록 다정했던 12살 차이의 남동생 하루히코마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하루히코가 죽기 전에 유언장을 남김으로써 상속이 복잡해졌다는 점이었다. 한때 결혼까지 거론되었던 하루히코의 여자친구 세쓰나에게 상속 재산의 일정액과 아가베 베네수엘라 화분을 남겼던 것. 가오루코는 동생의 유언을 수행하기 위해 세쓰나를 만났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한사코 상속을 거부한다. 가오루코와 세쓰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5월이 됐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비료를 주고 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면서 돌본 아가베 베네수엘라가 여러 겹 포개진 통통한 잎 사이로 빛깔이 옅고 소박한 새잎을 피웠다. 돌봐도 아무 변화가 없었던 식물이 갑자기 보여준 생명의 힘을, 가오루코는 쪼그리고 앉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p.259)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청소와 요리 등 가사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업체 '카프네'에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세쓰나는 갑작스러운 이혼과 남동생을 잃고 일상이 흐트러진 가오루코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뚝딱 해놓고 떠난다. 겉으로는 마냥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따뜻한 세쓰나에게 감동한 가오루코는 '카프네'에서 주말마다 하고 있는 가사 대행 봉사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했던 가오루코는 다른 건 몰라도 청소와 정리정돈만큼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가오루코와 세쓰나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일상이 무너진 여러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북돋워 준다.
"집은 청소해도 금방 지저분해지고 음식도 먹으면 사라지죠. 그래도 괜찮아요. 고작 이삼일 정도라도 평소보다 집이 지내기 편해지고, 애써 뭘 만들지 않아도 이미 맛있는 밥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런 환경만 있다면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어요. 살아가기 위해 행동할 기력을 가질 수 있어요. 이게 카프네를 시작한 이유예요." (p.103)
수수께끼로 남았던 하루히코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쓰나의 기억과 하루히코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방문했던 몇몇 가정의 가족들을 통하여 그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하루히코 역시 가오루코처럼 '카프네'에서 봉사활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쓰나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세쓰나의 성장 배경과 삶의 고단함으로 인해 가오루코가 단단히 마음먹게 된 결심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블루데님 작업복에 투박한 블랙 컴뱃 부츠를 신고 머리는 만두처럼 묶은 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나는 세쓰나는 '전투기 정비사가 일을 마치고 기지에서 훌쩍 나온 듯한 분위기'이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독자들 역시 세쓰나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게 된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과거의 자신을 구하며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도키코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을 구하려는 것처럼, 기미타카가 상처받은 아이들을 구하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삼는 것처럼." (p.331)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거에 저당을 잡힌 채, 때로는 과거라는 쥐덫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생명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물었던 한강 작가의 질문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과거가 나의 현재를 돕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자신의 의지가 빚은 하나의 선택일지도 모른다.